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대신 집주인 실거주 확인해준다는 정부.. "여당 후보 돕는 정책" 의견도
“정부가 별 서비스를 다 합니다. 제가 제 집에 들어와 살기 위해서 몇 달을 고생했는지 몰라요. 우리 세입자는 계약이 끝나가는데도 언제까지 이사가겠다고 말이 없더라고요. 내용증명 수차례 보내고 겨우 들어왔는데, 제가 사는지 정부가 확인해 고지해준다고요? 계약이 끝나면 세입자가 나가야 한다는 것은 정부가 왜 책임져주지 않고요?(집주인 A씨)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 거잖아요. 임대인이 실거주한다고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는데 그게 거짓일 경우 임차인은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죠. 정부가 이제라도 이렇게 서비스해주니 다행인데 그럼 보상은 얼마를, 어떻게 받는건가요?”(세입자 B씨)
‘갈등 격화.’ 요즘 임대차 시장 분위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전세수급지수가 100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재계약을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은 여전하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전세가격이 2년 전보다 크게 오른 상태이기 때문이다. 임차인은 임대인이 거짓으로 실거주를 주장하는 것인지 의심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이 제 날짜에 퇴거해주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주택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줄이겠다며 새 방안을 제시했다.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명목으로 세입자를 내보내는 경우 해당 주택의 임대차 정보를 세입자가 정기적으로 고지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집주인 실거주 상황을 통보하는 구체적인 기간이나 빈도는 추후 결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가 불만을 표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를 각 지방자치단체가 고지하는 방식으로 임대차 2법의 허점을 보완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발표됐다. 하지만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 반응은 좋지 않다. 세입자는 정부가 임대차 2법의 허점을 보완하는 것은 환영하면서도 실질적인 피해 보상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멀다고 주장한다. 집주인은 이미 임차인과 임대인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정부가 임차인 중심의 보완책만 더 내놨다며 불만이다.
① 이미 어긋난 균형추… “또 임차인에게만 힘 실었다” 불만
임대인들은 정부가 ‘임차인은 약자’라는 단순한 논리로 정책을 내놓는다고 불만이 많다. 임대차 3법이 주택 공급이 부족한 때에 급하게 도입되면서 임대인이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사례는 버틸 만큼 버티겠다는 임차인을 둔 경우다. 임대인이 실거주 의사가 정말인지 확인할 수 없는데다 시세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임대차 계약 2년이 끝나더라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위로금이라도 받고 나가겠다는 경우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J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셋값이 2년 전보다 많이 올라 집주인이 속앓이를 하다가 결국은 내용증명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세입자들은 내용증명을 수차례 받고 집주인이 진심으로 이사할 계획이란 걸 어느 정도 확인하면 그제서야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 조기에 내용증명을 보내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M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연쇄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난감할 지경”이라면서 “세입자가 갱신권을 안 쓰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꿔서 갈등이 생긴 고객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세입자의 세입자가 말을 바꿔 위로금을 달라고 하니 연쇄적으로 갈등이 생긴 거였다”고 했다.
최근 임차인들은 계약갱신권을 쓰지 않을 경우 1000만~5000만원의 위로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임대인이 명도소송에 들어갈 비용과 시간을 감안해 위로금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균형이 임대차 3법 도입으로 완전히 깨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균형은 시장논리로 결정되어야 하는데 정책이 일방만 유리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주택 공급이 많을 땐 임차인이 우위, 임대주택 공급이 적을 땐 임대인이 우위인 것이 자연스러운데, 온갖 정책을 덧대어 무조건 임차인이 유리하게 된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나서 집주인 실거주 여부를 주기적으로 고지해준다는 것은 임차인 일방에게 한번 더 힘을 실어준 사례”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임대인은 거주의 자유권도 있고, 임대를 자유롭게 놓을 권리도 있는데 너무 많은 제약이 생겼다”면서 “임대차 3법이 도입되면서 임차인의 권한이 너무 강해졌다”고 했다.
② 임차인도 “실효성이 없다” 불만
임차인들 중심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후적으로 실거주 여부를 고지받고 각종 송사에 나서도 감정적 속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발간한 ‘주택임대차 분쟁조정 사례집’에 따르면 실거주를 주장하는 임대인과 이에 계약갱신권이 가로막힌 임차인간 분쟁조정결과는 부동산 중개료와 이사비 정도다. 최근 2년새 전셋값이 급등한 것을 감안하면 큰 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전셋값 상승세가 주춤하다고 하더라도 2년 전과 비교하면 전셋값은 많이 올랐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의 2년 전 전세 가격은 8억9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최근 시세는 14억원 수준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59㎡는 11억~12억원선에 거래됐는데 최근엔 17~18억원에 나오고 있다. 2년새 5~6억원이 오른 셈이다.
최근 임대인이 실거주를 주장해 이사를 해야했던 임차인 C씨는 “새 집에 들어갈 계획이라 1년만 연장해달라고 했는데 집주인이 임대차 3법 때문에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하더니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줬다”면서 “애들 학교에 영향을 안 주는 선에서 새 집을 예산에 알아보느라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는데, 기껏 이사비용 정도 받으라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권대중 교수는 “편법이 난무할 수 있어 처벌규정이 아예 강화되지 않고 확인만 시켜주는 것은 갈등과 분쟁을 더 키우는 일”이라면서 “세입자의 감정적 속풀이에 행정력을 더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심교언 교수는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를 고지해준다는 것도 행정에 부하만 많이 걸리는 일이 하나 추가된 셈”이라고 했다.
③ 어디까지가 실거주?… 또 다른 갈등을 양산
또 다른 갈등을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 임차인을 내보내고 임대인이 얼마나 실거주를 해야 임차인을 기만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은행에 근무하는 A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A씨는 전세가 1년 남은 집을 샀고 최근 입주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중 해외 주재원으로 선발되면 가족이 전부 해외로 이사할 가능성이 있다. A씨는 “해외로 나가게 되면 당연히 집은 전세를 새로 주고 나갈 계획인데 그때 새로 세를 줬다고 기만행위를 한 것은 아닌데, 불필요한 갈등을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공실로 두는 것은 어떻게 볼 지에 대한 의견 정리도 필요하다. 최근 2년과 같은 급등기라면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공실로 두고 관리비를 지출하더라도 임대인 입장에서 잘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 도입 후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은 커지는 추세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올해 1~11월 주택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접수된 ‘임대차 계약 갱신·종료’ 관련 분쟁은 총 215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81건보다 2.7배가 됐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불만이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익영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차 시장 불안을 해소할 필요는 있지만, 임대인과 임차인을 단순히 강자와 약자로 나눠 정책을 짜는 것은 사회 갈등만 부추길 뿐”이라면서 “정부가 여당 후보를 돕기 위해 실효성 없을 정책을 시도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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