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의 세사필담] 강남스타일!
‘인생은 독고다이(특공대)!’. 국민 스타 이효리가 모교 졸업식에서 작정하고 한 말이다. 굳건히 견디고 자신을 믿으라는 충고다. 얼마나 험한 가시밭이었으면 이런 내심을 비췄을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해야 하는 예인(藝人)에게는 약인데, 독선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정치가에게는 독(毒)이다.
요즘 인기몰이 중인 ‘건국전쟁’의 주인공 이승만도 그랬다. 패권국 미국과 감히 담판을 해내는 약소국 지도자가 누가 있었을까. 단정 수립 아니면 북한 정권에 먹혔을 가능성이 컸다. 토지개혁은 더러 알려졌지만, 이승만이 밀어붙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생소할 것이다. 그것으로 최후진국 한국은 해양세력의 일원이 됐다. 친일은 반공의 이항대립이었다. 1956년부터 81세 이승만에겐 종신 집권이 어른거렸는데 민주적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다. 4·19 항쟁 시 부상 학생에게 흘린 눈물엔 자신의 과오와 민주 열망에 대한 경외가 동시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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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도 이승만도 독고다이 기질
독선의 유혹은 파산 아니면 감옥
석열스타일 유효기간 지났는데
반전 없는 용산으론 역전 난망해
」
청년 이승만을 투옥한 고종(高宗)도 독고다이였다. 그는 아관파천으로 개화파를 무너뜨리고 대한제국 황제에 올랐다(1897). 내각(의정부)과 행정(궁내부)을 분리해 근대적 체제를 얼핏 갖췄지만 고종은 전권을 휘둘렀다. 혼란기를 돌파해온 기억이 거기 있었다. 만기친람. 눈 밖에 난 대신들은 하루아침에 교체됐다. 신안군 섬, 해남, 제주도에 유배 정객들이 득실댔다. 을사오적 이완용과 송병준은 통감부와 교감해 장수를 누렸다. 고종의 독전(獨戰)이 망국을 재촉했다.
민주화 37년간 보수 정권에 유독 독고다이가 많은 건 뜻밖이다. 세태에 밝았던 YS는 경제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는 말만 믿다가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긴급전화를 받았다. 성탄절 이브, 나라 곳간이 거덜 났다. 시민에게 묻지도 않고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 MB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흔쾌히 수락했다가 혼쭐이 났다. 독실한 크리스천 부시 대통령과 영성이 그냥 통했다. 성공의 독선은 그만큼 무섭다. 청와대 관저에 깊숙이 틀어박힌 대통령에게 최순실에 대한 보고가 닿을 리 없었다. 그 탓에 대통령이 귀양을 갔다. 이번에는 섬이 아니라 감옥. 독선의 비극이었다.
‘오빤 강남스타일!’ 세계를 풍미한 싸이(Psy)가 말춤을 춰대는데 몸이 저절로 들썩인다. ‘반전(反轉)이 있는 여자, 그래 바로 너야’, 오빠는 혼신을 다한다. ‘갈 데까지 가볼까~’라는 절창에 이르러 여자는 결국 오빠에게 왔을 거다. 문제는 다음이다. 그 여자 앞에서 ‘강남스타일!’을 고집하고, ‘나는 뭘 좀 아는 놈, 갈 데까지 가볼까’를 계속 외치면 그 여인이 남아 있을까? 예인 싸이는 그래야 하지만 정치인은 낭패를 부를 뿐이다.
석열스타일! 유배라는 위험지대를 건너 권좌에 등극한 후에도 오빠는 ‘석열스타일!’을 계속 외치는 중이다. 좌파의 기습 공격과 십자포화를 물리친 힘은 목숨을 담보한 독고다이의 도박이었다. 검찰총장 시절 뚝심이 아니라 좌파의 오만 때문에 유권자들이 힘을 실어줬다. 뚫고 왔다는 독선의 강장제, 석열스타일!의 유효기간은 이미 만료된 지 오래다. 그런데 용산집무실 근처에는 말춤 노래만 들린다.
춤도 같이 춰야 제맛인데, 참모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각도 누군지 헷갈린다. 가끔 내놓는 정책에 살 만한 것이 더러 있음에도 그 경위와 내막은 깜깜하다. 의사 증원은 국민이 다 원하는 시급 사안인데, 지난 1년 세월에 막후 타협이 있었는지. 총선 전면전에 앞서 의료계 전투가 먼저 터졌다. 강경 진압은 저급한 정치다. 문재인 정권에는 주연급 인물이 너무 많아 탈이었다. 책임 전가의 달인이었다. 윤정권에는 조연(助演)조차 아리송하다. 내각과 참모의 존재감이 없기에 모든 화살이 오빠에게 쏠린다.
말춤 추는 오빠가 앞으로 죽 내민 팔에 갑작스레 명품 백이 걸렸다. 크리스챤 디올 파우치란다. 몰카, 영혼을 구제할 목사가 할 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쯤 되면 오빠가 알아차려야 한다. 대통령의 연인은 유권자임을. 내부에서 누가 말도 못 꺼낼 거다. 야당이 몰아붙인 특검법안은 불법 몰카라도 이용 가치를 총동원하는 진보의 치졸한 공세였다. 참다못한 김경율 여당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발설했을 때 대통령은 성공의 독선을 떠올려야 했다. 웬걸, 대통령 비서실장이 혼비백산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찾아 결별을 통고했단다. 망연자실, 비서실과 내각은 말춤 추는 대통령의 백댄서, 민주정치의 한 축인 책임성이 증발한 현실이다.
한국의 민주정치는 300만 원짜리 디올 백에 휘청거리고, 유권자를 살필 대통령과 참모들은 ‘오빤 석열스타일!’에 정신이 없다. 유권자는 ‘반전(反轉)’을 좀 아는 사람인데, 오빠의 사전엔 반전이 없다. 화석처럼 굳어진 민주당을 탓할 필요는 없다. 반전이면 역전(逆轉)인데, ‘갈 데까지 가볼까~’라는 독고다이 노래의 끝은 역사가 안다. 파산 아니면 유배, 한국 정치의 서글픈 운명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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