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꿈 꾼 ‘애플 AI 혁명’ 팀 쿡이 무너뜨리나
2분기 실적 발표 애플 주가 10% 하락
4분기 매출 감소·생성형 AI 언급 없어
팀 쿡, 생성형 AI 언급 최소화하는데도
투자자 '20억 활성기기+AI=개인 비서'
스티브 잡스 2011년 "웹 다음은 AI 전망"
삼고초려 끝 시리 인수 후 아이폰 탑재
생성형 AI 막대한 투자, 낮은 순자산 발목
자사주 매입 주춤할 수도···주가 악영향
지난 3일 애플은 2분기 실적을 내놨습니다. 매출 818억 달러(약 107조 원), 순이익 199억 달러(약 26조 원)를 내놨습니다. 분기 기준으로 애플 매출은 2022년 4분기 이후 이번까지 3개 분기 연속 뒷걸음질 쳤습니다. 2016년 이후 처음이랍니다. 실적은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지만, 주가는 하락했습니다. 3분기 매출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주가도 부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지난달 31일 196.45달러로 고점을 찍은 후 지난 9일(현지시간) 기준 10% 하락한 178.19달러에 마감했습니다.
이날 부정적인 3분기 전망 말고 애플의 주가를 떨어뜨린 또 다른 요인은 바로 AI에 대한 청사진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도 생성형 AI 경쟁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이른바 ‘에이작스(Ajax)’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실적 발표에는 많은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애플의 생성형 AI 청사진이 나올 줄 알고 말입니다.
이는 실망으로 돌아옵니다. 팀 쿡 애플 CEO(최고 경영자)가 지난 3일(현지시간) 콘퍼런스콜에서 에이작스 개발 사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서였습니다. 5월 콘퍼런스콜에서도 AI 관련 질문에 마지못해 두 번 정도 거론했습니다. 팀 쿡 CEO는 “애플도 수년 동안 생성형 AI 및 기타 모델을 연구해 왔다”며 "우리는 AI를 기본적인 핵심 기술로 보고 있으며, 그것들은 우리가 만드는 모든 제품에 사실상 내장돼 있다"고 원론적 수준 답변만 내놓는데 그쳤습니다.
주가는 실적과 기대, 유동성의 함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애플의 AI 미래 청사진, 하다 못해 에이작스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기대했던 투자자 입장에서는 맥 빠지는 일이었습니다. 한없이 치솟았던 기대감은 사그라들었고, 애플 주가도 힘을 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팀 쿡이 AI 관련 발언을 극도로 아끼고 있지만, 낙관적인 스토리텔링도 여전합니다. 바로 전세계적으로 퍼진 애플의 기기와 AI의 결합이 또 다른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올 2월 컨퍼런스콜에서 팀 쿡은 “전세계 애플의 활성 기기 수가 20억 대를 넘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전세계 인구가 80억 명인데, 단순 계산하면 4명 중에 1명은 애플 기기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어마어마하죠.
일각에서는 20억 개의 기기를 두고 많은 상상력을 가동합니다. 20억 개의 애플 기기에 AI가 적용된다면, 특히 시리에 AI가 적용돼 우리가 묻는 질문에 척척 대답을 해준다면,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물건을 바로바로 추천해준다면, 이라고 말입니다. 뭔가 익숙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나요? 아이언맨의 ‘자비스’ 같은 개인형 비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게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혁신의 아이콘,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 애플 신화의 주인공인 스티브 잡스는 시리를 인수할 때부터 AI와 결합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2010년 4월 애플은 20억 달러(약 2조 2700억 원)에 스마트폰용 인공지능 음성 비서 앱인 '시리 어시스턴트'를 인수했습니다. 2011년 10월4일 시리가 탑재된 아이폰4s를 처음 출시했습니다.
당시 잡스는 시리를 인수하기 위해서 시리 어시스턴트 창업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삼고초려한 것이죠. 잡스가 시리를 인수하고 언론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구글 등의 ‘검색 비즈니스’가 핫할 때였습니다. 당시 잡스는 “애플은 시리를 통해 검색 비즈니스에 진입하는거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는 “시리는 AI(인공지능)이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애플 임원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잡스는 인터넷 다음은 인공지능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판단했답니다. 정보의 홍수인 인터넷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정리'해 우리에게 알맞은 솔루션을 제공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본 것이죠. 개인형 인공지능 음성 비서, 바로 시리죠.
자, 그런데 여기서 하나 문제가 생깁니다. 생성형 AI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크게 3가지 부문에서 돈이 든다고 합니다. 우선은 데이터, 서버 구축, 인건비 등 운영 비용 이라고 합니다.
생성형 AI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를 사오고, 이걸 또 가공해야 하는데 이때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이 비용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는데,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돈이 든다고 합니다. 서버는 말할 것도 없죠. 오픈AI가 공개한 챗GPT-4에는 엔비디아의 GPU A100 1만 여개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난 8일 기준으로 GPU A100이 약 2500만 원에 판매되더라고요. 단순 계산해도 GPU를 사는데만 2500억 원이 드는 셈입니다. 서버를 구축하기 위한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고 GPU가 탑재된 서버를 사고, 운영하기 위한 기반시설 등 2500억 원의 최소 10배가 넘는 비용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운영 비용은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챗GPT 가동에 하루 70만 달러(약 9억 원)가 들 것이라는 추산이 있습니다. 1년이면 3285억 원입니다. 최초 AI 서버 구축 및 1년 운용에만 최소 3조 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데이터를 사오고 분류하는 비용, 인재 영입 등 제반 비용은 모두 빠져 있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발표한 2분기 실적 기준으로 애플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48.36입니다. 처음 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코스닥에서나 많이 보던 극단적 지표여서입니다. S&P500 그룹의 평균 PBR은 통상 3~5입니다. 애플은 평균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죠. 한국의 투자 구루도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서울대 컴퓨터 공학부 교수이자 '퀀트 명가'로 꼽히는 옵투스자산운용을 이끄는 문병로 대표와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입니다. 두 분은 각각 2023년과 2021년 이 문제를 두고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편집적인 PBR, 있는 돈 조차 자사주 매입에 쓴 극단적인 자산 전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2022년 기준 애플의 순자산은 약 621억 달러(81조 6700억 원)입니다. 지난 7일 기준 시가총액은 약 2조 8000억 달러(3683조 4000억 원). 순자산과 시가총액이 45배나 차이 납니다. 이 순자산으로는 겨우 1년 남짓한 기간의 운영비 밖에는 안된다고 합니다. 다만 이렇게 순자산이 적지만 현재 문제가 안되는 건 애플의 탁월한 현금 창출력 때문입니다. 순이익 마진율이 25%에 달한다고 하죠, 2021년 기준으로 애플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한화로 127조 원에 달합니다.
이런 극단적 재무 전략 배후에는 팀 쿡 애플 CEO가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팀 쿡은 애플 CEO를 맡았지만 주가는 연일 곤두박질 쳤습니다. 2012년 여름에는 주가가 반토막 났고, CEO로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시선에 직면했습니다.
팀 쿡은 잡스가 생전에 하지 않던 한 가지 카드를 꺼내듭니다. 자사주 매입입니다. 잡스는 자사주를 살 바에는 신제품 개발이나 인수합병(M&A)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말해왔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반면 팀 쿡은 2012년부터 2023년 5월까지 6620억 달러(약 870조 8000억 원)의 자사주를 사들였습니다. 이 기간 주가는 동반 상승해, 현재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기록 중입니다.
자,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죠. 이 자사주 매입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시장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생성형 AI 투자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여기에 돈을 쓰고 나면 자사주 매입에 쓸 여력이 있겠느냐는 거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애플은 3분기 연속 매출 감소 중이죠, 다음 분기 매출도 좋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현실화할 경우 애플은 2001년 후 처음으로 4분기 연속 매출 감소를 기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애플 입장에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죠. 나갈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은 줄어드니까요. 시장에서는 당분간 애플 주가가 변동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고점 부근인데다, 매출 전망도 밝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냥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플의 극단적인 자사주 매입에 대해 지적했던 김학균 센터장님께 최근은 어떻게 보시는가 물어봤습니다. 애플의 AI 투자로 인한 자사주 매입 감소에 대해서는 '해당 회사의 전략적 결정'이라면서 코멘트를 하지 않으셨는데요. 다만 애플의 AI 진출에 대해서는 '포텐셜'이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문병로 교수님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연락을 취해봤는데, 휴가철인지 연락이 되지 않더라고요. 대신 주요 자산운용사에서 해외 투자를 담당하는 본부장님 몇 분께 여쭤봤습니다. 우선 결론은 ‘애플이 돈 때문에 투자 못하고 자사주 매입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보는 건, 연예인 걱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압도적인 현금 창출력에, 높은 신용등급으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어 당장은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랍니다. 그럼에도 현재 밸류에이션이 높은 구간인 건 맞는 만큼 주가 과열을 식히고 가는 건 맞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향후 일정을 보면 4분기인 9월22일 애플의 아이폰15 출시가 예정돼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부진한 실적 전망을 날릴 '한방'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중입니다. 또 애플의 생성형 AI 프로젝트 에이작스에 대한 추가 언급이 있을 수도 있는 만큼 애플에 대한 희망의 끈을 아직 놓을때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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