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당첨된 청약인데…"전세금 안주는 집주인, 이사도 못 가"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멈췄다. 이사를 가려해도 살던 집이 안나간다. 파는 것도 전세를 주는 것도 녹록지 않다. 거래급감과 시세하락이 맞물리며 계약을 해지하거나 이사를 포기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실수요자의 거주 자유까지 눌린 '거래 실종' 현상을 들여다봤다.
경기도 분당 수내동 양지금호1단지. 재건축 연한 30년을 꽉 채운 명품 학군지이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보유한 아파트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다. 지난 5월 이 대표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집을 내놨다. 하지만 이 대표도 거래 절벽을 비껴가지 못했다. 매물로 내놓은지 5개월이 넘도록 팔리지 않고 있다.
해당 단지의 같은 평형(전용면적 164㎡) 매물은 올해 1월 19억4500만원에 팔린 이후로 지금까지 거래가 전무하다. 그마저 지난해 8월 실거래가(22억8000만원)에서 3억3500만원이 빠진 가격이다. 이 대표가 내놓은 호가는 24억원. 네이버 광고에 등록돼 있진 않다. 같은 평형의 호가는 22억(저층)~25억5000만원 선이다.
단지 내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대표 측이) 여러 중개업소에 집을 내놓은 것으로 안다. 매수 문의가 없어서 실제 집을 보여준 적은 없다"며 "호가는 24억원이지만 매수자가 붙으면 가격 조정을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인근 다른 중개업소도 "요즘 누가 집을 보러오나. 전·월세 거래도 드물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인천 계양구에 오피스텔을 계약하고 주소를 옮겨둔 상태다.
◇"애 전학시켜야 하는데…" 대치동 입성 포기한 강북 엄마
주택시장의 거래절벽이 '빙하기' 수준이다. 직업, 학업을 이유로 이사를 해야 하는 실수요자도 발이 묶였다. 통계청의 인구이동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국내 이동자 수는 51만900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1%가 줄었다.
가파른 금리인상에 시장의 관망세가 짙어진 탓이다. 임대차2법으로 갱신권을 행사하거나 상생임대인 제도로 재계약 한 세입자가 많다보니 전·월세 거래조차 귀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들어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156건(이하 24일 기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 6월 이후 4개월 연속 월 거래량이 1000건을 밑돈다. 지난해 10월(2195건)의 20분의 1 수준이다. 자치구별로 광진·양천구는 이달에 단 1건만 거래됐다.
전월세도 예외가 아니다. 이달 들어 서울 전월세 거래는 7305건으로 작년 10월(2만55건) 대비 64%가 줄었다. 월말이 가까운 시기임을 감안하면 이달에 1만건을 넘기 어려워보인다. 지난 7월(1만9572건) 이후 8월 1만6994건, 지난달 1만4217건으로 4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용산 문배동에 사는 40대 주부 나씨는 아이 전학 문제로 대치동에 전셋집을 얻으려다 포기했다. 자가 보유 아파트를 전세 놓고 이사를 가려했지만 9개월째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 나씨는 "이렇게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없을줄 몰랐다"며 "보증금을 1억원 낮춰도 연락이 없어 아이 전학도 포기했다"고 말했다.
◇"사는 집 안 팔리고, 세입자 못 구해"…불 꺼진 신축, 열 중 셋은 '빈집'
전세 매물은 빠르게 쌓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는 전세 매물이 1년 전보다 234.6%나 급증해 2078건(이하 21일 기준)에 달한다. 양천구도 201.1% 늘어 1864건, 관악구는 185.8% 증가해 1132건에 달한다. 25개 자치구 중 1년 새 전세 매물이 배로 늘어난 곳이 11곳에 이른다.
전세 자금에 여윳돈을 보태 살 집을 계약한 실수요자는 발을 동동 구른다. 40대 후반의 직장인 김모씨는 어렵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지만 입주일이 지나도록 잔금을 못 내고 있다. 김씨는 "집주인이 보증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룬다"며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셋값이 2~3억원 가량 빠졌는데 집을 보겠다고 방문한 사람이 없다. 세입자를 새로 구해도 전세금 하락분은 조달할 방법이 없다니, 일단 내용증명을 보내놓은 상태"라고 했다.
이런 여파로 9월 기준 전국 신축 아파트 10가구 중 3가구가 비어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9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72.6%로 8월보다 4.2%포인트 하락했다. 입주를 못하는 이유는 △기존 주택매각 지연(36.4%) △세입자 미확보(34.1%) △잔금대출 미확보(25.0%) 등이었다.
서현승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주택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면서 실수요자의 주거 이동이 어려워지고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를 비롯해 대출규제 완화 등 시의적절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40대 직장인 A씨는 오랜 기간 살았던 김포시 아파트를 팔고, 자녀 양육을 위해 남양주시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결심했다. 새 집의 매매금액은 8억원이었다. 기존 주택 매도를 조건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올해 6월 입주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았다. 대출은 더 받을 수 없었고 친지들과 주변 지인들한테 크고 작은 빚을 냈다. 급한 불을 껐더니 대출 회수 시한이 생겼다. 일시적 2주택을 해소하지 못해서다. 기존 집을 못 팔면 6개월 내 기존 대출이 회수된다.
주택을 처분하지 못한 일시적 2주택자들이 A씨처럼 대출 회수기한에 쫓기거나 아예 이사 계획을 접고 매매 계약을 해제하고 있다. 계약을 해제하면 억원 단위의 계약금을 포기해야하나, 기존 집이 안 팔려 중도금이나 잔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다.
◇서울 올해 계약해제만 414건, 하반기 45% 차지
2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 해제는 모두 414건이 발생했다. 계약해제는 7월 57건, 8월 50건, 9월 49건, 10월 30건(24일 기준)으로 하반기 이후 발생건이 전체의 45%(186건)를 차지했다.
1억~2억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기도 성남수정구 위례호반베르디움 98㎡(19층)은 지난달 28일 13억500만원에 매매계약이 성사됐다가 이달 6일 부동산중개업체를 통해 해제 의사를 밝혔다. 앞서 3월에도 같은 면적 2층이 14억원에 매매계약을 맺었다가 3개월 후인 6월27일 취소됐다.
계약금이 통상 매매대금의 10%선인 점을 고려하면 계약 해제로 날린 비용은 1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잔금 지급일이 촉박해오면서 매수자 사정으로 잔금을 낼 여력이 안돼서 결국 계약이 취소된 경우"라며 "매매자들 간 합의를 해서 계약금 중 일부는 돌려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사, 상속 등으로 일시적 2주택이 된 사람은 2년 내 주택을 처분해야 1주택자와 동일한 세금, 대출 조건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8월 이전에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경우에는 6개월 내 기존주택을 팔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대출이 회수되고 앞으로 3년간 대출이 제한된다.
◇ 기존 집 못 판 청약당첨자 '교환거래' 자구책…국토부 "주택 교환 인정 안 돼"
1주택 청약 당첨자들도 '입주처분' 조건을 맞추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첨된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기존 주택을 입주 후 6개월 이내 처분해야 한다. 거래 절벽으로 집이 팔리지 않자 1주택자들간 기존 주택을 교환하는 자구책이 성행하고 있다. 비슷한 여건의 주택을 서로 교환해서 입주조건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최근 '주택을 교환한 경우 기존주택을 처분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1주택 청약 당첨자들은 주택 처분기한을 한시적으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신규 입주 물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매매 거래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입주 예정 물량은 경기 지역 약 8만가구를 포함해 올해 하반기에만 전국에 20만가구 이상 잡혀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의 거래절벽이 길고도 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부동산시장 거래절벽이 금융위기 때보다 길게 지속될 수 있다"며 "금리인상 우려에 더해 지역별로 입주 물량이 예정되면서, 처분 기한 내 기존 주택을 파는게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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