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②] 박해진 "도망치기 바빴던 현장, 악에 받쳐 버텨냈죠"

조연경·박정선 2018. 3.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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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조연경·박정선]
와인으로 시작했지만 맥주로 끝이 났다. 맥주의 종류부터 맥주 효모의 효능까지 인터뷰와는 상관없는 주제로도 10분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수다를 시작한 세 친구 덕분에 급하게 녹음기를 켜야 했다. 작품 안에서는 잘 어울릴 수 없었던 친구들이지만, 인터뷰 자리에 앉은 세 남자는 떠들썩한 '현실 친구'였다.

영화 '치즈인더트랩(김제영 감독)'으로 뭉친 박해진·오종혁·문지윤이다. 유정선배 박해진, 짜증유발 오영곤 오종혁, 복학생 김상철 문지윤까지 이들은 자신들에게 꼭 어울리는 캐릭터를 맡아 찰떡같이 연기했다. '치즈인더석박사 아니냐'는 일부 대중들의 반응도 시원스레 넘기며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고 대꾸하는 너스레다.

세 친구의 특별한 인연은 단순히 영화 한 편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16년 방송된 동명의 드라마에서 같은 역할로 출연한 바 있는 박해진과 문지윤은 같은 원작의 작품, 같은 역할로 2번째 호흡을 맞췄다. 박해진과 오종혁의 경우 박해진의 데뷔 전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 게다가 오종혁은 박해진의 현 매니저가 발굴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렇듯 우연과 필연을 계기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박해진은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마치 기자처럼 대화의 흐름에 맞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이 겪은 비슷한 사례를 이야기한다거나 적절한 상황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의 센스까지 발휘했다. 박해진의 평소 리더십을 잘 알 수 있는 대목. 다정하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영화 속 다정한 유정 선배였다.

2000년대 초반 클릭비의 오종혁을 기억하는 이들은 실제 오종혁과 마주한 후 놀랄 수밖에 없다. 허당기 넘치고 평균 이상으로 소탈한데다 유쾌했다. 너무 솔직한 이야기들에 "정말 이거 다 인터뷰에 나가도 돼요?"라고 묻자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떠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사실 가장 큰 반전의 주인공은 문지윤이었다. 과자봉지 하나 들고 돌아다닐 것만 같더니 실제 문지윤은 진중하고 중후한 캐릭터. 배운 적도 없지만 벌써 몇 차례 전시회를 열었던 화가이고, 연기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배우기도 했다.

>>①에서 이어집니다
- 종혁 씨는 다혈질 스토커였죠.= "전 영화에서처럼 여자를 졸졸 쫓아 다니지는 못해요. 이 여자에게 관심이 있어서 말을 걸었는데 별로 반응이 없다고 하면 전혀 티를 안 내고 거기서 딱 끝내요. 상대방도 저를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져야 뭔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일방적이면 아예 시도도 안 해요. 근데 다혈질인 성격은 있어요. 제가 B형이었는데 O형이 됐거든요."
- 혈액형을 잘못 알았던 건가요.= "아뇨. 30년간 B형으로 살았는데 헌혈을 하면서 O형이 됐다는걸 알았어요. 군번줄에도 B형으로 돼 있거든요. 'O형 이네요' 'B형 인데요?' 'O형 이세요' '저는 뽑기만 하는 거라 상관없는데 잘 확인해 보셔야 할거예요'라는 대화를 나눴죠.(웃음) 사회에 나와서 검사를 해 봤더니 진짜 O형이더라고요. 어머니가 B형, 아버지가 O형인데 B형 염색체? 자체가 나서기를 좋아한대요. 막 날뛰어서 뭘 뽑으면 지들이 먼저 튀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땐 B형으로 체크됐고, 나이가 들면서 O형 형질이 더 강해졌나봐요."

- 진짜 성격도 바뀐건가요.= "네. 많이요. 옛날에는 단 한 순간도 참지 못했어요. 누군가 뭘 하면 그 순간을 그냥 넘기지 못했어요. 오영곤 캐릭터를 연기 하면서 '아, 옛날에 나도 이랬었지'라고 오히려 상기가 되더라고요. 휴대폰도 여러 번 집어 던졌고, 기분이 안 좋으면 일단 주변에 있는 것들이 부숴졌거든요. 오래 된 기억이죠.(웃음) 왜 어른들이 '혈기 왕성할 때나 그러지'라는 말씀을 하잖아요? 몸소 느끼고 있어요."

- 답답함은 없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달라진 성격에 저도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전 영화에서처럼 여자들과 말을 잘 섞는 편이 아니에요. 여자 울렁증이라고 해야하나? 촬영할 때도 여배우 분들과는 몇 마디 안 나눠봤어요. 병적으로 잘 못해요. 지금 공연을 하고 있는데 앙상블부터 분장 스태프들까지 여성 분들이 엄청 많거든요. 대부분 10살 이상 어린데 단 한 명에게도 말을 못 놨어요. 남자야 바로 형, 동생 하죠. 그것도 성격인 것 같아요."

= "와. 난 정반대야. 정~반대. 완전 반대. 쭉 들어보니까 모든 면에서 저와 반대인 사람이네요.(웃음)"

- 어떻게 다른가요.= "일단 전 다혈질 성격은 전혀, 하나도 없고요. 종혁이는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느껴져야 만나진다고 했잖아요? 전 아니에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끊임없이 맴돌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 때까지." = "유정이네" = "그런가?(웃음) 그리고 전 남자들과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어요. 기본적으로 술, 담배 안하고 뛰는 운동 안 하고, 게임도 안 하니까요. 뷰티나 피부과, 관리실 등 그런 쪽을 좋아하고 잘 알기도 하고요."

- 다들 배우로 10년 넘게 활동 했죠.= "공연계로 넘어와 벌써 10년이 됐어요. 여기가 더 제 집 같아요. 방송국에 가면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가기 싫기도 하고요.(웃음) 공연계로 넘어가기 직전 기억이 너무 안 좋아요.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요. 지금이야 그런 분들 안 계시죠. 아무 사심없이 어렸을 때 뵀던 스태프라 '형!' 하고 인사했는데, 꼭 무슨 도움을 받기 위해 아는 척 한 사람처럼 대하더라고요. 가기 싫고, 보기 싫었어요. 공연계 내에도 비리와 줄타기는 있죠. 하지만 적어도 땀 냄새를 풍기는 곳이에요. 사이가 좋든 안 좋든 서로 흘리는 땀을 인정해 줘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주는 곳이더라고요. 예전에는 과정은 알 바 없고 '회사가 어디냐'만 물었으니까요."

박= "전 멘탈이 강한 편이에요 상처는 받지만 크게 흔들리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 내가 부족한겠지. 잘 하자' 해요. 작품을 하든, 뭘 하든 꾸준히,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면 언젠가는 나를 그렇게 깔보고 무시했던 사람이 역으로 날 필요로 하는 때가 올 거란 말이죠. 실제로 그랬고요.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했죠. 마음 속으로는 직접 만나 얼굴 보면서 거절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않았어요."

- 직업으로는 어떤가요.= "개인적으로는 가수보다 배우가 훨씬 더 매력적이에요. 공연은 같은 역할도 매일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느낌이 들어요. 스스로 현장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아요. 가수는 콘서트를 제외하면 짧은 시간에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쏟아야 하잖아요. 저는 교감하는 쪽이 더 좋더라고요."

= "만족도가 높아진 지 얼마 안 됐어요. '계속 해야 하나?' 늘 고민했죠. 연기를 잘 못 했으니까요. 캐릭터 때문에 사랑받기는 했지만 '내 모습인가? 난 연기를 잘 하고 싶은데 왜 안 되지?' 싶었거든요. 저는 제 평생 열심히 해서 못 해 본 것이 없는데, 연기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연기를 잘하건 못하건 OK 사인만 떨어지길 기다렸고 매 순간 도망치기 바빴어요. 그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 거예요. 그러다 악이 받치더라고요. 다행히 조금씩 발전하는게 느껴져서 아직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없던 욕심도 생겼고요."

= "전 중3 때 진로를 연기 쪽으로 잡았거든요. 그냥 들이댔고 운도 좋았죠. 꿈을 일찍 정해서 철도 일찍 들었어요. 애늙은이.(웃음) 활동하면서 직업적 한계를 느낀 적은 많아요. 조연이고, 스케줄이 빡빡한 배우가 아닌데도 화나는 일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만큼 참아야 하는 일도 많죠. 어디에서든 화를 내면 곧 구설수가 되잖아요. '이 직업 싫다' 싶었던 적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선택하기 잘한 것 같아요."

- 연애 스타일은 어때요. 박= "전 일단 아주 갑~갑한 스타일이에요.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아 문제죠. 조금씩 바뀌려고는 하는데 그것도 연애를 해야 바뀌잖아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또 하게 되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어요."

>>③에서 계속됩니다

조연경·박정선 기자 사진= 박세완 기자 영상= 이일용 기자 장소= 경리단길 테이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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