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에 중도금 대출까지 막혔다.. "무주택자 고통만 가중"

최상현 기자 2021. 9. 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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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출 총량 규제로 전세 대출에 이어 중도금 집단대출까지 막히는 사태로 이어지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9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LH가 최근 분양한 화성봉담2 A-2블록과 화성능동 B-1블록 신혼희망타운은 중도금 집단대출 납부 기한을 연기했다.

화성능동 신혼희망타운은 중도금 납부기한을 6개월 연장한 뒤 은행을 섭외해 중도금 대출을 진행 중이지만, 화성봉담2 신혼희망타운의 경우에는 당초 9월 3일까지이던 납부기한을 3개월 연장하고 아직까지 중도금 집단대출을 내줄 금융기관 섭외를 하지 못한 상태다.

오는 13일부터 청약이 시작되는 파주운정 A17블록 공공 분양주택과 시흥장현 A3블록 공공 분양주택도 중도금 집단대출이 가능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해당 단지의 입주자 모집공고 상단에는 ‘금융권의 중도금 집단대출규제로 인하여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며, 중도금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해야 함을 알려드립니다’는 문구가 명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주택토지공사가 13일부터 분양하는 시흥장현지구 A-3블록 공공분양주택 입주자 모집공고에 '중도금 집단대출이 불확실하다'는 안내가 명시됐다. /LH

LH 관계자는 “공공 주택기관으로서 최대한 중도금 집단대출을 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대출의 주체인 은행 협조가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청약자를 기만하지 않기 위해 해당 문구를 삽입한 것”이라면서 “명시한 대로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마련하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민간 분양주택에서도 중도금 집단대출이 막히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3일부터 청약을 받는 경기도 수원 ‘힐스테이트 광교중앙역 퍼스트’의 시행사 무궁화신탁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전용면적 60㎡와 69㎡도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해당 면적은 분양가가 9억원 이하라 원래 중도금 집단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던 청약 전형이었다.

지난 6일 청약 당첨자를 발표한 민간임대 아파트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 엘’도 아직 중도금 집단대출을 내줄 은행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입주자 모집공고에도 ‘본 임대주택은 임차인이 본인의 책임과 비용으로 계약금, 중도금 및 잔금을 납부하여야 하며, 임대사업자는 대출알선의 의무가 없음’이라고 명시돼있다. 중도금 집단대출이 무산돼도 시행·시공사는 타격이 없지만 당장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임차인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시행사가 중도금 집단대출 알선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이지만, 아무래도 최근 규제 영향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출 줄여라” 권고에...’박리다매’ 중도금 집단대출 희생양

이처럼 민간·공공 분양을 가리지 않고 중도금 집단대출이 잇달아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정부의 금융권 대출 규제가 원인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들어 각 시중은행에 연초에 정한 대출 총량 한도를 엄수할 것을 연이어 권고했는데, 이에 ‘덩치는 크지만 남는 건 적은’ 중도금 집단대출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한 은행권 출신 부동산 전문가는 “금융위에서 가하는 대출 규제는 정확하게 어떤 유형의 대출을 콕 집어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총량을 조절하라는 내용에 가깝다”면서 “시중은행들이 제한된 대출 총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려하다 보니 규모는 수천억원 단위로 큰데, 이율은 낮은 중도금 집단대출이 정리 1순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중도금 집단대출과 관련해 ‘갑을이 바뀌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래 중도금 집단대출은 이윤이 조금 적어도 총량이 많고 관리도 편한 ‘박리다매’ 상품이라 은행들이 서로 대출을 내주겠다며 경쟁하던 상품이었지만 요즘엔 은행을 찾아다니면서 대출을 부탁하는 상황”이라면서 “관례상 알선을 해왔지만, 사실 시행·시공사 입장에서는 중도금 집단대출을 제공해야 할 법적인 의무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나 은행 입장에서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중도금 집단대출이지만, 무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청약 포기를 고민하게 하는 중대사안이다. 직장인 박모(46)씨는 “당연히 되는 줄 알고 청약을 했다가, 자칫 중도금을 구하지 못해 계약 포기를 한다면 십수년 간 부어온 청약 통장을 날리게 되는 셈”이라면서 “요즘 같은 상황에 청약을 포기할 순 없고 사채라도 알아봐야 할 판”이라고 했다.

◇전세대출도 축소...실수요자 퇴로 막혔다

앞서 지난달에는 전세대출 중단 사태가 잇따르며 무주택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기도 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주택뿐 아니라 토지 등 모든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해 신규 접수를 받지 않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전세대출을 중단하지 않더라도 대출 상품의 금리를 인상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6일부터 전세대출 가산금리를 0.2%포인트(P) 인상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 3일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0.15%P 올렸다.

지난해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른데다 전세대출까지 축소되면서 세입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는 심모(32)씨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너무 많이 올려달라고 해서 이사갈 집을 찾아보고 있는데, 그마저도 지금 전세금보다 1억원은 더 필요하다”면서 “전세대출이 잘 안되면 꼼짝없이 월세살이로 전락할 것 같아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가 실수요자 피해로 ‘도탄’되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라는 반응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원래 금융당국 의도는 부동산 담보 대출을 줄여 ‘패닉바잉’을 막아보겠다는 것이었겠지만, 현실에서는 중도금 대출과 전세대출이 줄어드는 양상으로 나타났다”면서 “순작용만 기대하고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펼친 결과”라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도 “지난해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집값이 상승하면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부동산 대출도 커졌기 때문”이라면서 “다만 가계부채 연체율을 보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출액은 많아졌어도 ‘부실’하지는 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교수는 “지금과 같은 대출 총량 규제로는 실수요자 피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면서 “연체율을 중점으로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는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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