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 해" 엄마의 선언…차례 안 지내는 집 더 많아졌다
프리랜서 이시은(32)씨의 본가는 3년 전부터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됐다. 매년 꼬박꼬박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왔지만, 이씨의 어머니가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가족 회의를 거쳐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여성 구성원들이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불필요하게 고생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명절 전후로 가족들끼리 가볍게 외식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씨는 “가족끼리 모인다는 사실이 중요한 만큼 명절이 가지는 의미가 더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매년 ‘가족 불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던 명절 차례의 전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올해 추석엔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가정이 차례를 지내는 가정보다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등을 거치며 사회적 분위기가 점차 바뀌어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17일 롯데멤버스가 20~50대 소비자 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추석에 차례를 지낸다는 응답자는 43.7%로,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자(56.4%)에 못 미쳤다. 오히려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소수가 된 것이다. 농촌진흥청 조사도 비슷하다. 지난해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낸다고 응답한 비중은 39%로, 코로나 이전인 2018년(65.9%)보다 26.9%포인트나 감소했다. 2020년(44.5%)과 비교해도 5%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세대가 바뀌면서 전통과 관습에 덜 얽매이는 분위기가 전 사회적으로 퍼진 것이 일차적이다. 직장인 구모(32)씨는 “지난해 본가에서 차례가 없어졌다”며 “할아버지는 처음에 반대하셨지만, 10년에 걸친 설득 끝에 문화가 바뀌었음을 받아들이셨다”고 말했다. 자녀의 결혼을 계기로 새 며느리에게 부담을 지어주지 않기 위해 차례를 폐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문화 자체가 옅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직장인 한모(30)씨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가족들이 모이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됐다”며 “지금은 명절 전주에 모여서 식사하고, 연휴 기간엔 각자 쉬는 방식으로 정착했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여성 취업자가 증가하는 등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났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8월 여성의 고용률은 54.7%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8월 기준)를 기록했다. 남성과의 고용률 격차는 17.2%포인트로 역대 최저다. 주로 여성이 가족 음식 등을 준비해야 했던 과거와 같은 제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을 기록하는 등 초저출생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차례와 같은 전통 문화도 갈수록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에선 올 초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불필요하게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족 간 불화 요인을 없애고, 차례 문화가 존속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성균관 측은 “궁극적으로 가정불화나 남녀 갈등, 노소 갈등이 없는 행복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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