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국격과 외교부총리
2023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 한 해 국민의 많은 관심을 모으며 윤석열 정부가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일은 아마 부산엑스포 유치였을 것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부산시장뿐 아니라 4대 그룹 총수와 CEO들이 총동원되어 182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부산엑스포 유치활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엑스포 민관합동 유치위원회 위원들의 활동을 합치면 지구를 496바퀴 돌 정도였다고 한다. 재계 리더와 경영진이 175개국 3000여 명의 정상과 장관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 거리만도 지구를 197바퀴 돌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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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포 유치 실패, 외교력 부족 탓
국격 걸맞게 외교 역량 강화해야
피크 코리아 늪 탈피 위해서라도
부총리급 세계 전략 사령탑 필요
」
아라비아 반도와 걸프만 지역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UAE)의 2020엑스포 유치와 카타르의 2022월드컵 유치로 자존심이 상해 2030 엑스포 유치에 필사적이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막강한 오일머니의 자금력을 앞세워 엑스포 유치에 전력을 기울였다. 늦게 출발했지만 우리도 약 60개국에서 지지 약속을 받아냈다면서 마치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 유치와 같은 성공신화를 믿었는지 모르겠다. 결과는 165개국이 참가한 1차 투표에서 사우디 리야드 119표, 대한민국 부산 29표, 이탈리아 로마 17표로 참패를 당했다.
K팝, K드라마의 인기를 앞세워 최종 프레젠테이션도 해 보았지만 외교력에서 사우디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단순히 자금력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외교적 역량이 떨어진 부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계 3대 메가 이벤트 중에서 스포츠 중심인 올림픽과 월드컵과 달리 경제와 문화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엑스포는 외교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외교현장에서 우리의 국격은 경제력만큼 높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의 외교 전략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우리 나름의 외교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 사회주의국가 출신 주한 대사들이 종종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 우리 외교관은 영어만 주로 하고 주재국 언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주요국에서 정치권 인물이 대사로 임명되면 중국어나 일본어를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경제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외교력은 10위권에 한참 못 미친다. 2022년 우리나라는 GDP 1조 6732억 달러로 세계 13위에 올랐다. 네덜란드는 9919억 달러로 18위를 차지했다. 제국의 경험이 있는 네덜란드는 강소국 외교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해외공관은 116개이지만 네덜란드는 129개의 공관을 갖고 있다. 공적 원조인 ODA 예산도 2022년 네덜란드는 65억 달러지만 우리나라는 29억 달러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중 갈등 심화로 글로벌 밸류 체인이 붕괴하고 국제질서가 새롭게 태어나려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치고, 이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와 투자는 매우 적극적이다. 우리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 중동,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외교부의 지위와 역량은 매우 초라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국가 경제를 총지휘하던 경제기획원의 전통이 이어져 기획재정부장관이 경제부총리의 역할을 맡고 있다. 교육부 장관도 사회부총리를 겸하고 있다. 통일부와 과학기술부의 장관도 부총리를 겸직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핵심이 수출이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외교부는 부총리 자리를 겸직해보지 못했다. 대통령 다음 의전 서열에서도 미국은 부통령(상원의장 겸임), 하원의장, 연방 대법원장에 이어 국무부 장관이 5번째인데, 우리나라 외교부 장관의 의전 서열은 국회의장, 총리 등에 이어 18번째인 대통령 비서실장 바로 다음인 19번째다.
윤석열 정부가 포용외교를 위해 내년도 ODA 예산안을 올해 4조5000억원에서 44% 비약적으로 늘어난 6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비록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2000억원 이상 감액되었지만 전무후무한 예산 증액이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는 28개 회원국에 각국 GDP의 0.3%를 ODA 예산으로 지출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2022년 우리나라 ODA 예산은 GDP의 0.17%에 불과했다.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의 소프트파워인 문화, 외교 등의 격이 올라야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국내 정치의 많은 문제로 인해서 한국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여기가 정상이라고 ‘피크 코리아’를 말하니 걱정이다.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 질서가 요동치는데 국내 정치는 정쟁에 여념이 없다. 이제 세계 전략을 설계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외교부 장관이 부총리급 세계전략 사령탑이 되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 외교력을 강화하고 국격과 경제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 우리 국민의 피땀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여기가 정상이니 내려가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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