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⑭'안동찜닭'이 살려낸 전통시장
골목 지키며 찜닭 메뉴 개발·서비스 개선으로 부활 날갯짓
안동 간고등어·소주 등의 특산품과 시설현대화 등도 한몫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더욱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날로 늘어가는 쇠퇴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안동=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경북 안동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있어 해산물을 소금 처리하는 '염장법'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멀리 바다와 항·포구에서 들어오는 해산물을 오랫동안 보관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교 문화의 중심지로 제례가 잦았던 만큼 제수인 문어, 조기 등의 해산물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안동 간고등어가 특산품이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반면에 안동찜닭은 이런 역사와 사연 없이,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서민 음식'에 가깝다. 그런데도 간고등어가 넘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전국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지역의 대표 음식이 됐다.
안동찜닭의 정확한 연원은 확인되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고 남은 닭고기와 음식을 간장으로 비벼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조선시대 안동의 부자 동네에서 특별한 날 해먹은 닭찜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있다.
가성비 좋아 서민에 인기 끌며 대표 음식으로 성장
그러나 안동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안동구시장 상인들이 개발한 퓨전 요리라는 설이 정설에 가깝다고 한다. 프라이드치킨 등에 위기감을 느낀 안동구시장 닭 골목 상인들이 1970년을 전후해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가성비가 좋아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서민들에게 인기를 끌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안동구시장에는 안동찜닭 가게가 전체의 15%가량인 30곳가량이나 된다. 안동찜닭 집이 몰려있는 안동구시장 골목은 '찜닭 특화 거리'로 지정됐을 정도다.
안동찜닭은 죽어가는 전통시장인 안동구시장을 살린 음식이기도 하다.
안동구시장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안동장의 명맥을 잇는,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안동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곡물, 제수, 땔감 등을 거래하며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시청과 경찰서, 버스터미널, 기차역 등을 끼고 있어 1990년대까지도 지역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의 자리를 유지해왔다. 한때는 점포 수가 300∼400개나 됐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일과를 끝나면 값싼 안주에 술 한 잔 마신 뒤 장을 봐서 가고, 낮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몰려와 떡볶이며 튀김, 순대, 김밥을 사 먹었다. 어두워지면 안동에 3개나 있는 대학교의 학생들이 음식점마다 자리를 잡고 막걸리와 소주잔을 기울였던 곳이기도 하다. 근처에 있는 향토사단의 장병들도 휴가나 외출, 외박을 나오면 구시장을 찾았다. 상인들이 종일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정유성 안동구시장 상인회장은 "늦은 시간에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시민들까지 찾아오는 곳이어서 밤 10시가 넘도록 시장이 시끌벅적했었다"며 "참 좋은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인구 감소와 주요 시설 이전으로 시장 침체
그러나 전통시장 침체라는 파고를 안동구시장 역시 피해 가지 못했다. 한때 24만명에 이르던 인구가 15만명대로 쪼그라들고 터미널과 기차역 등이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직선거리로 200m 남짓한 곳에 들어선 대형마트는 직격탄이 됐다.
정 상인회장은 "심지어 우리 구시장의 상인들도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갈 정도로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문을 닫았고 매출이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며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다시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안동구시장의 부활은 다소 뜻밖의 일이 발단이 됐다.
2000년대 중반 한 방송국의 유명 프로그램에 안동찜닭이 소개되면서 전국에서 식도락가들이 물밀듯이 몰려든 것이다.
상인 오팔식씨는 "주말이면 찜닭 골목은 바늘 하나 꽂아 넣을 곳이 없을 정도로 미어터졌다"며 "어디서 저 많은 사람이 오나 싶을 정도로 북적거렸다"고 기억했다.
안동찜닭은 닭고기에 쫄깃한 당면과 감자를 비롯한 각종 야채를 넉넉히 넣고 간장으로 조려 만든다.
안동시농업기술센터는 "닭고기의 담백함, 갖은양념의 달콤함, 간장소스의 짭짤함이 잘 어우러진 음식"이라며 "무엇보다 가격에 비해 양이 푸짐해 닭 한 마리에 공깃밥 1∼2개면 성인 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안동찜닭은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은 대학생과 군 장병들, 말단 공무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인기를 끌며 발전해온 메뉴다.
토박이 이수호(51)씨는 "젊은 사람이 배를 채우려면 혼자 닭 한 마리를 다 먹어도 부족할 판인데, 배고픈 시절에 그런 돈이 어디 있었겠느냐"며 "닭 맛을 느끼면서 배도 채울 수 있는 값싼 음식이 필요했는데 그게 안동찜닭이었다"고 말했다.
상인 정우경(51)씨는 "찜닭은 1970년대부터 50년이 넘도록 이 골목에서 서민들과 함께 해왔다"며 "그러면서 구시장을 넘어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성장해왔고, 그 과정에서 메뉴와 맛이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맛 다양화해 택배·밀키트로 전국 유통
실제 구시장에서 파는 찜닭은 종류가 4∼5가지나 된다. 젊은이들의 성향에 맞춰 찜닭에 치즈를 비롯한 다양한 소스와 재료를 넣고, 맛도 순한 맛부터 매운 맛까지로 세분화했다. 집집이 맛을 내는 비결도 다르다. 상인들은 전통시장의 부정적 이미지를 뛰어넘기 위해 위생과 서비스에도 더욱 신경을 썼다.
유명 프로그램이 도화선이 되기는 했지만 안동찜닭의 성공은 이런 상인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왔다는 최광렬(42)씨는 "워낙 유명해서 한번 먹어보려고 왔다"면서 "강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아주 좋다. 들었던 것보다 더 맛있다"고 촌평했다.
구시장의 안동찜닭은 요즘에는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나가고 있고 대형마트에도 납품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에 택배로 내보내는 물량만 1t 트럭 1대분이 넘는다.
최근에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장기 보관이 가능한 밀키트(Meal kit) 형태로 대량 생산돼 판로를 넓혀나가기도 한다.
한 상인은 "유명한 몇몇 찜닭은 주말이면 한참씩 줄을 서야 한다"며 "이들 가게는 현장 판매와 택배를 합해 하루 500만∼600만원어치는 족히 판다"고 귀띔했다.
안동찜닭은 죽어가는 구시장을 살린 구세주이기도 하다.
찜닭을 먹으러 온 시민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시장 안을 돌며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특히 구시장은 찜닭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인 간고등어, 소주 등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찜닭과 간고등어, 소주 등의 특산품이 어우러지며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이웃 상점들도 덩달아 특수를 누리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정 상인회장은 "지금은 찜닭이 구시장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지만, 원래는 간고등어와 소주, 마와 같은 특산품도 아주 유명했다"며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찜닭을 먹고 시장을 돌면서 이런 특산품이며 과일이며 주전부리를 사 가면서 조금씩 옛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 간고등어·소주 등 다양한 특산품도 활성화에 기여
구시장의 부활에는 안동시청과 상인회의 노력도 큰 몫을 했다.
안동시청과 상인회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고객지원센터와 주차장,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확충했고 연중 쇼핑이 가능하도록 차광막 등을 설치했다. 2013년에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는 등 각종 특성화사업 공모에 포함되면서 시설을 현대화했고 장난감도서관 등의 문화시설도 만들었다. 결혼 이민자 여성들이 각국의 음식을 선보이는 '다문화 먹을거리 마차', 크고 작은 문화공연 등도 먹을 거리, 즐길 거리를 늘려 구시장 부활에 기여하고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찜닭이 없었다면 구시장의 부활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 바탕을 이루는 상인들의 오랜 노력과 함께 다양한 특산품을 살 수 있는 다양성, 관계 기관들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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