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여정 "혹독한 대가"..정말 대북전단이 문제일까

안정식 기자 2020. 6. 4. 13: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또 개인 명의의 담화를 냈습니다. 청와대를 저능하다고 했던 지난 3월 독설 담화부터 시작해 이번이 3번째입니다. 이번에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우리 정부를 심하게 몰아댔습니다.

지난달 31일 '김정은 규탄' 대북 전단 살포하는 탈북민단체 (사진=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연합뉴스)


지난 5월 31일 탈북자들이 대북전단 수십만 장을 북한 지역에 날려 보냈다며 '몹쓸 짓'을 방치하는 남한 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대북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요 하는 미명하에 방치한다면 남조선(남한)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악의 국면과 관련해서는 가능성들까지 예시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응분의 조치를 하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업지구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의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조치에 대해서도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여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됐으니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게 하는 법을 만들든지,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전단 살포를 어떻게든 막으라는 것입니다.

● 전단 살포가 진짜 문제일까?

북한은 왜 지금 전단 살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물론 대북전단에는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는 문구들이 들어있고, 요즘은 1달러 지폐들까지 동봉해서 보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돈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반북 전단을 읽어보는 등 체제에 위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신경 쓰이는 일일 것입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5819854 ]

2018년 5월 5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 전단 풍선 차량 통제하던 경찰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탈북자단체가 최근 들어 전단 살포를 비공개로 전환한 이후 정부와의 충돌도 줄어들었고 북한의 별다른 반응도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탈북자단체가 사전에 전단 살포계획을 기자들에게 알리고 이로 인해 논란이 되면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하면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탈북자단체가 최근에는 새벽에 비공개로 전단을 살포한 뒤 사후에 자신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단 살포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대북전단 살포를 주로 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지난해에만 10여 차례 전단을 북쪽에 보냈고, 올해에도 5월 31일까지 3번이나 북한에 전단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언론에 공개가 많이 안 됐다 뿐이지 계속해서 전단을 보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 진행돼오던 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이 김여정 명의로 강하게 반발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실마리는 역시 김여정 담화에 들어 있습니다. 김여정은 "남조선(남한) 당국자들이 북남 합의를 진정으로 귀중히 여기고 철저히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우리에게 객쩍은 호응 나발을 불어대기 전에 제 집안 오물들부터 똑바로 줴버리고 청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여정 北 노동당 제1부부장


● 북, "책임은 남한에 있다"

총선이 여당의 승리로 끝난 뒤 정부는 다시 한번 남북 관계 개선의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답보 상태입니다. 통일부는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겠다는 입장이고, 통일부 장·차관은 판문점, 한강하구, 대성동 마을들을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방역 협력이든 뭐든 북한이 호응만 하면 뭐라도 할 수 있는데, 북한이 반응하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지금 주장하는 것은 남북 관계가 개선 안 되는 이유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있으니 책임을 북한에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근 대외선전매체들을 통해 나온 북한의 입장을 보면, 북한은 남북 관계 개선이 안 되는 이유가 남한의 대미 추종과 동족 대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사건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한미 군사훈련, F-35A 전투기 도입 등 무력 증강을 계속하는 것이 남북 관계 교착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김여정이 문제 삼은 대북전단 살포는 이상의 이유에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일 뿐입니다.

물론, 북한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주장대로 하면 우리는 한미 동맹 깨고 한미 훈련, 전투기 도입 다 하지 말아야 하니 안보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도 사실 남한이 북한의 요구사항 못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왜일까요? 결국 지금 시점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 대선 전까지 북미 대화도 안 될 것이고 유엔 제재하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 남한과 관계를 개선해서 북한이 이득 볼 것은 별로 없습니다.

북한은 김여정 담화를 노동신문에 게재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 대남 비난 담화를 실었다는 것은 남북 관계가 냉랭해질 수 있음을 주민들에게 교육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5월 8일 "적은 역시 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인민무력성 대변인 담화도 노동신문에 실렸는데, 북한이 주민들을 상대로 남북 관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도록 분위기 조성에 들어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 민간단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면서 다음 수를 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김여정 담화가 나오자마자 "접경 지역 국민들의 생명,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며 "접경 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법률 정비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혀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할 법률을 마련할 뜻임을 시사했습니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강하게 반발하는 만큼 전단 살포를 막아 일단 급한 불을 끄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남한을 비난하는 근본 원인이 전단 살포에만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이런 조치로 상황의 변화를 가져올지는 의문입니다. 상대방이 몰아친다고 우리가 급하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계속해서 다른 요구를 해올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지금 상황을 어떤 기조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좀 더 크고 넓게 상황을 지켜보고 긴 호흡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