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이럴 리가…”
“나폴레옹과 프랑스에 대한 모욕.” “감독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했다.”
지난 7일 오후 9시(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시내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파테 보그르넬’ 로비. 영화 ‘나폴레옹’을 막 보고 나온 관객들 간에 한바탕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부 젊은 관객들은 “웅장한 전쟁 장면이 볼만했다” “나폴레옹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다”며 호평을 했다. 하지만 다른 관객은 대부분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 탓에 보는 내내 집중이 안 되더라” “나폴레옹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보여 불쾌했다” 등의 악평 일색이었다. 영화관 매니저 티에리(39)씨는 “평이 안 좋은 탓인지 개봉 첫 주에 반짝한 이후 관객이 크게 줄고 있다”며 “상영 시간도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했다.
영화 나폴레옹은 지난달 22일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모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자타 공인 프랑스 근대사 최고의 영웅이다. 프랑스 대혁명 후 혜성처럼 등장, 전 유럽을 정복하고 황제 자리까지 올랐다. 군사적 성취와 더불어 프랑스를 근대적 민족 국가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국부(國父)란 평가도 받는다. 최근 고물가와 이민자 폭동, 테러 등으로 뒤숭숭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등을 만든 명감독 리들리 스콧이 나폴레옹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은 프랑스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크게 다른 내용에 맹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일단 영화 내용 상당 부분이 역사적 사실과 달라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것이 대체적 반응이다. 프랑스 영화 매체 알로시네(Allocine)는 “스콧 감독이 ‘역사 재창조’를 통해 수많은 역사가를 충격에 몰아넣었다”는 한 줄 평을 내놨다. 프랑스 역사학자 파트리스 게니피는 “나폴레옹이 기자 피라미드에 포를 쏘는 장면, 그가 말을 타고 기마 돌격에 나서는 장면 등은 완전히 거짓”이라고 했다. 또 영화 속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장면을 나폴레옹이 지켜보는 것, 나폴레옹이 연인 조세핀을 때리는 내용, 나폴레옹이 기마 돌격에 앞장서는 장면 등은 “영화적 상상을 넘어선 역사 왜곡”이란 비판이 나왔다. 역사적 고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수준이란 것이다.
나폴레옹의 인물 묘사에 대해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영화 속 나폴레옹은 총을 쥐고 눈물을 흘리는 감상적 야수(野獸)처럼 그려졌다”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또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관계도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조세핀은 나폴레옹에게 충실하고 헌신적인 여성이었으며 이혼을 두려워했지만, 영화에선 이런 내용은 물론 둘의 역학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역사학자 로망 마르실리는 “나폴레옹은 말단 장교에서 황제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인데, 영화 속 그는 바보처럼 그려졌다”고 했다.
비난의 초점은 영국인인 스콧 감독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주간지 르푸앙은 “이 영화는 매우 반(反)프랑스적이고 친(親)영국적인 시각에서 재구성됐다”고 했다. 마르실리는 “스콧 감독이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역사를 모두 조롱했다”며 “이는 프랑스인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르몽드 등 진보 매체들까지 “감독이 근대적 법전 편찬 등 나폴레옹의 수많은 다른 업적은 쏙 빼놓고 오직 ‘전쟁과 치정’만 남겼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스콧 감독은 이에 “(내 영화를 비판하는) 당신들이 현장에서 직접 나폴레옹을 본 것은 아니잖냐”며 냉소적으로 응수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개봉 첫 주 프랑스에서 76만명이 관람하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주 차에는 38만명으로 반 토막 난 상태다. 프랑스 관객 평점은 5점 만점에 구글 2.2점, 알로시네 2.3점으로 사실상 망작(亡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제작에 약 2억달러(약 2600억원)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 성적은 5일 기준 1억3890만달러(약 1816억원)로 아직 제작비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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