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지금 미국은] 취임식장 압도한 22세 흑인 시인.. 노랑 코트만큼이나 강렬했다

2021. 1. 2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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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낭송한 어맨다 고먼
22세 흑인 여성 시인 어맨다 고먼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날이 밝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끝없는 그늘에서 빛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역사는 우리를 바라봅니다/… 미혼모 밑에서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가 대통령이 될 것을 꿈꾸는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산산조각 낼 세력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감히 미국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자존심 그 이상이기에….”

지난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곳에서 22세의 시인 어맨다 고먼은 부드러운 몸짓과 상냥한 목소리로 ‘역사와 희망’을 노래했다. 불과 2주 전 폭도들로부터 난장판이 됐던 바로 그 의회의사당 전면에 가냘픈 체구의 흑인 여성이 서서 가장 가슴 벅찬 심오한 순간 중 하나를 강렬하게 전달했다. 전례 없는 불안과 긴장이 넘친 대통령 취임식장에서의 고먼의 등장은 시민의 권리를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우다 죽어간 미국 시인 오드리 로드를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노란색 코트와 빨간색 머리띠는 고먼이 한 마디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미국 흑인 여성의 정치적 전통을 강렬하게 연상시켰다. 미국의 사회·정치에 조금의 관심만 갖게 되면 고먼의 차림과 색깔에서 1972년 흑인 여성이 최초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셜리 치좀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거짓과 모욕과 반역의 정치를 몰고 온 반란의 세력들과 같은 세대의 정치인들이 그 연단의 윗자리에 즐비하게 앉아 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엔 늘 시인이 등장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에선 마야 엔젤로우가 ‘아침의 숨결(On the Pulse of the Morning)’이란 시를 통해 식민지 역사,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에 대한 이질적인 영향에 관한 것을 낭송했다. 취임식장의 시인들은 늘 국가의 화합과 통합에 대해 노래했지만 미국 정치에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이번과 같은 시의 강렬함은 없었다. 이날 고먼이 달고 나온 후프 귀걸이는 흑인 여성의 권한과 개성을 상징하는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다. 취임식장의 고먼을 지켜본 윈프리는 ‘또 다른 젊은 여성이 일어나는 것을 자랑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마야 엔젤로우가 응원하고 또 내가 응원합니다’란 트윗을 올렸다.

고먼이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을 노래하자 취임식장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취임식에선 세계적인 가수 레이디 가가와 제니퍼 로페즈 등이 마이크를 잡는 등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그러한 팡파르 속에서도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고먼의 시 낭송이 단연 분위기를 압도했다. 미국의 전국 청소년 시인 수상자인 고먼이 203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종종 말한 것을 알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식장을 떠나면서 2036년 고먼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이 즉시 고먼과 접속을 했다. 당파적이지 않은 수많은 매체에서는 나라를 위해 고먼과 같은 방식의 단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 문학계로부터 칭찬이 쏟아졌고 어느 대학에서는 대학 시인으로 초빙하는 제안을 했다. 오는 9월 출간 예정인 고먼의 두 책은 이미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고먼보다 더 노련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들에겐 당분간 시를 쓰는 데에 압력과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논평이 많다. 고먼과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적이 있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모리대학의 제리코 브리안 교수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고먼의 시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번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역사와 희망’을 노래하는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고먼은 청소년 시인 수상자로 청각과 언어 장애를 극복한 시인이다. 그의 지난 20여년을 살펴보면 마치 어린 시절부터 이런 순간을 준비해 온 듯하다. 고먼과 쌍둥이 여동생은 미혼모 밑에서 자랐으며, 고먼은 16세에 로스앤젤레스 청소년 시인으로 지명됐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하버드 재학 때에 전국 청소년 시인으로 뽑혔다.

파키스탄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먼은 미국 문학계에서 서서히 스타덤에 오르고 있는 시인이다. 퍼스트레이디인 질 바이든 여사가 고먼의 시를 좋아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바이든 여사의 추천으로 취임식 시인으로 선정됐다. 고먼은 이달 초 트럼프 친위대 폭도들이 의회의사당을 공격한 다음 날 밤 ‘우리가 오르는 언덕’이라는 시를 완성했다.

그는 “나는 내 시에서 지난 몇 주 동안 우리가 본 것과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겪고 말한 내용을 어떤 식으로든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시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내 말을 사용해 우리나라가 여전히 함께 모이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국이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혹한 진실을 지우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라고 CNN의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에게 말하기도 했다. 고먼의 방에는 ‘The tyrant fears the poet’(폭군은 시인을 두려워한다)라는 제목을 단 시집의 포스터가 크게 붙어 있다고 한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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