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미사일 쐈다면 이미 저승행"…9분 늦은 문자에 분통
31일 북한의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 발사에 따른 서울시의 경계경보 오(誤)발령 소동은 재난안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사이 소통 부족과 기계적인 매뉴얼 대처에 따른 해프닝이었다. 시민들은 느닷없는 경보에 놀라면서도 경계경보를 발령한 지 9분 뒤에야 재난문자가 발송된 점, 재난 문자에 대피해야 하는 이유나 대피소 위치 안내가 전혀 없었던 점 등을 두고 각기 다른 의견을 보였다.
오전 6시 41분, 서울시는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란 내용의 위급재난문자를 보냈다. 동시에 일부 지역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방송을 들으면서 지시에 따라 행동하라. 실제상황”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경계경보는 적(敵)의 공격이 예상될 때 발령하는 민방공 경보다. 곧 공격을 받을 상황이거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발령되는 공습경보보다는 한 단계 아래다. 그런데 이날 무슨 일 때문에 경계경보가 발령됐는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등 자세한 내용은 재난문자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경계경보 문자와 방송 내용은 행정안전부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나와 있는 표준문안을그대로 전송한 결과였다. 이 예규 10조 2항은 재난정보 입력자가 재난정보 입력 시 표준문안을 활용하되 재난상황에 맞는 문안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이날 사용기관명을 행안부에서 서울시로 바꿨을 뿐 표준문안을 그대로 전송했다.
이날 서울시가 전송한 위급재난문자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수시로 울리던 재난문자 알림 기능을 꺼놓았던 이들에게도 전송돼 파급력이 특히 컸다.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르면, 공습·경계·화생방 경보와 경보해제 등 위급재난의 경우 개인 단말기에서 수신을 거부할 수 없다. 알림소리도 60㏈로 테러, 방사성물질 누출 예상 등 긴급재난문자(40㏈)이나 안전안내문자(개인 단말기 설정값)보다 높다.
상당수 시민들은 안내가 늦은데다, 대피 이유와 장소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7)씨는 “만약 미사일이 서울로 발사됐다면 문자를 받았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대피가 가능한 시간에 경계경보를 발령한 것이라면 최대한 빨리, 정확한 정보를 알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포구에 사는 유모(45)씨는 “사이렌 방송에서 ‘북한’ ‘대피’라는 단어를 띄엄띄엄 듣고는 놀라서 아이를 데리고 곧바로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차 안에 머무르다 돌아왔다”며 “대피 요령을 잘 모르니까 무작정 집 외에 갈 수 있는 곳으로 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문자 수신 직후 네이버 앱부터 열어 본 대학생 김지은(21)씨는 “잠깐이었지만 앱도 먹통이라 정말 무슨 일이 났나 싶었다”며 “대피소가 어딘지 몰라서 허둥지둥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네이버 앱은 이날 동시에 접속자가 몰리면서 일시 작동이 멈췄다.
다만, 서울시의 대응이 바람직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강남구에 사는 최민권(28)씨는 서울시 경계경보가 결국 ‘오발령’으로 드러난 데 대해 “서울시에 책임을 떠넘길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전 문제는 주로 늑장 대응으로 발생하는데 다소 과잉 대응했다는 이유로 문제 삼으면 또 눈치보다가 시간이 지체돼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인근 대피소 위치나 기본적인 안전 조처 방법을 숙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실제 발생한 상황에서의 재난 문자였기 때문에 꼭 ‘오발령’이라 볼 수는 없다”며 “갑작스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피해야 할지 우왕좌왕한 건 아쉽지만, 거꾸로 스스로 대처법을 모르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급한 상황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활 반경 내 대피처를 미리 알아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과 안전디딤돌 앱에는 비상대행동요령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경계·공습경보 등 민방공 경보 때는 인근 지하주차장이나 지하철역이 대피소의 역할을 한다. 화학무기 공격 땐 지하와 같은 낮은 곳보다는 건물 옥상 등 높은 곳이 더 안전하다. 대피할 땐 비상식량·응급약품·라디오·손전등·침구·의류 등 대비 물품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가족과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신분증 사본이나 어린이용 명찰을 준비해 놓는 것도 권장하고 있다.
장서윤·김민정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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