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세계 평화 손 놓는 강대국, 더 절실해지는 민족자결

2025. 8. 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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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는 국제질서, 세계는 어디로 가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세계인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를 맞으면서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독일 통일,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이 시작되면서 작은 국가들에게도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민족자결주의와 독립적 권리가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 제국주의 질서 대체한 1941년 대서양 헌장과 유엔, 세계 평화의 근거
지금처럼 전쟁 방치하면 강대국 득 보겠지만 약소국 성장은 미지수
2차대전 전 제국들의 다극체제나 미·중 신냉전 가능성은 낮아 보여
한국은 강대국 의존 벗어나 중장기 외교 정책과 남북 관계 리셋해야

1990년대 구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에서 진행된 내전과 학살, 2000년대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테러 조직인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와의 전쟁,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지고 있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다극 체제로 가는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부상과 함께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냉전체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신냉전의 상황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냉전 시대에 두 강대국이 자유 세계와 공산권의 컨트롤 타워로서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압도적인 군사력이었다. 두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능력은 다른 나라들이 동맹을 형성하더라도 대응하기 어려운 넘사벽이었다.

둘째로 두 국가의 압도적 경제력이었다. 경제력 면에서 한계에 부딪힌 2세계가 먼저 붕괴하였지만, 자유 세계와 공산권 모두 미국과 소련의 경제력 없이 세계 체제를 이끌어가기 어려웠다. 자유 세계에서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그리고 자유무역체제, 공산권에서는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가 경제 체제를 이끌고 있었다.

셋째로 소프트파워였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과 함께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개발 협력을 가장 중요한 소프트파워로 상정했다. 이는 많은 신생 독립국들이 원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한 독립적 경제구조를 이룰 수 있는 이상적 방법이었다. 소련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거대 자본에 의한 경제적 종속에 대한 반대를 이상으로 내세웠다.

제국 해체라는 공감대
이렇듯 세 가지 특징은 냉전체제가 유지되는 중요한 힘이 되었지만, 이와 함께 많은 국가들이 과거 조공외교와 비슷하게 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존했던 데에는 두 체제가 공히 동의하는 원칙에 대해 신생국들이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즉, 약육강식의 질서와 제국주의·식민지의 질서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에 이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1945년이 한국에 광복을 가져다준 해였다면, 세계사적으로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기초한 제국주의적 질서가 막을 내린 해이기도 했다. 공산주의는 그 시작부터 제국주의 질서를 반대하고 있었고, 미국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의 질서가 자본주의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했다.

몇 개의 제국이 세계를 분할한다면, 세계 시장의 규모가 줄어들고 자본주의의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존 제국들이 유지될 수 있는 동력을 잃었고, 미국은 민족자결주의를 지지했다. 전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을 만들면서 더 이상의 식민지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면서 위임통치(mandate)라고 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위임통치
물론 위임통치 제도는 당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에 있는 독일의 점령지 또는 조차지들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위임통치 지역이 되었는데, 이 지역들은 식민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군사 요새화되었고, 많은 한국인들이 징용으로 끌려갔으며,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지가 되었다.

1945년 이후 미국은 위임통치를 신탁통치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은 이에 대해 반대하였다. 일본에 의한 위임통치를 관찰해 왔기 때문에 신탁통치 역시 자치나 독립을 보장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영국은 위임통치나 신탁통치가 자신의 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반대에도 미국은 제국의 해체를 밀어붙였다. 진주만 습격 이전인 1941년 독일에 대항하겠다고 선언한 영국의 처칠 수상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반나치 참전을 요청했을 때 미국은 영국에게 대서양 헌장을 내밀었다. 영토나 세력확장을 추구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빼앗겼던 주권과 자치정부를 대중들이 다시 찾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대서양 헌장의 중요성
아울러 경제적 번영에 필요한 무역과 세계의 원자재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개선된 근로기준과 경제적 발전 및 사회적 안전 확보를 위한 국가들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전 세계의 국민들이 공포와 궁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생을 살 수 있는 평화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었다. 이를 위해 폭력의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결론이었다.

이러한 대서양 헌장에는 소련을 비롯한 33개국이 승인했으며, 이는 1945년 이후 국제연합(UN)의 설립과 함께 전 세계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이는 양 진영의 대립, 그리고 한국과 베트남에서 발생한 냉전 속의 열전 속에서도 약소국가들이 독립과 자치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근본적 뒷받침이 되었다.

실제 냉전 기간 동안 세계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의 변화는 2차 산업혁명 시기 이전까지 몇 만 년 간 이루었던 문명 발전에 버금갈 정도의 큰 것이었다. 게다가 변화의 시간도 단축되고 있다. 1·2차 산업혁명이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면 2차에서 3차 산업혁명까지는 60여년, 3차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30여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가?
20세기의 역사를 본다면, 인류의 발전이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자결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지난 80년 중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직후의 시기에 10% 내외의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탈냉전과 함께 세계적으로 시장이 넓어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민주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환경이 형성되었던 점 역시 매우 중요했다.

이렇게 지난 80년의 역사가 인류 발전의 근본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세계질서는 1945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유럽국가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제국이 중심이 된 다극화 체제가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질서를 이끌어오던 자유와 자결이라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법과 기구가 무력화되고 있다.

전쟁의 책임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서양 헌장에서 폭력의 사용 포기를 선언했고, 1928년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통해 전쟁을 통한 갈등의 해결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전범들이 승자의 재판이라고 항변했음에도 불구하고, 1945년 뉘른베르크와 도쿄 재판에서 독일의 나치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었다.

리셋이 필요한 시점
그러기에 한국전쟁이나 걸프전에서 UN은 다국적군의 무력 사용을 승인했다. 이는 전쟁을 먼저 일으킨 전범들에 대해 평화를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지금 일부 강대국들은 우크라이나를 먼저 침략한 러시아에 책임을 묻고 있지 않으며, 대량살상무기를 만든다는 오해로 개입했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현재와 같은 질서가 계속된다면, 몇몇 강대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성장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대서양 헌장이 선언했던 것처럼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해서 약소국을 포함한 세계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미래 성장이 가능할까?

약소국이 독립과 자치, 그리고 번영의 가능성을 믿으며 강대국에 편승했고, 이를 통해 강대국의 주도 하에 평화가 유지되었던 세계질서가 다시 가능할까? 위기가 상존했기에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살았던 냉전체제가 이제 와 보니 오히려 더 안정적이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자유와 민족자결 원칙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미래를 헤쳐나가야 할지 걱정이다.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안보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한국의 국가적 이해관계만을 앞세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모든 국민들이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고 강대국의 입맛에만 맞추어갈 수도 없다.

급한 불은 꺼야 하지만, 보다 중장기적인 외교 비전이 필요하다. 지난 80년간의 교훈을 바탕으로 강대국에 편승했던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세계질서와 변화된 한국의 위상 속에서 중장기적 외교적 전망과 정책이 필요하다. 한중수교, 북미정상회담, 북한의 러시아 파병 등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한미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리셋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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