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칼럼] 새해 여론조사 읽는 법

박찬수 2021. 1. 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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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유연해야 할 사안에선 유연하지 못하고, 빠르고 단호해야 할 사안에선 그렇지 못한 태도가 지지율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이명박·박근혜 사면 논란도 비슷하다. 국민 통합과 외연 확대는 민생과 정책을 통해 이뤄나가야지, 가치를 포기하거나 정치적 좌표를 중도로 이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사진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2021년은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로 새해의 문을 연 듯싶다. 대통령선거를 1년 남짓 앞둔 시점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올해 첫 여론조사 결과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졌다’ 또는 ‘레임덕 시작’이란 분석이 쏟아진다. 두번째는, 여론조사 기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후보 지지율 2, 3위 또는 1위로 분명하게 올라섰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는 민심의 향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진폭이 큰 바늘의 지향점을 정확하게 읽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대와 희망에 치우쳐 바라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상황을 너무 암울하게 여기는 건 오히려 독이 되기 쉽다. 여론조사에 취했던 권력과 정치인이 실패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우선, 좋든 싫든 윤 총장이 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올라선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윤 총장이 새해 국립현충원을 찾아 지난해와 거의 똑같은 내용의 방명록을 적은 건 의미심장하다. 1년 전의 방명록과 달라진 건 ‘국민과 함께’라는 문구가 빠진 것뿐이다. 왜 뺐을지는 자명하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난해와 같은 내용을 적은 데서, ‘국민과 함께’라는 대목까지 같이 읽어달라는 속뜻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런 검찰총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냐는 우려와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윤석열이 아니라, 1년 전 그가 언급한 ‘국민’이다. 윤석열과 직접 싸우는 것보다 오는 4월의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 지지를 받는 게 검찰개혁 추진에 훨씬 효과적이란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새해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 다양했다. 어쨌든 취임 이후 최저치라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이것은 정말 레임덕의 시작이고 ‘콘크리트 지지층’ 붕괴의 징표일까. 레임덕이 정권에 주는 가장 큰 부담은, 의회와 집권당이 대통령의 정책 어젠다를 입법화하는 데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는 점이다. 이래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의회가 전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이 문제가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관료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지는 게 문제인데, 관료사회의 기류는 4월 재·보궐선거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걸 두고 마치 정권 붕괴의 서막처럼 말하는 건 난센스에 가깝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 5년차 1분기 여론조사 결과(한국갤럽)를 한번 보자. 국정운영 지지율이 김영삼 14%, 김대중 33%, 노무현 16%, 이명박 24%였다. 탄핵으로 임기를 1년가량 못 채운 박근혜 대통령의 4년차(2016년) 1~3월 지지율은 36~43% 수준이었다. 지금 문 대통령 지지율과 비슷하다. 그때 언론은 이걸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율’이라 했다. 이 지지율을 믿고 박 대통령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친박 공천’을 무리하게 밀어붙였고, 결국 총선 패배와 함께 20%대로 지지율이 주저앉았다. 말 그대로 ‘콘크리트 지지율’은 그때 깨졌다. 문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정치적 처지가 다를 수는 있지만, 지지율 기준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건 정치공세 외엔 별 의미가 없다.

정말 중요한 건, 집권세력이 여론조사 결과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일이다. 지지율이 떨어졌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는 건 긴요하다. 부동산이나 교육처럼 많은 국민의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해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사안에서 ‘신속한 효과’를 강조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기 쉽다. 코로나 방역도 비슷하다.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코로나 방역의 목표와 가치가 다를 순 없다. 야당에 적극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처럼 정치적 가치가 명확히 갈리는 사안에선 신속하게 실행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유연해야 할 사안에선 유연하지 못하고, 빠르고 단호해야 할 사안에선 그렇지 못한 태도가 지지율엔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논란도 비슷하다. 이 사안은 정치적 지향과 가치에 따라 뚜렷하게 견해가 갈릴 수밖에 없다. 국민 통합과 외연 확대는 민생과 정책을 통해 이뤄나가야지, 가치를 포기하거나 정치적 좌표를 중도로 이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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