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때로는, 강제적 디지털 디톡스

2017. 8. 11.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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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Mind Miner
이 땅에서 태어난 남성에게 부여된 의무를 행하거나, 입시라는 인생의 주요 행사에 남다른 각오를 챙기기 위해 고대 도시의 이름으로 불리는 학원에 발을 딛는 사람이 아니라면 강제적 정보의 차단은 요즘 우리 삶에서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늘 자랑하는, 전국 어디서나 LTE가 펼쳐진 세상에서 디지털의 단절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저는 공해상에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시기상으로도 조여오는 성하(盛夏)를 피할 절호의 기회는 선상(船上)의 강연과 더불어 일주일 정보의 단절을 제게 요구했습니다. 인터넷은커녕 전화도 불가능한 곳에서는 유명 작가의 1000쪽도 넘는 신간 소설 역시 이틀치 소일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따금 지카 바이러스를 조심하라는 친절한 문자가 휴대전화에 남겨져 있으므로 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몇 시간 전에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시지를 보내 오던 그 많은 관계와 거리를 두어도 내 삶의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음을 체험하고 나니 로밍이 가능한 세상에서 삐삐를 거쳐 손수 편지를 보내던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색 도화지와 털실·솜을 오려 만든 카드를 몇 십 장씩 쌓아놓고 혹여 빠진 친구들이 있는지 손꼽아 세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나시나요. 삐삐 속 수수께끼 같은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하며 남겨진 음성 메시지를 듣기 위해 공중전화 앞에 늘어선 줄에서 그 내용을 상상하던 시절의 추억은 어떠신지요.

기다림의 미학은 아직 미정인 상태의 수많은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이루어집니다. 심심하다 외치며 더 많은 친구들과 관계맺기를 해 나가지만 마치 타잔이 덩굴을 옮겨타는 것 같은 단속적 연결의 모둠은 익어 가며 되뇌어지는 성숙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멈췄던 저의 휴대전화는 밀린 소식들을 귀국 후 연이어 전해 주었지만 단절의 시간 속 막연한 불안감의 어떤 우려도 현실화되진 않았습니다. 걸려 오는 전화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나의 탐색과 연결의 조바심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싶다면 1998년도 한 이동통신 회사의 광고처럼 때로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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