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 파티' 국왕 지울 후계자…'검사 공주' 중태에 태국이 운다 [세계 한잔]

박소영 2022. 12.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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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태국 왕실이 침통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파(PA) 공주로 불리는 태국 왕실의 장녀 팟차라끼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44)가 심장 이상으로 쓰러져 일주일 넘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파 공주는 마하 와치랄롱꼰(70·라마 10세) 국왕의 장녀로, 지방 검찰 등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검사 프린세스’로 알려졌다.


태국 첫째 공주, 심장 이상 의식 불명


팟차라끼띠야파 태국 공주가 지난 2020년 11월 1일 태국 방콕에서 불교 의식을 위해 왕궁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파 공주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태국 북동부 나콘라차시마주에서 열린 육군 주최 군견 대회에 참가했다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즉시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아직 의식불명 상태다.

태국 왕실은 19일 공주의 상태에 대해 공식 발표를 내놨다. 공주에게 심장 문제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안정됐다는 내용이었다. 관상동맥 조영술(심장 혈관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심장 박동은 아직 약물로 조절 중이며 심장·폐·신장 기능은 의료장비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인들이 지난 19일 태국 방콕의 쭐라롱껀 병원에 마련된 팟차라끼띠야파 공주 사진 앞에서 쾌유를 비는 기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공주가 의식을 되찾지 못하자, 정부 각 부처에선 송년회 등 행사를 자제하고 파 공주의 회복을 위한 기도를 지시했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등 정부 인사들의 병문안도 이어졌다.

불교계에선 파 공주의 쾌유를 빌며 하루에 두 번 기도를 하고 있다. 공주가 입원 중인 쭐라롱껀 병원에 마련된 기도 공간엔, 파 공주의 건강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엔 ‘공주는 더 오래 산다’는 해시태그와 공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내용이 담긴 게시물이 수만개가 올라왔다.


검사·외교관 활약…가장 똑똑한 공주


파 공주는 와치랄롱꼰 국왕이 왕세자 시절인 1978년 첫째 부인(소암사윌리 키티야카라)과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자식이다. 와치랄롱꼰 국왕의 7남매 중 맏딸이다.
마하 와찌랄롱꼰 태국 국왕(왼쪽)과 유년 시절 팟차라끼띠야파 공주의 모습. 사진 트위터 캡처

공주는 영국 명문 기숙 사립학교인 히스필드스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2000년에 태국 탐마삿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2005년 미국 코넬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태국으로 돌아온 파 공주는 2006년 방콕 대검찰청 소속 검사로 임용된 뒤 지방 검찰 등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지난 2011년 6월 검사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이 추진했던 아시아·태평양 형사사법협정에 대해 논의하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외교관으로도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슬로바키아에서 태국 대사로,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친선대사도 역임했다. 닛케이아시아는 "파 공주는 왕실 구성원 중 가장 똑똑하다고 평가받은 인물"이라고 전했다.

팟차라까띠야파 태국 공주가 유엔에서 활동하던 모습. 사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캡처


특히 자선사업에 힘쓰며 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1995년 방콕 대홍수 때, 어머니와 함께 재단을 만들어 이재민들을 도왔다. 검사 시절엔 여성 수용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똑똑하고 선한 공주'로 인기를 끌었다.


태국 최초 여왕 거론…차기 왕위 안갯속


파 공주가 쓰러지면서 태국의 왕위 승계도 안갯속이 됐다. 2016년 즉위한 라마10세에겐 아직 공식 후계자가 없다.

5명의 왕자 중 두 번째 부인이 낳은 4명은 왕실에서 내쳐졌다. 승계가 가능한 아들은 평민 출신인 셋째 부인 소생인 티빵꼰 랏사미촛(17) 왕자가 유일하다. 하지만 티빵꼰 왕자 역시 오래 전부터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고 있어 승계가 불투명하다.

와찌랄롱꼰 태국 국왕 대관식이 지난 2019년 5월 태국 방콕에서 열렸다. 공식 직함을 받은 왕실 식구들이 행사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팟차라끼띠야파 공주, 시리완나와리 공주, 수티다 왕비, 티빵꼰 랏사미촛 왕자. 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로 인해 파 공주가 직접 여왕이 되거나, 티빵꼰 왕자를 왕위에 앉히고 섭정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파 공주는 태국 국민들의 높은 호감을 바탕으로 태국 최초의 여왕이 될 가능성이 컸다. 태국은 지난 1974년 헌법을 개정해, 공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

인도 힌두스탄 타임스는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파 공주의 상태는 매우 암울하며, 왕위 계승 등을 논의하는 동안 생명유지 장치로 연명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생활 논란’ 국왕 평판 관리 어쩌나


와찌랄롱꼰 태국 국왕(왼쪽)과 수티다 왕비가 지난 2020년 11월 방콕에서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파 공주가 쓰러지면서 왕실 평판 관리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간 라마10세는 3번의 이혼, 4번의 결혼 등 문란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다. 세번째 부인인 스리라스미를 나체로 만들어 파티를 여는 동영상이 위키리크스에 유출된 바 있다. 팬데믹 시국인 2020년과 2021년엔 값비싼 독일 호텔에 묵으며 한 층 전체를 빌려 20여 명의 여성과 난잡한 파티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 전 국민의 반감을 샀다.

이로 인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왕실과 군주제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형법 112조에 규정된 왕실모독죄를 폐지하거나 형량(최고 징역 15년)을 대폭 줄이는 등의 개정도 요구했다.

한 태국인이 지난 19일 방콕에서 팟차라끼띠야파 공주 초상화를 들고 쾌유를 빌고 있다. EPA=연합뉴스


라마10세는 왕실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태국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장녀 파 공주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 2월 파 공주를 왕실 경호부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자, 공주는 곧바로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임무를 수행해 태국인의 박수를 받았다.

팟차라끼띠야파 태국 공주가 지난해 2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음력설에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태국 왕실청 캡처


윤진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태국인은 왕실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깊다"면서 "시위대는 군주제 폐지보다는 현 국왕의 부패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파 공주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다면, 현 국왕의 여동생으로 국민에게 인기가 높은 마하 짜끄리 시린톤 공주가 왕위를 잇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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