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 머신·헤비급 최고령 챔피언…‘복싱 전설’ 조지 포먼 타계

이혜인 기자 2025. 3. 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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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5일 토요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에서 열린 헤비급 챔피언십 경기 2라운드에서 조지 포먼(왼쪽)이 마이클 무어러의 얼굴을 왼손으로 가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KO 머신’으로 불렸던 미국의 복서 조지 포먼이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매체 TMZ 등은 21일(현지시간) 포먼 유족이 발표한 성명서를 인용해 그가 이날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유족은 “포먼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사망했다”고 밝혔다.

포먼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197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 무함마드 알리에게 권좌를 물려줄 때까지 40연승의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그는 은퇴 10년 후 링에 복귀해 1994년 45살의 나이로 헤비급 최고령 챔피언으로 등극한 전설적인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포먼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폭행과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며 지냈다. 우연히 텔레비전 광고에 나온 직업학교에 지원해 다니다가 그곳에서 복싱을 접하고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포먼은 탁월한 신체 조건으로 금세 헤비급 강자로 올라섰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복싱 헤비급 결승에서 요나스 체풀리스(소련)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69년에는 프로로 전향해 그해 6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치러진 프로 데뷔전에서 상대를 3라운드 만에 KO시키며 우승했다. 1973년에는 무패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해 TKO 승리를 따내고 정상에 올랐다.

두 차례 타이틀 방어전에 성공한 포먼은 1975년 알리와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지금도 복싱계가 ‘정글의 대소동’이라 회자하는 대결이다. 이 경기에서 포먼은 8라운드에서 KO로 쓰러졌다. 이후에도 다른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가다 1977년 지미 영에게 판정패하고는 은퇴 선언을 했다.

패배 후 라커룸에서 죽음에 가까운 임사 체험을 한 것을 계기로 포먼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거듭났다. 목회자의 길을 걷던 포먼은 청소년 센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987년 38세의 나이로 복귀했다. 1994년 45세의 나이로 마이클 무어러를 꺾고 최고령 헤비급 복싱 챔피언으로 등극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다.

포먼의 통산 전적은 81전 76승(68KO) 5패다.

포먼은 1997년 은퇴 후에 그의 이름을 딴 ‘조지 포먼 그릴’ 브랜드로 인해 사업가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복싱 해설위원, 목회자로도 활동하며 노년을 마무리했다.

유족은 매체를 통해 밝힌 글에서 “포먼은 독실한 설교자이자 헌신적인 남편, 자애로운 아버지, 그리고 자랑스러운 증조부였으며 흔들림 없는 신앙과 겸손을 가지고 목적의식 있는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또한 “인도주의자이자 올림픽 선수, 그리고 두 차례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는 깊은 존경을 받았으며, 선을 행하는 힘과 절제와 신념을 갖춘 인물이었고, 자신의 유산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그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넘치는 사랑과 기도에 감사드리며, 축복을 받은 한 남자의 특별한 삶을 기리기 위해 사생활을 존중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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