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척 말라""질문 말라"…백강현 위한 영재학교는 없었다
“강현이 한 명 때문에 학교의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강현이가 시스템에 맞춰라.”
초등학생 나이로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던 백강현 군의 부친은 “아들이 형들과의 조별 발표 과제를 힘들어한다”며 평가 방식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가 담임교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백군은 조별 과제 등 학교 생활을 하면서 5살 이상 나이가 많은 학우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학교폭력 논란까지 일면서 백군은 자퇴서를 제출했다.
백군의 사례는 국내 영재교육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다. 국내 영재교육 대상자는 2003년 1만9974명에서 2022년 7만2518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 영재교육 기관도 1486곳에 달한다. 백군이 입학한 서울과학고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영재학교다. 하지만 10살 어린이에게 고등학교 생활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극소수 '고도영재'…육성 시스템 없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이 2005년 신설된 이후 특례자로 지정된 사례는 2016년 1명에 불과했다. 최수진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 소장은 “고도영재에 대한 판별 기준이나 도구가 부족하고 영재성 수준에 따른 구체적인 지원 방안과 체제가 마련돼있지 않았다. 올해 12월까지 관련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도영재가 상급 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또래에 비해 뛰어난 고지능 영재의 학습 능력, 호기심, 창의성이 학교 생활이나 일상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2019년 KAIST 과학영재교육원이 ‘영재발굴단(SBS)’에 출연한 (잠재적) 고도영재와 학부모 등 12명을 인터뷰한 결과 대부분 학교수업이나 또래와의 대화에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한 응답자는 “수학을 잘하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들이 얘기를 안 듣고 다른 얘기를 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특별한 질문을 하지마라”, “항상 겸손하고 잘난 척 하지마라” 등의 주의를 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조현철 군산대 교수(한국영재교육학회장)는 “인지 발달에 상응하지 못하는 정서적, 사회관계적 발달 상황이 미스 매치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재학교는 의대 사관학교…영재 교육 본질 흐려
영재학교나 과학고의 분위기가 영재교육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9~2021년 전국 7개 영재학교 졸업생 2097명 중 178명(8.5%)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학교가 의대 사관학교라는 오명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2017년 영재학교에 의약학계열 진학시 불이익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학칙에 명시하도록 했다. 일부 과학고는 의대 진학시 졸업유예(한국과학영재학교), 장학금 반납(서울과학고) 등의 패널티를 주기도 했다.
국가 지원 필요…“다양한 기회 열어줘야”
류지영 KAIST 영재정책센터장은 “고도영재는 워낙 극소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지원이 체계적인 국가는 많지 않다”면서도 “다만 테렌스 타오는 초등학교에서도 과목별로 학년을 달리해 수업을 들었고 고교를 다닐 땐 대학 수업도 함께 들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특별한 영재에게 다양한 기회가 열려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지·장윤서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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