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수출규제 1년, 그 후]국산화 속도전 각성 계기됐지만..의존도 여전히 높다

김혜원 2020. 6. 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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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박소연 기자, 문채석 기자] 삼성전자를 고객사로 둔 반도체 장비 제조 업체 A사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해 기습적인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난해 7월을 떠올리면 식은땀이 먼저 흐른다.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삼성전자의 긴급 요청에 따라 소재 개발 완료 시점을 앞당겨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임직원이 합심해 매진한 결과 고객사의 제품 승인을 무난히 받았고 정부가 선정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강소기업 100개사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A사는 국산 기술로 개발한 소재를 투명전극 필름 수요가 있는 국내 고객사에 판매하고 내년부터는 중국에도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내 양산성 검증과 인프라 구축을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상용화에 돌입한다. A사 관계자는 "일본이 소부장 경쟁력 절대 우위에 있는 게 사실이고 정밀도 측면에서 앞설 수 있지만 우리는 위기에 빠르게 대응하고 추진하는 강점이 있어 경제 보복이 심해질수록 더 빨리 벗어나는 전략으로 기술 독립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4일로 일본이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3대 핵심 소재 수출규제를 실시한 지 1년을 맞는다. '일본 전문가'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박사)은 29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수출규제 1년을 '전화위복(轉禍爲福·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과 '경적필패(輕敵必敗·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한다)' 두 개의 사자성어로 정리했다.

결과적으로 1년 전 일본이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 '카드'를 꺼낼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이 당장 멈출 것이라던 우려는 기우(杞憂)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국산화가 용이한 불화수소는 국내 생산을 늘리는 한편 중국과 대만, 미국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한 결과 일본 수입 비중을 1년 만에 43.9%에서 12.3%로 떨어뜨렸다. 이 자문위원은 "우려했던 바와 달리 국내 기업의 생산 차질은 별로 발생하지 않았으나 일본 기업은 불매운동 '노(NO) 재팬' 영향으로 닛산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등 피해를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불화수소의 경우에는 전량 국산으로 대체 가능한 수준이 됐고 소부장 산업도 오히려 튼튼해지는 계기가 됐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초고순도 불화수소 양산을 시작한 SK머티리얼즈가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착수하는 등 대ㆍ중소기업이 합심해 소부장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큰 소부장 산업에서 국산화와 다변화로 경쟁력을 높이는 성과를 냈지만 정부와 민간의 막대한 비용 지출이 불가피했고 여전히 첨단소재 등은 일본산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불화수소의 대(對)일본 수입액은 85.8% 급감한 반면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입액은 각각 33.8%, 7.4%씩 오히려 늘었다.

게다가 오는 8월 일본제철 국내 자산 압류·매각 건을 놓고 한일 관계가 최대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여 일본의 2차 경제 보복 뇌관이 언제 터질지 촉각이 곤두서 있다. 한 반도체 회사 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와중에 돈을 버는 유일한 품목인 반도체 산업에 먹구름이 더 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면서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우회 수입과 일부 소재 국산화 등으로 버텼지만 3개 품목을 넘어 더 큰 경제 보복의 후폭풍이 닥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1년의 경험으로 섣불리 일본을 얕보거나 자극해선 안 된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 자문위원은 "우리 정부도 소부장 산업 강화를 위해 7조원 이상의 큰돈을 단기간 내 투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고 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만으로 산업 전체가 휘청인 점을 감안할 때 방심하거나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 국산화가 가능하더라도 경제성을 따져봐야 하기에 일본과는 지속적으로 협력하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게 현명하다는 견해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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