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팬? 그게 뭐죠?' 日 고가 위스키 빨아들이는 中.. 국내에선 씨 말라
중국인들이 ‘구이저우 마오타이(貴州茅臺·귀주모태)’주 대신 일본 산토리사 위스키 ‘히비키(響)’를 잔에 채우기 시작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 2021
한국과 함께 전 세계에서 반일(反日)감정이 유난히 세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병당 수십만~수백만원을 오가는 일본산 고급 위스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감히 전 세계 물량을 중국이 ‘싹쓸이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그 여파로 한때 국내에서도 적잖은 인기를 끌었던 일본산 고급 위스키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국내에서는 ‘섞어 마시기 좋은’ 저렴한 일본산 위스키가 대거 들어오는 추세다.
27일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일본산 위스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중국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와중에도 일본산 위스키 170억달러(약 24조33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2위 미국과 3위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상위 10개국 가운데 사실상 중국과 다름없다 볼 수 있는 홍콩과 마카오까지 합치면 중국의 일본산 위스키 수입액은 200억달러(약 28조7000억원)를 훌쩍 넘어선다. 나머지 7개 나라를 다 합쳐야 중국, 홍콩, 마카오 3개국 수입 금액에 견줄 만 하다.
그동안 중국에서 일본산 위스키는 비(非)주류였다. 해묵은 반일감정 때문에 일본 주류가 힘을 펼 만한 환경이 아니었던 데다, 기존 위스키 시장에서 스코틀랜드(스카치)산 위스키나 미국(버번)산 위스키가 차지하던 입지가 공고했기 때문이다.
2012년 시진핑 지도부는 ‘부패와의 전쟁’, ‘사치·향락 풍조 척결’을 명목 삼아 스카치 위스키나 프랑스산 와인, 심지어 마오타이 같은 자국 고가주에도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일본산 위스키는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적어 타격을 거의 받지 않았을 정도다.
일본산 위스키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019년 무렵부터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내에 빼곡히 영업망을 구축해 놓은 외국계 주류 기업들은 중국 전역에 걸친 이동 제한에도 주요 도시까지 물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디아지오와 페르노리카 같은 대형 주류사들은 중국 3선 지방도시 대형마트 진열대를 고급 스카치 위스키로 채웠다.
‘희귀한 나만의 술’을 찾던 중국 부호들은 누구나 살 수 있는 스카치 위스키를 외면했다. 대신 ‘히비키 30년’처럼 이전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일본산 고급 위스키로 눈을 돌렸다.
일본 최대 주류 제조사 산토리(Suntory)가 선보인 ‘히비키 30년’은 현재 국제 주류시장에서 750밀리리터 1병 당 1만달러(약 1430만원)에 거래되는 고급 위스키다. 그나마도 원액이 부족해 제품을 원하는 만큼 더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다.
중국 시장에 풀린 물량이 적을 뿐 아니라, 개인이 여러 병을 사려면 면세점을 이용하거나 홍콩이나 마카오 경매를 통해 입찰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내 봉쇄령이 도리어 일본산 고급 위스키의 가치를 높인 셈이다.
중국계 위스키 전문가 셰리 우는 부즈저널에 “스카치 위스키는 중국 내 유통 채널이 널리 확보돼 있어 코로나 와중에도 구하기가 쉬웠는데, 일본산 고급 위스키는 스카치 위스키 대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를 마신다는 행위만으로 코로나 시대에 특권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며 ‘이전에 프랑스 부르고뉴산 와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일본산 고급 위스키가 중국에서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라고 적었다.
‘진짜 부자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코로나 기간 일본산 위스키는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중(對中) 일본산 위스키 수출량은 2016년 3억9000만엔에서 2021년 170억100만엔으로 42배 넘게 올랐다. 매년 2~3배씩 뛴 결과다.
중국 큰손들의 베팅이 몰리면서 ‘소더비 홍콩’이나 ‘본햄스 홍콩’ 같은 국제 주류 경매 시장에서 2020년 일본산 고급 위스키는 한병 당 평균 8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2012년 같은 경매장 낙찰 기록에 비하면 90배가 넘게 뛴 것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이례적인 수치다.
때마침 미중간 무역분쟁이 터지면서 미국(켄터키)산 버번 위스키 자리가 흔들린 것도 일본산 위스키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가 철강과 알루미늄 같은 중국산 제품에 고액 추가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의 국주(國酒)’로 불리는 버번 위스키에 보복 관세 부과 조치를 취했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소비자들은 주요 위스키 생산국 가운데 영국(스코틀랜드)산 스카치 위스키는 ‘고급’이라는 인식보다 ‘대중적’이라고 평가한다. 미국산 위스키나 대만산 위스키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는 높은 편이지만, 이 두 국가와는 외교 관계 차원 문제 때문에 낮은 관세를 바탕으로 한 저렴한 공급이 쉽지 않다.
중국 재경제일일보는 최근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인들에게 마오타이 같은 바이주(백주·白酒)는 값이 비싸도 접대나 연회자리에서 흥청망청 취할 때까지 마시는 술이었던 반면 위스키는 소위 ‘외국에서 공부한’ 교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며 한잔 씩 마시는 술로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일본산 고급 위스키들은 이 자리를 선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전 세계로 퍼졌어야 할 일본산 위스키를 중국이 거의 다 흡수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이전 주요 시장들은 일본산 위스키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일본산 고급 위스키는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국내에 일본산 고급 위스키를 판매하는 수입사는 빔산토리코리아와 닛카위스키 공식 수입법인 드림비어를 포함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 수입사가 배정받은 물량 대부분은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 같은 호레카(HoReCa) 채널을 통해 팔리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는 일본산 고급 위스키를 만나보기조차 쉽지 않다. 빔산토리코리아가 올해 국내 시장에 배정 받은 히비키 30년산 물량은 한자리 수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내 위스키 시세의 바로미터인 남대문 종합 주류 상가에서 거래되는 숙성 기한을 표시하지 않은 무연산(NAS) 위스키 가격조차 2년 전보다 50% 가까이 오른 상태다. 산토리 위스키 소속 치타(知多) 증류소 위스키 무연산 가격은 지난해 5만원대에서 올해 8월 기준 8만원대로 올랐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는 “위스키는 주류 특성상 원액이 확보돼야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국내 위스키 시장이 성장 중이지만 중국 시장의 성장세에 비하면 완만한 수준이기 때문에 희소한 고급 위스키 물량을 확보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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