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눈]첨단 거울 속의 나

김창규 SF작가 2017. 8. 1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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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형규는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상담 직원인 원철에게 말했다.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왔습니다.”

원철은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수많은 고객을 상대해 본 것처럼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반투명 전자패드를 펼치고 자료를 천천히 넘겨 보더니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결과를 바로 원하시는 거죠? 하지만 정해진 절차가 있어서 고객님 시간을 조금 더 빼앗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다가 클레임이 걸리는 경우도 많고, 잘못하면 벌금까지 물 수 있으니까요. 제 동료는 며칠 전에 사전 설명을 조금 생략했다가 화가 난 고객께 맞았지 뭡니까. 아무래도 얼굴이 업무 자산의 절반이다보니 전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형규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커피로 손을 뻗었다. 폭행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했다. 형규는 맛도 모른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원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허락을 받은 걸로 알고 계속하겠습니다. 고객님의 뇌분석은 총 네 개 영역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네 개 영역이란 감각수용, 운동제어, 사고판단, 기억자아입니다. 뇌를 소프트웨어로 개선하는 데에 있어 가장 먼저 분석하는 건 각 영역의 개선 적합도입니다. 저희 회사는 뇌의 각 영역을 소프트웨어 모듈로 대체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광고하죠. 하지만 모든 뇌를 다 개선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억지로 수행했다가는…. 간단히 말해서 뇌와 육체가 영원히 분리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거든요.”

형규는 원철이 끔찍한 결과를 에둘러 표현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뇌와 육체가 분리된다는 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는 뜻 아닌가.

“꼼꼼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건 잘 알아들었습니다. 부작용이 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고요. 그럼 내 분석 점수는 어떻게 됩니까?”

“고객님께서는 수치계산 능력을 증강시키는 모듈을 뇌에 설치하고 싶으셨죠? 사고판단 영역도 강화시켜서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고요. 자, 이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분석을 해 본 결과 고객님의 총 적합도는 100점 만점에 91점입니다. 감각수용 능력은 상위 5%에 들 정도로 아주 뛰어나고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최종 허가는 적합도만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형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까? 이유가 뭐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데, 이제 좀 사람처럼 살아보겠다는데 그럴 수 없다는 얘깁니까?”

원철은 상담하다가 얼굴을 맞았던 동료가 떠올랐는지 몸을 조금 뒤로 젖히고 말을 이었다.

“허가는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조건부 허가가 될 겁니다. 조건에 동의하고 시술 비용을 지불하시면 주문하신 두 가지 소프트웨어 모듈이 뇌의 각 부분에 삽입될 겁니다.”

“그럼 조건이 뭔지 어서 말해봐요!”

“소프트웨어로 뇌를 개선하는 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 자체를 바꾸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기술로 사람의 본성을 바꾼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사회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객님, 아시다시피 우리는 사회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사회 속 평가란 개인의 역사와 직결되죠. 뇌 기능은 강화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일부 기억을 삭제해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법에 따라서, 소프트웨어로 개선하기 전의 기억은 자료가 되어서 영구적으로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남을 겁니다. 최형규님이라는 인물의 법적 권리 제한은 영원히 그 기록에 종속될 겁니다.”

형규는 원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순간 깊이 좌절했다. 원철은 형규의 심정을 모르는 것처럼 결론을 한 번 더 요약해주었다.

“고객님은 분석 결과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고도 소시오패스로 판명됐습니다. 저희 서비스를 받으시면 이 사실이 과거 전과기록과 더불어 영원히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남을 겁니다. 그래도 받으시겠습니까? 주문을 철회하시면 오늘 상담한 내용과 분석 결과는 완전히 폐기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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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하나의 물리적 객체로 보는 연구활동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질병과 고통과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에는 인간의 두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두뇌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상에서 일어난 진화의 물리적 결과물인 만큼 언젠가는 그 활동과 기작이 모조리 밝혀질 것이다. 최근 정보기술(IT)과 인간의 두뇌를 직접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한 것도 그런 흐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급진적인 미래학자들은 이런 연구 끝에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 사이버스페이스와 기계 몸체로 옮겨타리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은 없다. 하물며 그 대상이 우리 인간의 의식 그 자체임에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지극히 나약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강인한 존재라는 건 역사와 현재를 통해 꾸준히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하는 데에 서투르다. 이제 과학과 기술이 새롭게 드러내는 우리의 참모습을 얼마나 인정하고 정책적으로, 사회적으로 적용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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