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심쿵 DNA’…백제인이 하트♥를 사랑한 이유는?
‘백제는 사랑이다!’
한국 고고미술사 학계의 일부 연구자들은 고대 왕조 백제를 일컫는 화두로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한다. 백제가 고대 한반도의 삼국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섬세한 예술문화를 빚어냈다는 건 익히 알려진 평가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사랑 타령일까.
물론 근거는 있다. 백제인들은 심장 모양의 하트 문양을 유난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역대 최초로 백제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귀걸이를 비롯한 삼국의 귀걸이 명품 100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국립공주박물관의 ‘백제 귀엣-고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특별전(내년 2월26일까지)에 가보면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하트 무늬와 장식에 백제 사람들이 기울인 예사롭지 않은 관심이 장식품에서 잘 드러난다.
진열장에 소담하게 등장하는 순금제 귀걸이 한짝.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는 않다는 백제 미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무령왕의 귀걸이 맨 아래쪽에 4.5~4.6㎝ 너비로 한겹, 두겹으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이 매달려 있다. 순도 99% 이상의 황금 하트 장식은 지금 세상의 통속적인 하트 장식물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고결한 권위로 빛을 낸다.
전시회가 개막한 지난 9월26일 무령왕릉의 귀걸이를 환희 속에 실견한 공주의 문인이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국민 시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이 귀걸이의 하트 끝장식을 유심히 바라보다 전시를 위해 지은 자신의 시 ‘황금의 하트 무령임금 귀걸이’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더러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 목숨이여/ 내게 평안 있으니 그대들 또한 평안하라/ 황금의 하트 하늘빛 곡옥의 음성 다만 눈이 부셔 두 눈을 감을 뿐이네”
낭송을 마친 작가는 말했다. “왕의 존재는 삼엄하고 살벌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부드러운 하트가 나왔을까, 놀랍니다. 부드럽고 편안한 무늬 그 자체가 왕한테 당신부터 평화와 사랑을 얻어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라는 장인과 백성의 축복이 아닐까요.”
온갖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암투 끝에 왕이 된 무령왕이 전쟁의 고통을 넘어 인간 사랑을, 백성을 아우르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랑의 마음을 한쪽에 담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백제인들이 유난히 하트 모양의 상징을 좋아했다는 것은 여러 토기나 장식물 등에서도 확인되는 특징이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나태주 시인의 솔깃한 분석과 다소 다르게 문화재 학계에서는 심엽형(心葉形)이란 전문용어로 흔히 부르는 하트 문양을 신앙적 상징물로 보고 있다.
고고미술사가인 이병호 공주교대 교수는 6~7세기 백제와 신라에는 심엽형 하트가 허리띠나 목걸이, 큰칼 등의 장식무늬로 유행하지만, 특히 백제인들의 하트 애호가 유난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무령왕릉의 허리띠 장식을 보면 버클 이음부에 두꺼비상이 보인다. 이 두꺼비 배꼽 배딱지에 뒤집어진 하트 장식이 뚫음무늬 장식으로 나 있어 특출한 인상을 준다.
부여 능산리 출토 투조금구와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그릇받침(기대)에도 정교한 모양의 하트형 무늬가 소담하게 뚫린 것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출토 순금 사리함 표면무늬와 쌍릉의 나무널 관 꾸밈 장식, 나주 복암리 고분 출토 큰칼 손잡이 장식 등에서도 하트는 숱하게 발견된다.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하트는 백제가 신라·고구려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이야기한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게 백제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보인다는 점.
무령왕릉 출토 허리띠 장식의 두꺼비 장식판처럼 두꺼비의 배를 뒤집어 놓으면 하트가 되는 재미있는 문양의 얼개라든가 금공예품 곳곳에 보이는 뾰족한 첨두부가 돋보이는 하트 형태는 6~7세기 사비도읍기 백제 유물들에만 나타난다.
백제인의 하트 애호벽이 7세기 일본 유물에 종종 표현된다는 점도 재미있다. 일본의 세계유산 호류사에 있는 보물 가구 ‘다마무시 주자’(불교 성물을 담는 궤)의 표면에 백제 금공예품에서 보이는 것과 거의 같은 하트 장식 문양이 채워졌고, 이 절에서 나온 큰 구리칼과 암막새 기와, 절집 사천왕상 보관 표면에도 빼닮은 무늬가 보인다. 하트는 고대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친 백제 미술의 결정적 요소인 셈이다.
공예사가인 한정호 동국대 교수는 이 하트 문양이 기본적으로는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보주의 일종이라고 해석한다. 만물과 세계를 태동시키는 영기를 낳는 상징물이란 것이다. 이 보주가 중국과 일본은 동글동글한 형상인데, 백제와 신라는 가지 뻗은 나무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 뾰족 솟은 첨두형 보주가 나왔고 하트형의 도상으로 이어졌다는 견해다.
이런 하트 문양의 근원에 대해 후대 학자들은 주관을 앞세운 추정만 할 뿐이다. 백제인들이 어떤 의미로 ‘심쿵한’ 하트 문양을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구체적 근거를 찾아 풀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부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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