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카운터어택] 두 베테랑의 낭만적인 이별

프로야구 중계 화면에 한 모녀 관중의 스케치북 두 개가 나란히 잡혔다. 그 안에 적힌 문구. “엄마 왜 울어?” “오늘은 엄마 청춘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날이거든.” 지난달 3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끝판대장’ 오승환(43)이 은퇴하는 날이었다.
오승환은 한국 야구가 낳은 역대 최고 마무리 투수다. KBO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427), 한 시즌 최다 세이브(47), 최다 연속경기 세이브(28) 기록을 모두 보유했다. 6년(2014~19년)간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 소방수로 활약했다. 기록만 위대했던 게 아니다. 마운드에서의 실제 위압감도 역대 최강이었다. ‘돌직구’라는 표현을 탄생시켰고, “야구는 선발 투수가 최고”라는 해묵은 인식에 균열을 냈다. 삼성의 9회 수비를 앞두고 그가 마운드에 오를 채비를 마치면, 대구구장엔 익숙한 종례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승환이 나오면 경기가 끝날 테니, 이제 집에 갈 준비를 해라’는 메시지였다. 그 음악은 삼성 팬에게 전율을 안기고, 상대 팀의 전의를 떨어뜨렸다.
![마지막 맞대결을 마친 뒤 뜨겁게 포옹하는 최형우(왼쪽)와 오승환. 최형우는 이 순간을 위해 대타 출전을 자청했다. [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3/joongang/20251003001450899cgta.jpg)
그런 오승환이 21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성대한 은퇴 투어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홈팬들 앞에 서던 날, 그가 대결한 최후의 타자는 최형우(42·KIA 타이거즈)였다. 현역 최고령 타자인 최형우는 2016년까지 삼성에서 뛰었다. 옛 홈구장인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오승환과 함께 ‘삼성 왕조’를 꽃피웠다. 그 시절 삼성이 승리하는 데는 그리 많은 점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승엽과 최형우가 홈런을 치면, 오승환이 나타나 뒷문을 걸어 잠갔다. 오승환은 그 후 해외로 나갔다가 삼성으로 돌아왔고, 최형우는 고향팀 KIA로 이적해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최형우는 오승환의 은퇴 경기를 앞두고 이범호 KIA 감독을 찾아갔다. “오승환 형의 마지막 상대가 되고 싶다”고 조심스레 요청했다. 이 감독도 그 뜻을 받아들였다. 9회 오승환이 마운드에 오르자 대타 최형우를 투입했다. 최형우는 그렁한 눈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에 있는 오승환을 향해 헬멧을 벗고 고개를 숙였다. 오승환도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승환은 최형우에게 공 4개를 던졌다. 마지막 포크볼에 최형우가 짐짓 배트를 크게 돌렸다. 헛스윙 삼진. 최형우의 프로 통산 1500번째 삼진이 가장 낭만적인 순간에 나왔다. 최형우는 곧바로 마운드로 올라가 오승환과 힘껏 포옹했다. 한때 동료였고 최근엔 적이었으나 늘 깊은 우정을 나눴던 두 베테랑이 아름다운 작별인사를 했다. 그 장면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오승환이 존경하는 지도자였던 오치아이 에이지 전 삼성 코치는 아끼던 제자의 은퇴 헌정 영상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승환아, 이제 마무리하러 가자.” 전설적인 선수의 빛나는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물었다.
배영은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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