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심사받겠다”...이재명 대표의 속내는?

김지환 기자 2023. 8.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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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 소환 때와는 달라진 이재명 화법
지지층 결집·사법리스크 탈피… “두 마리 토끼 노렸다” 분석도
법조계 “‘영장기각 후 역풍’ 노리고 배수의 진 친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성남FC 의혹으로 한 차례, 위례·대장동 의혹으로 두 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올해만 4번째 검찰 출석이다. /뉴스1

“제 발로 출석해서 심사받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꼼수, 포기하고 당당하게 비회기 때 청구하십시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백현동·성남FC 의혹 관련 총 네 차례 소환조사를 받는 동안 그의 입장문은 계속 바뀌어 왔다. 그간 ‘정치검찰’ ‘독재정권’ 등 윤석열 정부·검찰을 비판하며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정치 행보’를 벌였다면, 지난 17일 네 번째 조사를 받으면서는 선거유세를 방불케 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영장을 청구한다면 제 발로 (영장)심사를 받겠다”고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가 정면 승부에 나선 것은 구속영장 기각으로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겠다는 ‘노림수’”라고 보고 있다.

◇”적법 행정·민생 파탄·검찰 공격”… 정치 행보 보였던 이재명

이 대표는 17일 네 번째 검찰 조사를 제외한 모든 조사에서 검찰과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첫 조사는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과 관련한 것으로, 지난 1월 1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이뤄졌다. 이날 A4용지 2장 분량에 약 2200여자에 달하는 입장문을 10여분 간 낭독한 이 대표는 전직 대통령들까지 거론하며 ‘성남시의 적법한 행정’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성남FC 직원들이 광고를 유치하면 세금을 절감해 시민들의 이익이 될 뿐, 개인 주머니로 착복할 구조가 아니다”며 “검찰은 적법한 행정과 정당한 광고계약을 엮어 부정한 행위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검찰의 이런 이상한 논리는 정적 제거를 위한 조작 수사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라고 하면서 고(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또한 ‘검찰 쿠데타’에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28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된 대장동 의혹 조사에서도 이 대표는 검찰과 정부를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윤석열 독재 정권이 법치주의와 헌정 질서를 파괴한 현장”이라며 “정적 제거를 위해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주장했다. 500여자가 안되는 입장문을 읽는 데 3분 남짓한 시간을 소요한 반면, 정작 중요한 대장동 의혹에 관해서는 “진술서에 다 담았다”며 말을 아꼈다.

13일 뒤인 2월 10일, 대장동 의혹 2차 조사에선 민심에 호소하는 정치적 행보로 선회했다. 1800여자 분량의 입장문을 읽은 이 대표는 혐의를 부인하기보다 경제난을 들먹이며 민심을 자극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이 대표는 “물가부터 금리, 기름값까지 월급 빼고 모든 것이 오른다”며 “민생에 무심한 정권이 정치검찰을 총동원해 칼춤을 추는 동안, 곳곳에서 곡소리가 커져간다”고 했다.

이어 “치솟는 대출이자에 제2·3의 빌라왕을 만나지 않을까 밤잠 설치는 국민이 전국에서 고통을 호소한다”며 “공정한 수사로 질서를 유지해야 할 공권력은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곽상도 전 검사의 50억원 뇌물 의혹이 무죄라는데, 어떤 국민이 납득하겠나”라며 “이재명 잡겠다고 쏟는 수사력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50억클럽 수사에 썼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손민균

◇”영장심사 제 발로 가겠다”…코너 몰린 李의 승부수

지난 17일 검찰에 네 번째로 소환된 이 대표는 이제까지와 다른 태도를 취했다. 오전 10시 25분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지지자가 모여있는 단상 앞에 올라서서 자신을 시지프스(신들로부터 바위를 정상에 굴려 올려놓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형벌을 받은 인물)에 빗대며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제 발로 심사 받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비회기 때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취지인 것으로 읽혀진다. 이어 “검찰은 ‘정치’가 아니라 ‘수사’를 해야 한다”며 “회기 중 영장청구로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정치 꼼수는 포기하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이번 출석을 계기로 선거유세와 같은 모습을 연출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과 증언이 이어졌다. 또 의원총회에서는 ‘지도부 총사퇴’ 요구까지도 나온 바 있다. 이 대표는 당내에서도 궁지에 몰린 듯한 모양새였는데, 지지층 결집으로 이를 타개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대표의 ‘영장청구 승부수’에 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본다. 심사가 열린 뒤 구속영장 결과에 따라 이 대표와 검찰 모두 큰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조인이었던 이 대표는 법원도 야당의 대표를 구속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며 “퇴로가 없는 이 대표가 ‘기각 후 역풍’으로 반전을 꾀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 입장에서는 이전 정부부터 이어진 대장동 등 수사가 동력을 잃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대표는 당내 입지 회복은 물론, 사법 리스크 탈출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영장이 발부되면 이 대표의 정치생명은 거기서 끝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가 이 점을 고려해 일종의 배수의 진을 쳤다는 게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또 다른 특수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영장청구 없이 불구속 상태로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영장청구가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아는 이 대표가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에게는 회기가 시작하는 9월, 영장을 청구해 발부 결정을 받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며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부결되는 것도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다만 이번 사안에서는 영장 발부 조건 중 ‘혐의 소명’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검찰은 이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직 야당 대표인 만큼 도주 등의 우려가 낮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정치적 셈법 등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절차와 순리에 따라 수사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8일 ‘국회 비회기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이 대표의 주장에 “희한한 특별대접 요구”라며 “검찰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사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범죄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마치 식당 예약하듯 자기를 언제 구속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누가봐도 비정상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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