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재추진되는 은평새길 “통일로 정체 해소” VS “평창·부암동은 주차장 될 것”[올앳부동산]

유희곤 기자 2024. 3.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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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녹번역 인근 통일로를 지나는 차량이 지난 14일 오전 정체를 빚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시내 대표 정체도로인 통일로 교통 분산을 위해 2000년대 말부터 추진됐다가 장기 표류한 세검정구파발터널(옛 은평새길)이 최근 재추진되면서 서울시와 종로구간 갈등도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면에는 인근 지역 개발 호재로 인한 교통난을, 왜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겪고 있는 옆동네가 대신 떠안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깔려 있다.

서울시가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TO·건설-이전-운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검정구파발터널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자하문로)과 은평구 불광동(통일로)에 짓는 길이 5.73㎞·왕복 2~4차로 도로이다. 구간 대부분이 지하에 건설될 예정이다.

세검정구파발터널 위치도. 서울시 제공

사업 시작은 15~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는 2008년 7월 한국개발연구원(KDI) 검증과 2009년 5월 시의회 동의 절차를 마친 은평새길 도로 사업을 추진해 2013년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은평뉴타운, 삼송·지축지구 등 약 1100만㎢에 이르는 대규모 택지개발과 통일로 중앙버스전용차로 실시로 발생할 도로망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이었다.

통일로는 서울 중구 서울역 사거리에서 경기 파주 통일대교에 이르는 47.6㎞ 도로로, 경기 고양 일산 및 서울 서북부에서 시내로 진출하는 거의 유일한 경로다.

사업은 2년 만인 2011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부결 후 사퇴하면서 사실상 정지됐다. 이후 후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은평새길 추진에 소극적이면서 별다른 진행이 없었다.

반전은 박 전 시장 사망 후 오 시장이 2021년 4월 컴백한 이후다. 오 시장은 즉시 은평새길을 공약사업으로 선정했고, 바로 다음 달 최초 우선협상대상자였던 GS건설 컨소시엄에 노선 재수립 검토를 요청했다.

GS건설은 이듬해 2월 수정제안서를 냈고, 지난해 4월 KDI 공공투자관리센터의 민자적격성 재조사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이 1.0 이상으로 나왔다. 경제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 사이 사업비는 2404억원(2007년 7월)에서 4343억원(2021년 9월)으로 20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GS건설이 완공 후 40년 동안 운영하면서 통행료 등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GS건설과 실무협상을 하고 있다. 내년에 실시설계까지 마친 뒤 2026년 착공이 목표다. 공사 예상 기간은 5년이다. 사업명은 지난해 5월 세검정구파발터널로 바뀌었다.

서울시는 세검정구파발터널이 들어서면 통일로 도로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2017년 기준 통일로 7만대, 진흥로 4만6000대의 교통량이 약 17% 감소해 통행속도가 35% 향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종로구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암동·평창동·청운효자동 주민은 통일로 차량 중 구기터널을 경유하거나 서울 성북구 등에서 평창동을 지나는 차량이 자하문터널로 몰려 교통체증이 심각한 상황에서 세검정구파발터널이 들어서면 병목현상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종로구의회는 지난해 9월 세검정구파발터널 건설사업 반대 건의안을 채택했다. 주민들도 지난해 10월 서울시청 앞에서 “은평구민 교통천국, 종로구민 교통지옥, 동일세금 차별혜택”을 외치며 반대집회를 했다. 종로구청도 지난해 12월 구의회에 “종로구 간선도로를 거치지 않는 여러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김하영 서울 종로구의회 구의원은 “세검정구파발터널 입구가 은평경찰서 입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은평구민도 큰 혜택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어야 한다면 출구를 자하문로가 아닌 시내와 더 가까운 지역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종로구 북서부 지역 주민 반대의 표면적 이유는 교통난 심화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지하철 접근성까지 떨어지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

종로구 총인구는 2022년 기준 14만1379명으로 중구(12만437명) 다음으로 적다. 5년 간 감소율은 7.6%로 서울시 평균(-3.5%)보다 크다. 평균연령은 2022년 기준 45.6세로 서울시 평균(44.0세)보다 많고 자치구 중에는 강북구(46.7세), 도봉구(46.1세), 중구(45.8세) 다음으로 높다. 생산가능인구는 10만2554명으로 지난 5년간 8.9% 줄었는데 특히 부암동(-10.3%), 평창동(-10.3%)의 감소 폭이 컸다.

통일로가 지나는 서대문구와 은평구 인구는 2022년 기준 각각 30만6337명, 46만6747명이고, 5년간 감소율은 각각 1.3%, 3.4%로 종로구보다 작았다. 평균연령도 각각 44.1세와 45.1세로 종로구보다 젊다.

게다가 2010년대 전후부터 통일로 일대에 잇따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집값도 크게 올랐다. 3호선 독립문역부터 구파발역까지 지하철도 가깝다.

반면 청운효자동, 사직동을 포함한 종로 북서부 주민들은 청와대 관람객 급증, 광화문광장 차로 축소에 매 주말 시위까지 있어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주장한다.

세검정구파발터널 반대 부암평창대책위원회는 터널 건설 중단과 함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와 강북횡단선 세검정역 건립, 자연경관지구 전면 해제도 요구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서울시가 표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지역을 챙기느라 주민이 적은 종로구의 피해를 모른 척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강정실 평창동 주민자치위원장은 “다수인 주변 시민들 이동을 위해 소수 지역 주민은 보이지 않는 지하공간을 내어주기만 하고 아무런 혜택 없이 소음, 매연, 재산 가치 하락 피해만 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협상이 끝나기 전에 주민 의견을 들어보려고 한다”면서 “사업이 (재)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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