“여기선 더 이상 할게 없다”... 대구 토박이 건설사들의 ‘한숨’

이미호 기자 2024. 3.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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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저하’에 타 지역 진출 ‘고심’
“토종 이미지 고수? 경쟁력 없어”
“지방 건설사 통폐합 앞둔 지방 대학교 같은 심정”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대구지역 건설사들이 ‘생존 전략’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없어 수익률 저하가 불 보듯 뻔하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상당수가 수십년간 대구·경북에서만 사업을 해 온 ‘토박이 기업’라는 점에서 타 지역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은 대구 도심 전경/뉴스1

18일 부동산R114가 공개한 지난해 12월 기준, 지역별 미분양 물량을 보면 대구 미분양은 1만245가구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대구는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미분양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물량이 쌓여 있던터라 여전히 ‘미분양 무덤’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악성 미분양인 ‘준공 후 미분양’도 1044가구였다. 준공 후 미분양은 지방 건설사들에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초래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지방 건설사들은 수도권 위주로 사업장을 운영하는 대형 업체보다 경기 침체 여파를 크게 겪을 수밖에 없다. 그간 미분양 사태가 지속되면서 주택사업에서 메우지 못한 손실분이 계속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구 건설사들 사이에선 “더 이상 공격적으로 아파트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급량이 넘치는 상황에서 섣불리 새로 분양 계획을 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구 소재 건설사들은 오랫동안 대구 및 경북에서만 사업을 해 온 토종 기업들이 많다. 일례로 대구 3대 건설사로 꼽히는 화성산업(도급순위 42위), 서한(48위), 태왕이앤씨(67위)는 모두 지역 기반 건설사다. 실제 대구에는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동대구역 인근 거주 수요가 늘면서 분양 단지가 몰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대구의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서울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교통망이 있기 때문에 선호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도 “고속철도가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하고 지방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시설 기반 인프라가 서울에 더 집중되는 블랙홀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따라서 아예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는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구에서만 사업해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토종 이미지’는 흐려질 수 있지만, 최근 시장 상황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66년 역사를 갖고 있는 화성산업은 최근 평택·용인 등 수도권은 물론 천안·아산 등 충남에도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평택 석정에 화성파크드림을 공급하는 등 이미 경험이 있는데다 아산 지역은 산업단지 등 배후수요가 확실하다는 점에서다.

화성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명성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며 “대구 지역에서는 더 이상 아파트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구는 광주 기반 건설사와 달리 소위 ‘중앙 무대’로 진출한 건설사가 드물다.

대구 신공항 등 공공이 발주하는 ‘관급 토목 공사’를 적극 수주하겠다는 곳도 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토목공사는 공기가 길다보니 그 사이에 자잿값 등이 오르면 어느 정도 반영해준다”며 “토목 공사가 마진은 크진 않지만 요즘처럼 시장이 어려울 땐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했다.

지방 건설사들의 어려움은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3월 13일까지 건설사(종합·전문) 자진폐업 신고건수는 835건에 이른다. 10년만에 최대 수치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부도(당좌거래정지) 처리된 업체도 같은 기간 총 6곳으로 나타났다. 작년 동기 대비(3곳) 2배 이상 늘었다

부산에서 자체사업을 하고 있는 A건설사 대표는 “문 닫고 있는 건설사들이 지방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현재 고금리, 고물가 상황에서 건설 경기가 단기간에 정상화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요즘 지방 건설사는 통폐합을 앞둔 지방 대학교와 같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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