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선고 다 싫어한다" 4년째 1심…황당한 '동물국회 식물재판'
2019년 4월 25~26일 국회는 아수라장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제 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처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려는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과 극한 대치가 벌어졌다. 쌍방 고발 끝에 21대 총선 직전 여야의 당시 현역 의원 28명을 포함해 관련자 37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동물국회’를 주도했던 이들의 유·무죄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4년째 1심 중이다. 그 사이 법관 정기인사로 재판부만 3번 바뀌었다. 피고인 상당수는 법적 리스크를 안고 내년 4월 총선에도 나설 판이다. 이들 중 현역 의원만 10명(국민의힘 김정재·박성중·송언석·윤한홍·이만희·이철규·장제원, 민주당 김병욱·박범계·박주민)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도 피고인도, 법원도 아무도 신속한 판결을 원치 않는 초장기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피고인 측 변호인)는 말이 나온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 정도성)와 형사12부(부장 당우증)는 각각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관련 여·야 재판을 2020년 1월부터 들고 있다. 사건 관계인만 수십명인 탓에, 두 재판부 모두 한 달에 딱 한 번 대법정에서 공판을 진행한다.
검찰이 신청한 관련 증인만 국민의힘 재판에서 47명, 민주당 재판에서 7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피고인 측은 대다수 증인 채택과 관련해 ‘부동의’ 의견을 밝혔다. ‘증인 부동의’를 하면, 검찰 측이 단독으로 신문하는 게 아니라, 변호인들도 반대신문을 진행한다. 증인 신문 횟수가 많을수록 재판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안을 잘 아는 법조 관계자는 “양측 신문을 다하면 공판 기일 한번 당 간신히 증인 2명을 소화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마저도 국회 일정 등 피고인들의 빈번한 기일 연기 요청으로 진도를 뽑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재판이 총선 이후까지 끝나지 못할 것은 물론 이대로라면 후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여야 재판의 지연 양상은 비슷한 듯 또 다르다. 폭력 사태의 양 당사자들이지만, 여야가 받는 혐의, 즉 ‘의원직 상실 리스크’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먼저 회의장 안팎에서 육탄 저지에 나섰고, 민주당이 이를 뚫으려는 과정에서 충돌을 빚은 게 고려됐다.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24인 대다수에게는 국회선진화법 166조(국회 회의 방해 목적으로 회의장 등에서 폭력 행위를 하거나 회의장 출입을 방해하면 안 된다)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공직선거법은 국회선진화법을 어겨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 5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한다. 이외에도 당시 ‘캐스팅보터’였던 채이배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7시간 동안 감금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적용된 ①채이배 의원 감금 ②공수처법 및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의 의안과 제출 방해 ③사법개혁특위 회의 방해 ④정치개혁특위 회의 방해 등 총 4가지 혐의 순서대로 변론을 진행하고 있다.그런데 지난 5월 두 번째 혐의 관련 증인 신문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재판은 사실상 멈춰섰다. 재판부가 “증인신문만 해서는 의미가 없고 빨리 영상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속도를 내려 하자 피고인 측이 제동을 걸어오면서다.
변호인단은 앞서 국회에서 제출받은 폐쇄회로(CC)TV 영상의 증거능력을 다툰 데 이어, 이번엔 공중파·종합편성 채널 6개사로부터 제출받은 녹화영상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방송 영상들이 각사에서 적법한 권한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검찰에 임의 제출됐기에,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공소사실이 아닌 ‘증거능력’ 공방 관련 증인으로만 10명 가까이 출석했고 그 사이 7개월이 흘렀다. 피고인들이 어떻게 회의장 안팎을 점거했는지를 보려면 당일 현장 영상 확인 필수이지만 이 법정에서는 아직 한 번도 영상이 틀어지지 못했다.
만약 증거능력이 인정돼도, 재판부는 앞으로 상당한 영상 분량을 확인해야 한다. 검찰이 국회로부터 확보한 영상 증거물 용량은 3.78TB(테라바이트)에 달했다. 국회 관계자는 “당시 진행된 압수절차 속에 수십 개의 CCTV 영상을 외장 하드에 옮겨 담는 데만 전산실 직원들이 꼬박 하룻밤을 새웠다”며 “공소사실 관련 발췌본만 확인해도 적잖은 시간이 들 것”이라 말했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 5인의 혐의는 다소 가벼운 편이다. 이들에게는 국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 않고, 공동폭행·공동상해 등의 혐의만 적용됐다. 이 혐의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만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그럼에도 유죄로 결론났다면 공천 과정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었지만 22대 총선 전 1심 선고는 요원하다.
이들 재판 또한 더디게 진행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재판은 지난 7월 14일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피고인 측의 사유로 연달아 3차례가 미뤄지며 내년 1월 26일 재판이 재개될 예정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 재판은 영상도 다 확인하며 진행되고 있고, 다만 공식적인 국회 일정 등을 이유로 재판이 거듭 연기됐다”면서도 “의원직 상실까진 결과가 이르지 않겠지만 어찌 됐건 유죄를 선고받는 것은 큰 부담인 만큼 천천히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반면 법조계 안팎에선 이번 재판 지연의 책임이 검찰에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 측이 70여명의 증인을 신청하는 바람에 재판이 늘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피고인 측 변호사는 “검찰이 필요도 없는 증인들을 70여명까지 총망라해 신청했고, 이런 신청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주면서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라며 “검찰 측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오히려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증인 70여명 가운데 3분의 1 가량은 아무리 출석을 요구해도 법정에 나오지 않고 있다”며 “검찰로선 최대한 빠른 재판을 위해 협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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