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대관식 르포] 찰스3세 황금마차에 빗속 환호…"내 왕 아니다" 시위도(종합)

최윤정 2023. 5. 7.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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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서 15개국 군주 천명…수만명 거리로 나와
"왕실이 국민 통합,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
왕관 쓴 찰스3세, '황금 마차' 타고 버킹엄궁으로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65년간 기다린 왕관을 쓴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6일(현지시간)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향하고 있다. 2023.5.6 merciel@yna.co.kr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찰스 3세 시대 개막을 알리는 대관식에 수만명이 거리로 나와 큰 환호를 보냈지만 한쪽에선 '내 왕이 아니다'라는 구호도 나왔다.

70년 만의 대관식은 국가적 초대형 이벤트로 화려하게 치러졌으나 군주제 논의에도 불을 붙였다.

왕실이 영국의 구심점이라는 신뢰와 세계에 유례없는 제도라는 자부심이 의식 전반에 깔려있지만 미세한 금이 가고 있는 듯했다.

성 에드워드 왕관 쓴 찰스 3세 국왕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6일(현지시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에서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있다. 2023.5.6 photo@yna.co.kr

대관식이 끝나고 오후 1시 반쯤 버킹엄궁 앞 도로 '더 몰'에 찰스 3세 부부가 '황금마차'를 타고 나타나자 양옆으로 늘어선 군중이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힘차게 흔들었다.

오전 9시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린 이들은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라고 외치며 국왕 부부를 환영했다.

찰스 3세는 대관식에서 700년 된 대관식 의자에 앉아 362년 된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임을 공식 천명했다.

왕관을 쓴 찰스 3세가 버킹엄궁으로 돌아오는 '대관식 행렬'은 영국 국왕의 위용을 국민과 세계에 보이는 장이었다.

영국과 영연방 군인 4천여명이 참여한 1.6㎞ 길이의 행렬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트래펄가 광장을 거치는 2.3㎞ 경로를 30분간 행진했다.

군악대의 연주와 군인들의 절도 있는 행진에 도로 양쪽을 여러 겹으로 채운 인파는 열렬한 반응을 보냈다.

버킹엄궁 앞 '더 몰'에 나온 대관식 관람객들 [촬영 최윤정]

절정은 온통 황금색으로 번쩍이며 멀리서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황금마차'였다. 261년 된 '황금마차'는 이날 흐린 날을 배경으로 더욱 돋보였다.

마차에서 찰스 3세 부부가 손을 흔들자 환호성은 최고조로 커졌다.

뒤이어 윌리엄 왕세자 가족이 탄 마차에 조지 왕자, 샬럿 공주, 루이 왕자의 귀여운 모습이 보이자 옆에 선 기자들의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였다.

다른 마차와 차가 지나갈 땐 혹시 해리 왕자가 탔는지 주의 깊게 살피기도 했다.

윌리엄 왕세자의 아들 조지 왕자(빨간 옷)와 루이 왕자 [촬영 최윤정]

'더 몰' 주변은 이미 오전 7시에 가득 차서 통행이 통제됐다. 열혈 팬들은 며칠 전부터 텐트를 치고 노숙하며 명당을 잡은 터였다.

찰스 3세 얼굴이 찍힌 깃발을 몸에 두르거나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 모양 모자, 왕관 등을 쓴 이들을 보면 축제 같았다. 멋진 모자를 쓰고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왕실이 영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았다.

런던에서 3시간 떨어진 스토크-온-트렌트에서 부인, 딸과 함께 온 폴 씨는 "우리의 군주 찰스 3세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폴씨는 "군주제는 잉글랜드 특유의 제도로, 영국에 좋다"며 "공화제를 원하는 사람들이 시위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들은 극소수"라고 주장했다.

영국 찰스 3세 대관식 축하하러 온 해리씨 [촬영 최윤정]

얼굴에 영국 국기 모양으로 그림을 그린 15세 해리씨는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는 걸 느끼고 싶어서 왔다"며 "현대에서 왕실의 역할은 지금처럼 생계비 위기 등으로 어려울 때 나라를 통합하고, 나라에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금마차'가 빛이라면 영국의 현재 어려운 경제 사정은 어두움이다.

영국은 브렉시트, 코로나19 이후 성장 동력이 떨어졌고 물가 상승률이 10%가 넘는다. 작년부터 '생계비 위기'라는 표현이 핵심 열쇠 말이 됐고, 의료·교통·교육 등 공공부문 거의 전부에서 급여를 올려달라며 파업을 하고 있다.

찰스 3세는 대관식 참석자 숫자를 70년 전 여왕 때의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하고 행렬도 단축했지만 1억파운드(1천700억원) 이상으로 알려진 비용을 세금으로 대는 데는 반감이 많이 나온다.

영국 대관식 행렬 [촬영 최윤정]

이날 거리에서 '내 왕이 아니다'(Not My King)라는 구호가 터져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군주제 폐지 시민단체 '리퍼블릭'은 "군주가 아닌 국민 대표가 국가 원수가 돼야 한다"며 대관식 시위 동참을 촉구해 상당히 관심을 받았다.

왕실 행사에 관심을 끄는 것을 넘어서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리퍼블릭' 대표가 이른 아침 트래펄가 광장 주변에서 체포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국 군주제 반대 단체 '리퍼블릭' 시위대 [촬영 최윤정]

이날 '더 몰' 주변에는 경찰과 진행요원이 촘촘하게 배치돼있었다.

경찰은 하루에만 런던에 1만1천여명을 투입했다. 국가원수급 약 100명 등 203개국 대표가 참석하는 초대형 행사이다 보니 비상 상황이었다.

이날 마지막 일정은 버킹엄궁 발코니 인사였다. 갈등 관계인 해리 왕자는 빠지고 커밀라 왕비의 친손자들이 포함되면서 새로운 왕실 가족의 그림이 그려졌다.

행렬이 끝나고 '더 몰'을 개방하면서 사람들은 버킹엄궁을 향해 달려갔다. 찰스 3세 시대에 발코니에 등장하는 '주요 왕실 인사'가 누가 될지에 관심들이 많았다.

공중분열식은 날씨 때문에 취소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작은 규모로 진행됐다. 사람들은 얼굴에 비를 맞으면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날아가는 군 비행기를 보고 즐거워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왕실을 마음의 지지대로 삼아 '평정심을 유지하고 계속해나가기'(keep calm and carry on)를 해온 영국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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