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여성의 나체,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입을 쩍 벌리게 하는 미술 가득한 이곳 [슬기로운 미술여행]
[슬기로운 미술여행 - 20] 빈 미술사 박물관과 Mumok
오늘은 빈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가봅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전성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주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빈 미술사 박물관 같았습니다. 동유럽부터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미술까지 아우르는 컬렉션은 방대하고 다채로운 취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완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고트프리트 젬퍼의 설계로 1891년에 개관했습니다. 1층은 그리스 로마 유물 컬렉션과 이집트 기자의 석관 등을 보유한 이집트 및 근동 컬렉션이 중심입니다. 고대, 중세의 조각이나 공예품을 비롯해 동서고금의 동전을 모은 코인 캐비닛도 유명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미술품 컬렉션이 이어집니다. 런던과 비교하자면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를 합친 것과 같은 공간인 셈입니다.


규모로만 따지면 루브르 뮤지엄, 대영 박물관, 에르미타주 등의 압도적인 규모의 공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처럼 기둥, 손잡이, 문, 천장까지 빈틈없이 장식된 공간은 없었습니다. 오늘의 미술관은 위대한 예술가들을 모신 신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다면 빈보다 더 사치스러운 만신전은 없을 겁니다.
이곳은 또한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프리즈 벽화를 만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장식과 조각으로 가득합니다. 천장화 아래 기둥과 기둥 사이에 클림트의 벽화가 숨어있어 놓치면 안됩니다.
![미하이 문카치의 천장화 [Apotheosis of the Renaissance]가 보인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클림트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김슬기](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15044fdgf.png)
바로 아래의 기둥 간 그림을 위해 다른 예술가를 찾아야 했고 미하이 문카치(Mihály Munkácsy)는 <르네상스의 영광(Glorification of the Renaissance)>으로 천장화를 완성합니다. 신전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듯한 입체적인 구도의 그림에는 베로네제,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등 거장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 율리오 2세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카르트의 벽화 아래 기둥과 기둥 사이의 좁은 삼각형 공간을 채운 게 구스타프와 에른스트 클림트 형제, 프란츠 마취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벽화 중 한 부분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두 인물의 미묘한 관계가 묘사됩니다. 15세기 피렌체 청년은 책을 읽다가 웅장한 후광에 둘러싸인 여성을 바라보고 있죠. 아기 천사와 아기가 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15세기 조각가 루카 델라 로비아(Luca della Robbia)가 성모와 아기 천사를 표현한 조각을 모델로 한 작업입니다. 종교적 엄숙함은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패턴으로 가득한 황금빛 드레스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세기말의 빈에서 성모는 돌연 패셔니스타가 되어버렸습니다.

![Albrecht Dürer [Emperor Maximilian I], 1519 ©Kunsthistorisches Museum](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21751kubb.png)
2층 회화 갤러리에는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층고가 높은 방마다 가죽 소파가 놓여있었습니다. 스페인 여행 이후부터 저는 ‘비수기의 미술관’을 일부러 찾아 다니는 것 같습니다. 비수기의 미술관은 무척 한산했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그림을 천천히 만나는 엄청난 호사를 누렸습니다.
페터 파울 루벤스의 대형 제단화가 방의 양쪽에 나란히 걸려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방이 있습니다. <수태고지>(1610)와 성 이냐시오가 귀신을 쫓는 모습을 웅장하게 그린 제단화가 각각 걸려 있었습니다. 안토니 반 다이크나 야콥 요르단스의 독특한 플랑드르 회화 작품도 17세기 예술의 다채로운 면을 잘 보여줍니다. 알프레드 뒤러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초상화나 만성절 제단화는 르네상스 시대 독일 미술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 줍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The Art of Painting], 1666/68 ©Kunsthistorisches Museum](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26302egoe.png)
그림 속 화실을 통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베르메르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월계관, 트럼펫과 손에 든 책을 통해 이야기를 쓰는 역사의 여신이자 뮤즈 중의 하나인 클리오(Clio)임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회화라는 예술을 알레고리로 표현한거죠. 주인공은 뒷모습만 묘사된 화가입니다. 화가를 회화 예술의 상징으로 승격시키는 작품인 셈입니다.
![카라바조의 대작 3점이 나란히 걸려 카라바조의 차력쇼를 보여주는 방. 왼쪽 끝이 [로자리의 성모], 오른쪽 끝이 [다윗과 골리앗의 머리]다. ©김슬기](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29628xchc.png)
![Caravaggio [Crowning of Thorns], 1603 ©Kunsthistorisches Museum](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33221bzoy.png)
미술여행을 하다 보면 미술관과 미술관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놀라운 순간이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가시관을 쓰다(Crowning of Thorns)>(1603)를 만난 것이 저에겐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가시관을 쓰다>는 빌라도의 심문 이후, 예수가 군인들에 의해 가시 면류관을 쓰는 고초를 당하는 순간을 그렸습니다.
고초를 당한 직후 예수는 빌라도 총독의 손에 이끌려나와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받게 됩니다. “이 남자를 보라(Ecce Homo)”라는 외침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발굴한 카라바조의 진품 <Ecce Homo>의 병사와 이 그림 속 병사의 모습, 예수의 모습이 닮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빛과 그림자 등의 표현은 달랐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꿰는 화가의 두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마드리드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방에도 왕실 초상화 9점이 걸려 있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럽게 묘사된 어린 공주의 초상은 정말 인기가 많은 작품입니다. 마르가리타(1651~1673)는 펠리페 4세와 그의 두 번째 아내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의 결혼에서 태어난 첫 아이였습니다. 일찍이 그녀는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신부로 선택되면서 스페인 왕실은 2~3년 간격으로 초상화를 빈으로 보냈습니다. 첫 번째로 그려진 분홍 가운을 입은 마르가리타의 그림은 세 살의 공주를 보여줍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Infanta Margarita in a pink Gown], 1654 ©Kunsthistorisches Museum](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36934lmxz.png)
![Pieter Bruegel [Hunters in the Snow (Winter)], 1565 ©Kunsthistorisches Museum](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40397jrzj.png)
피터 브뤼헐은 종교적 주제를 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농민들의 일상을 애정과 유머를 담아 그린 사실적인 회화입니다. 덕분에 ‘농부의 브뤼헐’이라고 불렸죠. 그의 많은 풍경화는 미술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었습니다. <눈 속의 사냥꾼(겨울)>(1565)은 서양미술사의 자연과 계절이 주인공인 첫 겨울 그림으로 알려졌습니다. 손에 잡힐 듯 차디찬 겨울을 묘사한 그림 속에서 여우 한 마리만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 무리는 지친 개와 함께 마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놀이의 묘사 등으로 이 그림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Pieter Bruegel [The Tower of Babel], 1563 ©Kunsthistorisches Museum](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43850ucks.png)
마지막으로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6~1593)를 만나봅니다. 밀라노 출신이었지만 그는 1562년부터 빈과 프라하의 궁정 화가가 됐습니다. 다재다능해서 초상화 외에도 결혼 축하연을 위한 무대 디자이너로도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1563년에 그는 돌연 사계절을 그린 연작을 발표합니다. 각각의 계절을 대표하는 온갖 식물을 그리는 것만으로 그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냅니다. 시각적 착시를 사용한 독창적인 그림으로 그는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됩니다.
![Giuseppe Arcimboldo [Summer], 1563 ©Kunsthistorisches Museum](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48471bwjk.png)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는 아우구스투스의 개선 행렬을 위해 로마로 끌려가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사에 물려 자살을 했습니다. 말년의 궁정 화가는 두 가지 대조적인 회화적 개념을 결합시킵니다. 하인들은 다채로운 표정과 자세로 사실주의적으로 표현되어있죠. 반면 여왕은 차분하고 엄숙하게 앉아서 죽음을 맞습니다. 단호한 성정을 보여주는 로마 조각상처럼 고전적인 자세입니다.
이 그림은 여왕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에로티시즘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베니스에서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던 탓에 그는 누드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탁월한 표현력에도 불구하고 상반신을 위주로 그려서, ‘발을 못그리는 화가’라는 별명도 얻었죠. 클레오파트라의 발도 역시 그리지 않은 것이 눈에 띕니다. 발 그림에 자신이 있었다면 우아하게 누운 자세의 죽음을 묘사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림의 모델은 카냐치의 애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이후 세대의 바로크 화가였던 카냐치도 여자와 범죄가 늘 따라다니는 선배 못지않은 사고뭉치였습니다. 사후에 잊혔다가 3세기 만인 1950년대에야 그는 재발견됐습니다. 극적인 복권의 과정까지도 카라바조와 닮았습니다.

![윤종숙의 [금강산] ©김슬기](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26/mk/20250426132159645amch.png)
Mumok에서는 반가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윤종숙의 <금강산>이 영구 설치 작품으로 1층 로비 벽면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길이가 14.4m에 달하는 거대한 벽화를 통해 작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회화적으로 접근합니다. 손바닥을 사용해 부드러운 색채의 추상화를 그리는 윤 작가는 30년째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서구 모더니즘과 동아시아의 전통, 특히 한국의 산수화(山助史)의 패러다임을 결합해 완전히 반(反)기념비적인 풍경화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영혼의 풍경”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렸습니다.

전시에서는 약 50점의 조각품과 사진, 포토콜라주 및 드로잉과 함께 그의 시대적 맥락을 유추할 수 있도록 프랜시스 베이컨, 루이즈 부르주아, 콘스탄틴 브란쿠시, 에드가 드가, 앤디 워홀 등 로쏘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의 작품도 나란히 설치해 대화를 나누도록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미술관 입구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부터 ‘Words to Walk On’이라고 새겨진 텍스트 작업이 눈에 띄었습니다. 또 다른 기획전의 주인공인 릴리안 진스(Liliane Ljins, 1939~)입니다. ‘그녀’, ‘흐름’, ‘빛’과 같은 자신의 예술적 실천 활동에서 중요한 용어를 카펫 디자인에 엮어내고, 이를 흐르는 물이라는 모티프와 결합하는 독특한 작업이었습니다. 언어와 시가 미술과 만나는 공공 예술은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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