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故 박원순 사건 수사 종결 '공소권 없음'.. 신지예 "이게 나라냐"
경찰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풀지 못한 채 5개월 만에 수사를 종결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박 전 시장이 실종되기 전날인 7월8일 접수된 강제추행·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성추행) 혐의 고소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론을 내리고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피해자와 참고인을 조사하고 제출 자료를 검토했으나 박원순 전 시장이 사망한 채 발견돼 관련 법규에 따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의자의 진술인데 사망으로 사실관계 확인에 한계가 있었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 부시장과 전·현직 비서실장 등 7명이 강제추행을 방조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 역시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의견(혐의없음)을 달아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서울시 비서실 직원 등 참고인 26명과 피고발인 5명을 불러 조사했다. 일부 참고인은 진술이 피해자와 배치돼 전화 통화를 통한 대질신문이 1차례 진행됐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자와 참고인들 사이에 일치된 진술이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앞서 경찰은 박원순 전 시장의 사망 경위를 밝히기 위해 업무용 휴대전화 포렌식을 진행했지만 범죄 관련성을 찾지 못하고 내사 종결했다. 사망 동기를 추정할 만한 단서가 휴대전화에 있었는지 묻는 말에는 확인을 거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동기는 유족과 고인의 명예를 고려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수사는 온라인에 악성 댓글 등을 단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로 4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현역 군인 2명은 사건을 군부대로 이송했고, 1명은 기소중지 의견으로 수사를 마쳤다.
제3의 인물 사진을 피해자로 지목하며 온라인에 게시한 6명은 기소 의견, 6명은 기소중지 의견(해외체류·인적사항 미상)으로 송치했다.‘피해자의 고소장’이라는 이름의 문건 유포에 가담한 5명에게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현재 피해자 실명을 온라인에 공개한 혐의로 1명을 입건·조사 중이며, 최근 고소가 추가 접수됨에 따라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박 전 시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고발 건 관련해서는 고소권자인 유족의 고소 의사가 없어 각하 의견으로 수사를 마쳤다.
경찰은 지금 수사를 종결하는 이유에 관해 “마지막으로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기대했지만, (영장 기각으로) 더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종합적으로 수사한 것을 정리했으며, 변사 사건 포렌식이 23일 마무리돼 송치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박 전 시장은 고소장이 접수된 이틀 후인 7월10일 0시1분쯤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경찰청은 같은 달 16일 ‘박원순 사건 전담 수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망 경위와 관련 의혹을 수사해왔다.
◆ 피해자 측 “이미 예견된 일… 수사 결과 규명된 사실을 공개해야”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은 29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의 공소권 없음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면서 “수사 결과 규명된 사실을 밝혔어야 한다”고 했다.
공동행동은 “피해자의 피해 관련 진술, 참고인들이 본 내용, 들은 내용에 관해 확인해 준 진술,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자료 및 피해자 핸드폰에 대한 포렌식 결과가 있고, 이것은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면서 “경찰은 피해자가 인사고충, 성고충을 20여명의 전·현직 동료, 상사에게 호소한 적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발표하지 않았다. 전·현직 직원들에 대한 참고인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를 진행한 것을 ‘결과’로 결정하고 발표했다”라며 경찰이 확인해온 내용을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공동행동은 경찰이 서울시 전 비서실장 등에 대한 강제추행 방조 혐의를 불기소 처분한 것도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방조죄’라는 죄목은 사실 입증, 기소, 처벌되기까지 많은 요건이 있어야 하는 죄목이며, 제3자가 고발한 사안이라서 피해자 측은 이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았었다”면서 “경찰은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피해자는 20명 가까이 있는 동료와 상사에게 인사고충, 성고충을 호소한 바가 있음을 진술했으며 자료와 의견서 등을 제출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경찰수사는 애초부터 적극적으로 이뤄진 바가 없다. 경찰은 피해자가 인사고충, 성고충을 호소했다고 진술한 20여명의 서울시 전 현직 직원에 대해서 진술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핸드폰을 포렌식하거나 압수수색을 하거나 이 진술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수사도 진행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사 기간 전임 비서실장 2명은 언론에 공개적으로 ‘아무도 들은 사람 없다’고 확정하는 말을 몇 차례 공표하기까지 했다. 이는 직원들의 진술에 대한 압력”이라고 했다.
아울러 “전 시장의 업무폰 포렌식을 5개월 동안 멈추게 한 법원, 모든 수사에서의 영장신청을 기각한 법원, ‘아무도 몰랐고, 사실이 아니며, 피해자는 이런 사람’이라고 지속 선동하는 전 비서실장, 전 시장의 사망 이후 2차 피해를 방치하고 사회적 제도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와 여당 앞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연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신지예 “이런 나라에서 어떤 여성이 안전하게 일하며 살 수 있을까?”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박 전 시장 관련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자 “이게 나라냐. 분노스러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신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이 적고 “5개월 동안 이 사건 TF팀에 붙은 경찰이 46명이었다고 한다. 그 많은 인원이 뭘 조사한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의문을 드러냈다.
이어 “여성폭력 방지법에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책무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박원순 시장 성폭력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커녕 고인의 명예를 지킨다고 하면서 은폐에만 급급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나라에서 어떤 여성이 안전하게 일하며 살 수 있을까? 여성 비위를 포함한 조직 내 비리를 누가 감히 제보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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