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내면 우선분양권 드립니다".. 민간임대에 변종 상품도 등장

최온정 기자 2022. 3. 2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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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분양가와 임대보증금의 차액만큼만 지불하시면 10년 임대기간 종료 후 아파트를 분양받으실 수 있는 권리를 드립니다. 임차인이 계약을 갱신하면 임대료 인상분을 추가 수익으로 가져가시게 되며, 향후 이 권리를 프리미엄을 받고 양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2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사용승인을 마치고 다음 달 1일 입주를 앞둔 후분양 방식의 민간임대 아파트 ‘마곡우촌아파트(75가구)’ 시행사는 통상 민간임대시장에서 거래되는 ‘분양전환형’과 ‘임대형’을 포함해 ‘투자형’ 상품을 새롭게 내놨다. 의무임대기간 종료 후 입주하는 방식의 분양전환형이 아닌 전세로 살다가 나가는 임대형으로 계약된 호실에 대해, 임대종료 후 입주할 수 있는 권리만 따로 파는 것이다.

◆ 한 호실에 임차인·투자자 함께 계약… “사실상 매매예약 효과”

투자금은 각 호실의 확정분양가에서 일반 전세가격을 뺀 가격만큼 책정된다. 이 돈을 ‘양도확정금액’이라고 하고, 이 돈을 내고 투자한 사람을 ‘양도확정인’이라고 한다. 양도확정인은 분양전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프리미엄을 받고 팔 수 있고, 본인이 투자한 호실에서 계약이 갱신되면 최대 5%에 해당하는 전세금 상승분을 가져갈 수 있다.

마곡우촌아파트 전경/네이버 거리뷰

일례로 분양전환형으로 계약하면 3억5000만원, 임대형으로 계약하면 2억2000만원인 1.5룸(전용면적 22㎡)을 수분양자 A가 임대형으로만 계약했다고 치자. 이 호실을 사고싶은 투자자 B는 확정분양가와 전세가의 차액인 1억3000만원을 내면 임대기간 종료 후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임대 종료 시점에 보증금 2억2000만원을 시행사에 내면 최종적으로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다. 사실상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임대의무기간 종료 후 전세금을 내고 입주하는 방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위험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양도확정금액은 엄연히 투자금이기 때문에, 권리를 다른사람에게 팔지 않는 한 입주 전에 계약을 파기할 경우 돌려받을 수 없다. 또 처음 입주할 세입자는 시행사에서 모집하지만, 추후 공실이 발생할 경우 관리비 등도 투자자가 부담해야 하며, 세입자도 직접 구해야 한다. 공실이 계속 이어지면 전세료 인상분도 받을 수 없다.

또 시행사와 표준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임차인(임대형 계약자)은 회사가 부도가 날 경우 주택도시공사(HUG) 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투자자는 구제할 방법이 없다. HUG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에 위배되기 때문에 일정 금액을 넘어서는 선순위 채권 등도 설정할 수 없다. 실제 투자자와 시행사가 체결해야하는 계약서에 따르면 “양도확정금액은 HUG의 임대보증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사실상 한 호실에 임차인과 투자자가 동시에 계약하게 되는 이런 방식이 왜 도입된걸까.

부동산 업계에서는 분양전환유형으로 계약하는 사람이 적다는 점을 이유로 꼽는다. 마곡우촌아파트는 75가구로 구성된 나홀로아파트로, 공개모집 전 인근 주민들에게 먼저 민간임대로 분양을 했지만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후 시행사는 분양가와 보증금을 조절해 정식 모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확정분양가는 시중 빌라 분양가와 비교해 여전히 1억원 이상 비싸다. 이로 인해 분양전환형으로 계약한 사람은 20%에 불과하다.

◆ 법적 해석 놓고도 의견 분분… “법 저촉 안 돼” vs “다툼 여지 있어”

시중 민간임대 방식과는 매우 다른 계약방식이지만,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상 공급방법을 임대사업자(시행사)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상황.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놓고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엇갈린다.

연제헌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의 경우 임차인에게 우선 분양전환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민간임대는 공급조건과 분양전환 조건을 모두 사업자가 정할 수 있게 해놨다”면서 “사실상 분양전환권만 따로 파는 방식의 이런 상품도 법상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투자금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사전에 고지했으니 사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불공정약관 등 문제와도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상 소유권이 임차인이 아닌 투자자에게 넘어가는 탓에 정해진 기간동안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민간임대 아파트의 도입 취지와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예림 덕수 변호사는 “양도확정인을 정해두는 것이 임대사업자가 임대의무기간 내 매매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로 볼 수 있다”면서 “물론 법적인 소유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서 다툼의 소지는 있지만, 만약 소유권 이전으로 본다면 과태료 부과 등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김소정 법률사무소 대표 김소정 변호사는 “투자금을 내고 분양전환권만 구입할 경우 민간임대주택에 실거주를 하지 않으면서도 프리미엄을 노리고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서 “현금이 부족한 무주택자들에게 이점이 있는 민간임대 상품이 양도세·취득세도 없는 투자 상품으로 변모할 경우 청약 과열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국토부·HUG “당장 위법소지는 없어”… 일각선 “법 보완해야” 주장

정부와 HUG 측은 당장 위법 소지는 없어 보인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재 거주하는 임차인이 임대기간을 보장받는다면, 투자자가 임대종료 후 아파트를 매입할 권리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면서 “어떻게 보면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법상 무단양도를 판단하는 것은 소유권 이전 등기 여부를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주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HUG 측도 이런 방식의 계약이 추후 임차인의 임대보증금 보장 측면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HUG 관계자는 “만약 시행사가 투자금 보전 차원에서 보증보험 가입 후 기타 후순위 권리 등을 해당 호실에 설정할 경우 계약사고가 나면 보증 이행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없이 임차인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되면 보증 이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변종 상품이 등장하면서, 민간임대 관련 특별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임차인이 계약된 호실에 대해서 분양전환권만 따로 떼서 판다는 것은 처음 보는 방식”이라면서 “입주까지 앞둔 단지라면 지자체 승인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당장 법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투자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경우 소송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소정 변호사도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임차권도 전매 제한이 없어서 웃돈을 주고 거래되는 일이 많은데, 투자금까지도 경쟁률이 높아진다면 건설사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임대보증금이나 양도확정금액을 높일 유인이 크다.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무주택자들에게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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