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내려 부유층 감세하고…“복지 혜택”이라는 윤 정부

송진식 기자 2023. 4. 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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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시가 -18.61% 역대 최대 하락 조정
효과는 부유층에…세수부족 고통 전국민에
비판 여론 의식한 듯 “국민 혜택 증가” 강조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3월22일 ‘2023년 공동주택 공시가(안)’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2022년 주택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23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부동산 세제 정상화’ 공약 중 첫 번째 공약이다.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이 포함된 이 공약 발표 직후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소유자들의 세금을 감면해 조세 정의를 훼손하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위험천만한 공약”(참여연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고, 대선에서 약 25만표 차이로 당선됐다. 그해 종부세 고지 대상자는 전국 94만7000명이었다.

사실 이 공약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었다. 2022년 주택 공시가격은 윤 대통령 취임(2022년 5월) 전에 확정이 예정된 사안이었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다. 2022년 공시가 산정의 기준 시점인 2021년 말의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는 11억5100만원으로 2020년 공시가 기준 시점인 2019년 말(8억2700만원) 대비 3억원 이상 오른 상태였다. 2022년 공동주택 공시가는 전년 대비 전국 기준 17.20% 올랐다.

시간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이 공약을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냈다. 이미 확정된 2022년 공시가에 손을 대기 어려워지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내리고, 2021년 공시가격을 보유세 산정에 적용했다. 공시가 자체는 2020년 수준으로 못 내렸지만 보유세는 2020년 수준으로 기어이 되돌린 것이다. 올해는 공시가에 직접 손을 댔다. 정부가 지난 3월 22일 발표한 ‘2023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을 보면 올해 공시가는 전년 대비 18.61% 하락해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공시가를 대폭 내린 덕에 올해 보유세는 2020년보다 더 줄어들 예정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대선공약 실현”이라며 자화자찬하는 사이 ‘조세 정의’는 둘째치고 세수(稅收)에 ‘빨간불’이 켜졌다. 종부세 인하로만 감소가 예상되는 세수(국세)는 2조5000억원. 지방세인 재산세 감소분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시민단체 등은 보유세 인하로 줄어든 세수가 결국은 복지재정 축소, 서민 증세 등 서민들의 삶을 옥죄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락폭 너무 큰 공시가격, 제대로 산출했나

부동산 공시가격을 들여다보려면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공시가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산정되는지가 ‘비밀’이라는 점이다. 공시가격 산출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물론 공시가는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약칭 부동산공시법)’에서 정하는 기준으로 산출된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전국의 수많은 주택 중 어떻게 표본을 추출해 조사하는지, 감정평가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은 일반 국민이 알기 어렵고 공개되지도 않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말 “전임 정권이 부동산 통계를 조작한 의혹이 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감사원은 통계 조작 의혹을 밝힌다며 한국부동산원을 이 잡듯 뒤졌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공시가격은 조작 없이 제대로 산출돼야 마땅하다.

정부가 밝힌 ‘-18.61%’라는 공시가 하락폭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은 없다. 다만 추정해볼 수는 있다. 공시가격이 필연적으로 시세(매매가격)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당해 공시가격은 직전 연도의 연말 시세를 참고한다. 이를 기준으로 최근 5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 평균가격 변동과 공동주택 공시가격 변동 상황을 살펴보면 올해 공시가 하락폭이 너무 가파르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019년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5.23% 올랐다. 시세 기준 시점인 2018년 12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 평균은 3억2500만원으로 1년 전인 2017년 12월의 3억1300만원보다 3.7% 올랐다. 같은 방법으로 2020년 공시가격은 5.98%, 매매가 평균은 8.2% 상승했다. 2021년 공시가격은 19.05%, 매매가 평균은 12.7% 상승했다. 2022년 공시가격은 17.20%, 매매가 평균은 29.7% 올랐다.

2019~2022년간 4년을 종합하면 아파트 매매가가 58% 오르는 사이 공동주택 공시가는 47% 올랐다. 반면 올해는 공시가격이 18.61% 하락했고, 매매가는 9.0% 하락했다. 공시가와 매매가의 변동폭이 2배 이상 벌어져 최근 5년새 가장 높다. 과거 4년간 평균을 보면 매매가 변동폭(상승폭)보다 공시가 변동폭이 낮다. 올해는 반대로 매매가 변동폭(하락폭)보다 공시가 변동폭이 훨씬 크다.

국토부가 공시가 하락 참고자료로 공개한 공동주택 평균가격, 공동주택 중위가격 자료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공동주택은 아파트와 연립, 다세대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해도 해당 기간 중 아파트만의 평균·중위가격, 연립만의 평균·중위가격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너무 크다. 예컨대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안)에서 서울 지역 공동주택 평균가격을 4억9700만원으로 산정해 2021년(5억2600만원)보다 낮게 책정했다.

그래프2

반면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해당 기간 중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를 보면 2021년 공시가격(안) 발표 직전인 2021년 2월의 9억300만원보다 올 2월(10억300만원)이 오히려 1억원가량 높다. 연립 역시 올 2월 평균매매가가 3억4300만원으로 2021년 2월(2억6600만원)보다 8000만원가량 높다. 다세대 주택 평균매매가 역시 흐름이 비슷하다. 종합하면 올해 공시가 산출시점의 공동주택 평균가격이 2021년보다 낮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서울은 올해 초까지 호가가 다소 떨어졌고, 1억~2억원 하락 거래도 있었지만 그간 거래량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매매가 하락을 실제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최근 아파트값이 다시 반등세를 보이는 추세라 연중 매매가가 상승할 여지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매매가와 공시가 괴리가 지나치게 큰 것 아니냐고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에 각각 문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산출은 한국부동산원에서 한다”면서도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작년보다 인하되는 등 영향으로 하락폭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공시가 최종 산출은 결국 정부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가 부동산 부유층 수천 만원 절세혜택 누려

모든 국민에게 적용된다고 믿고 있는 ‘조세 공평주의’가 예외인 곳이 있다. 바로 부동산 분야다. 전임 문재인 정부도 공시가가 급등해 보유세가 늘자 각종 특례를 만들어 세금을 깎아줬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법으로 허용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유세를 깎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보유세를 깎기 위해 국회를 열고 감면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공시가를 산출하는 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인지,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서인지 헷갈릴 정도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는 “월급이 오르는데 소득세를 깎아주거나, 자동차를 사놓고 세워만 둔다고 해서 자동차세를 깎아주는 일은 없다”면서도 “국민의 담세 능력을 고려해 과한 보유세 부담을 어느 정도 감경할 순 있겠지만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과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보유세 경감 혜택이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 등 극소수의 부유층에게 집중된다는 점은 윤석열 정부의 보유세 완화책이 갖는 결정적인 문제점이다.

정부가 산출한 1가구 1주택자 보유세 변동 추정치를 보면 지난해 공시가 5억원이던 아파트 보유자는 올해 공시가가 3억9000만원으로 줄면서 18만5000원의 재산세를 덜 내게 된다. 반면 공시가 10억 아파트 보유자는 올해 공시가가 8억원으로 떨어지면서 78만원의 보유세를, 공시가 15억 아파트 보유자는 올해 120만원의 보유세를 각각 덜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이는 그나마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고가아파트 거주자일수록 보유세 감면 혜택이 비약적으로 커진다. 일명 ‘아리팍’으로 알려진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의 보유세는 올해 1078만2744만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1447만6104원)보다 370만원가량 줄어드는 금액이다. 절감액 규모가 공시가 5억원 1주택자의 20배가 넘는다.

경향신문이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에게 2023년 보유세 시뮬레이션을 의뢰한 결과를 보면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30억 이상 고가아파트는 최대 40%까지 보유세가 줄고, 고가 다주택자는 최대 70%까지 보유세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이 40~70%이지, 당초 부과되는 보유세가 높기 때문에 실제 절감되는 보유세 규모는 수천만원에 달한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와 은마아파트 전용 84㎡ 등 2가구를 보유한 다주택자의 올해 보유세는 지난해(5358만원)보다 3800여만원(71%)이나 줄어든 1526만원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1주택자라도 지방의 1억~2억원대 저가주택 소유주는 보유세 절감 혜택을 거의 체감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더 나아가 보유세 절감 혜택 자체가 집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2021년 주택통계 기준 전체 인구의 44%를 차지하는 무주택자들에게 보유세 절감 혜택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3월 14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통령비서실 고위공직자 37명의 평균 부동산 자산은 31억4000만원으로, 일반 국민보다 7.5배나 많다. 정부는 올해 공시가 보도자료를 내면서 큼지막하게 ‘국민 보유 부담 완화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 이행’이라고 부제목을 달았다.

“공시가 인하가 복지라는 주장은 국민 기만”

윤석열 정부의 보유세 완화 정책이 불러온 또 다른 문제점은 세수 감소다. 공시가 발표 이튿날이었던 3월 23일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지난해 주택분 종부세 세수는 약 4조원 수준인데 (윤 대통령 공약인) 2020년은 1조5000억원 수준이었다”라며 “차액인 2조5000억원 정도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부세 감세 혜택이 극소수의 부유층에게 집중되는 반면 그에 따른 세수 부족 문제는 온 국민이 겪어야 할 상황이 됐다.

정부는 “세수 감소폭은 이미 예상했던 것”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말 발표에서 “올 1월 국세 수입이 1년 전에 비해 7조원 가까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당시 배경 설명에 나선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올해는 세수 여건이 상당히 타이트한 상황으로 세입 여건이 상당히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2분기 이후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3월 14일 발간한 재정추계 보고서에서 “법인세율 인하와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 등의 영향으로 향후 5년간 64조4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최근 YTN라디오에 출연해 “금리 인상 후 주택의 거래량도 빠지다 보니까 양도세라든지 취득세, 이런 것들도 상당 부분 걷히지 않았다”며 “집주인들이나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반면에 정부 같은 경우는 ‘이거 큰일 났다’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3월 22일 배포한 2023년 공시가격(안) 보도자료 첫장. “윤 대통령 공약 이행” “국민 혜택 증가” 등이 적혀 있다. 국토교통부

공시가 하락과 보유세 완화, 세수 부족 문제 등을 정부는 애써 ‘국민 혜택 확대’로 포장 중이다. 정부는 공시가 보도자료를 내면서 “공시가 인하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의 복지가 확대되는 등 국민 혜택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공시가가 내려 보유 주택의 자산 기준이 내려가니 정부가 주는 각종 지원금 등의 수혜자가 많아진다는 취지다. 보도자료의 절반가량을 이 설명에 할애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공시가 인하로 부자 감세 비판이 나올 게 뻔하니 국민 혜택을 길게 설명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 주장과 달리 공시가 인하는 복지 확대 정책이 아니다. 수급자가 느는 건 공시가 인하에 따른 ‘결과’일 뿐 의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시가를 매년 큰 폭으로 올리면서 수급자 축소 등 의도치 않은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수급자 선정 시 공시가 기준 동결’ 등 각종 대책을 마련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주장이 맞다면 공시가를 올릴 때마다 복지는 축소된다. 당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각종 정부 지원금을 받는 서민이 공시가 인하로 자산 기준이 바뀔 만큼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실련은 “걷어야 할 세금을 걷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세수 감소, 복지비용 증가 등이 훗날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감추고 있다”며 “부수적인 현상으로 발생한 복지 수혜 대상 증가를 국민 혜택이라고 포장하는 건 국민 기만”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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