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어떻게 훌륭한 언론인이 되는가

이준웅 | 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 2019. 7. 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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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보게 이 박사, 도대체 공정한 뉴스라는 게 뭐요? 20년 전 학위를 마치고 KBS에 첫 직장을 잡아 일할 때 받은 질문이다. 중견 언론인의 진지한 요구였기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고 싶었지만, 갓 박사논문을 마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직도 그분을 기억한다. 며칠이 지나도 응답 없는 나를 두고, 박사도 별것 없다는 듯한 표정을 던졌다. 덕분에 그때부터 공정함이 무엇이고, 뉴스 공정성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탐구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논문도 몇 개 발표했고,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일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아직도 의아하다. 답해야 할 자가 묻는다니. 기자가 뉴스 공정성을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하긴 모르면서 묻지 않는다면 그게 더 큰 문제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실은 이 바닥이 대체로 이렇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답은커녕 질문조차 분명하지 않은 일들이 널렸다.

예비 언론인 교육이 그중 하나다. 도대체 뭘 준비해야 훌륭한 언론인이 될 수 있나? 인터넷 매체의 확장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젊은 기자들이 더 열정적으로 쓰고 있다. 주류 언론사에서도 그렇다. 언론사에 이른바 거품이 쫙 빠져서, 좋은 대우를 노려서 언론사로 취직하겠다는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진지하게 쓰고 있다는 뜻이다. 단지 뭘 어떻게 해야 잘 쓰는 일인지 모른 채.

선생님, 훌륭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민망하게도 모르기로는 나도 마찬가지다. 학생의 질문에 시원한 답을 해줄 만한 다른 선생이 있다면, 그쪽으로 책임을 돌릴 텐데, 이 또한 마땅치 않아 속상하다. 속상함과 민망함을 덜기 위해 내가 쓰는 수법이 있다. 일단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같이 읽어 봅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출세작이니 그걸로 시작하면 좋겠네요.

그리고 덧붙인다. 내용이 압도적이라서 감동을 피할 수 없겠지만, 감동에 취해 이야기를 따라가는 식으로 읽지 맙시다. 저자가 왜 인터뷰를 기획했고, 어떻게 면담을 진행했으며, 그 많은 인터뷰 자료를 어떻게 정리해서 엮어냈을지 생각하며 읽어 봅시다. 자기 경험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저자가 이끌어 낸 방법과 그들의 ‘이야기’를 복원한 수법에 주목해서 읽어 봅시다.

주제를 내용적으로 파헤쳐 보이고야 말겠다는 다짐, 그 다짐을 실현하고자 하는 불굴의 헌신, 자료 수집을 위한 철저한 준비, 인터뷰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과 확인, 강력한 글쓰기와 유려한 문체. 나는 훌륭한 기자가 되려는 학생이 훈련해야 할 모든 덕성을 알렉시예비치의 인터뷰 모음집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탐사보도 전문작가는 그 덕목을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내용으로 보여줄 뿐이다.

요즘이라면 필립 샌즈의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같이 읽자고 하겠다. 다소 엉뚱한 번역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처럼 읽힌다. 그렇게 재미지다. 그러나 내용은 모두 역사적 인물들의 개인사에 대한 것이며, 그것도 전문적 검토를 거친 사실의 복원과 사려 깊은 해석을 동반한다. 이 책을 제대로 된 탐사보도에 목말라하는 모든 언론학도에게 권하고 싶다. 역사적 사실이란 이렇게 교묘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진실은 이렇게 시적으로 자신을 숨긴다.

내 제안에 당혹해하던 학생이 속는 셈치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은 후 다시 나를 찾아온 경우가 몇 번이던가. 나는 우리나라 언론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노력하는 연구자로 자처했을 뿐, 미래의 언론인을 위한 좋은 선생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나. 나는 우리나라 언론이 지금까지 이룩한 최고 성과를 기록한 목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언론의 성과를 집대성한 일종의 앤솔러지, 즉 언론기사 선집이 없다는 사실이 심히 의심스럽다. 최고의 실천적 성과를 읽고 배우지 않는 우리의 언론인 교육이 수상하다. 아니, 뭐라도 읽을 게 있어야 배우지 않겠는가. 나라를 대표하는 언론기사 선집을 만든다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기사들을 선정해야 할까. 그리고 누구의 어떤 기사가 목록의 대미를 장식해야 할까. 이런 과제를 고민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야속하다.

이준웅 | 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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