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대차법요? 4년 뒤 전셋값 감당 못해 또 짐쌀 텐데요.."

진명선 2021. 8.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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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부동산대책]전세난의 본질-임대차 시장 불균형①
계약갱신권·전월세상한제 등 있지만..
저소득 임차인들 시세 폭등에
서울 전세-반월세-탈서울 이어져
공공임대는 저비용 장기거주 해법
공공임대 만성적 공급 부족
주거취약계층 전세난 내모는 주범
민간임대 86%나 되는데다
등록임대는 갭투자 수단 변질
현실적 공급확대 방안은
전문가 "재개발 때 임대비율 높이고
재건축에 의무비율 신설 필요
소규모 주택정비로 가구 수 확보를"
엘에이치(LH)가 공급한 공공임대 단지의 모습. 엘에이치 제공

“서울 빌라 전세보증금 2억5천만원이면 인천에서 30평대 아파트 전세를 살 수 있더라구요. 당장 4년은 안정돼서 좋은데 4년 후에 얼마나 더 오를지 걱정이죠. 전셋값이 이사 들어오고 나서도 더 올랐거든요. 여기 인천 검단신도시 쪽이라 전부 다 아파트를 짓고 있어서 공공임대가 나오는 거 계속 찾아보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분양 계획만 나와 있어서 답답한 상황이에요.”

두 자녀를 둔 40대 ㄱ씨는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이 시행된 뒤 4년 동안의 주거를 보장받았다는 안도감보다 4년 후 노출될 ‘전세난’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난 2월 ‘탈서울’해 인천 서구에서 2억5천만원에 전세 아파트를 구했지만, 입주한 지 반년 만에 전세 시세가 2억7천만원으로 올랐다. 민간임대시장에서 ‘주거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새 임대차법 시행 후에도 전세난에 대한 두려움은 지속되고 있었고, ㄱ씨는 공공임대 입주만이 전세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금 여유가 없어서 월세로 살기도 하고 이사를 되게 자주 다닌 편이에요. 4~5년 전부터 엘에이치(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에스에이치(서울주택도시공사·SH)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어가서 보고 1순위 될 거 같으면 공공임대 서류 넣어보고 했는데 한번도 안 됐어요. 언제 될지 알 수도 없고 그냥 기다리다가 인천으로 이사 왔죠.” ㄱ씨 가족은 공공임대 입주 대상인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00% 가구이면서도 만성적인 공공임대 공급부족 탓에 민간임대시장에 머물러야 했다. 한국 임대차시장(임차가구 761만4천가구)에서 민간임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86.5%(658만5천가구)로 공공임대 13.5%(102만9천가구)를 압도하고 있다. 임대차시장에서 공공과 민간의 극심한 불균형은 주거 약자들을 ‘전세난’으로 내모는 또다른 요인이다.

8월 서울 전세가격 상승률(0.16~0.17%)이 지난해 8월 새 임대차법 시행 직후 수준(0.16~0.17%)까지 오르면서 ‘가을 전세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대선주자들이 전세난의 원인으로 새 임대차법을 지목하며 ‘임대차법 폐지’를 사실상 공약처럼 내걸고 있다. 정말 새 임대차법을 폐지하면 민간임대시장은 안정될 수 있을까. 새 임대차법이 없던 시절 이미 서울의 민간임대시장에서 전세난을 경험한 40대 임차인들의 이야기는 공공은 취약하고 민간은 규제되지 않는 한국 임대차시장의 본질적인 불균형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

① 임대차 3법 이전에 이미 ‘탈서울’

“처음 신혼 때 서울 은평구가 제일 싸서 빌라에서 전세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점점 빌라도 엄청 비싸지더라구요. 2년마다 집주인이 올려달라고 하잖아요. 올려줄 수 있으면 사는 거고 돈이 없으면 이사를 계속 다녔죠. 마지막 집에서 7년 정도 살았는데 나중에는 못 올려줘서 반월세로 넘어갔어요.” 40대 ㄴ씨는 2017년 은평구의 반월세(반전세) 빌라에서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 전세로 ‘탈서울’을 했다. “저희가 부모님 도움 없이 시작해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거든요. 반월세로 넘어가니까 이자도 내야 하고 월세도 내야 하니 부담이 크더라구요. 일산으로 이사한 건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집값이 너무 올라서 서울에서 더이상 버틸 수 없었을 거예요.”

최근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임차가구의 ‘탈서울’ 현상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서울의 높은 전세가격을 부담할 수 없는 무주택 서민들의 ‘탈서울’ 경향은 새 임대차법 시행 훨씬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서울 인구 1000만명 선이 무너진 것은 한해에만 전세대책이 세차례 나올 정도로 전세난이 심각했던 2015년(1002만2181명)을 지난 2016년(993만616명)의 일이었다. 2011년 이후 서울의 인구가 10년째 감소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시기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매매수요가 전세수요로 돌아서면서 전세난이 일상화된 일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 인구는 2011년 1024만9679명에서 2020년 966만8465명으로 10년 사이 58만1214명이 줄었다. 서울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송파구 인구가 65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서울 자치구 1곳이 사라진 셈이다. 같은 기간 전국 인구는 5073만명에서 5182만명으로 109만명 늘었다.

② 공공임대 대기자 7만가구…만성적 초과수요

왜 서울을 떠나야만 했을까. 임대료 규제를 받는 임대주택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간임대시장에서 임대료 통제를 받는 등록임대주택은 시장에서 갭투기 수단으로 왜곡되었고, 정부가 직접적으로 임대료를 규제하는 공공임대는 만성적인 공급부족, 초과수요 상태다.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운영호수는 2010년 43만7224호에서 2019년 65만1755호로 20만호 이상 늘었지만, 연평균 입주 대기 가구는 같은 기간 6만9024가구에서 7만81가구로 거의 변화가 없다(토지주택연구원, ‘공공임대주택 재공급 유형통합 및 대기자 명부 운영관리 방안’). 영구임대(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50% 이하) 운영호수 대비 대기자 비율이 2010년 43.8%에서 2019년 16.3%로 크게 떨어진 반면, 영구임대보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국민임대(70% 이하)는 2010년 2.6%에서 2019년 9.0%로 3배 이상 늘었다. 공공임대 유형 가운데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행복주택(100% 이하) 대기자 비율은 13.7%로 국민임대보다 높다. 김지은 에스에이치(SH) 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서울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수요층이 전 연령대에서 확대되는 등 주거불안이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어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며 “재개발 공공임대 비율을 높이고 재건축에 공공임대 의무비율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며 노후주거지에 대한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을 활성화해 점진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양을 통한 시세차익을 중시하는 시장 참여자들은 공공임대 정책에 대해 “평생 임대나 살라는 얘기냐”며 거부감을 보이지만, 자산 축적이 어려워 자가 소유를 사실상 포기한 주거 약자들에게 공공임대는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대출 당겨서 살 수만 있으면 좋죠. 저는 무주택 기간이 길고 애가 둘이라 주택담보대출이 70%까지 가능한데, 나머지 30%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요. 지금 전세도 80% 대출받아서 들어와 있는데….” ㄱ씨는 특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인근에 조성되는 검단새도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요즘 짓는 공공임대는 넓은 평수도 나오더라구요. 저희는 애가 둘이고 성별이 달라서 방이 따로따로 있으면 좋거든요.”

하지만 검단새도시는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건설되는 2기 새도시로, 전체 물량의 80%가 민간분양 물량이다. 검단새도시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7만1654가구 가운데 임대 물량은 1만4409가구로 20% 수준에 그친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건설되는 3기 새도시는 공공임대 35%, 공공분양 25%, 민간분양 40% 수준이다. 85㎡까지로 공급유형을 확대한 문재인 정부의 ‘통합임대’ 모델도 검단새도시에 적용되지 않는다. 검단새도시 공공임대 물량은 모두 60㎡ 이하다.

③ 4년 살고 있었는데 고작 4년 보장한 새 임대차법

“이번에 운 좋게 갱신을 했지만 2년 후에도 전셋값이 이 상태라면 일산에서 못 살 것 같아요. 파주나 더 외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ㄴ씨는 8월 재계약 시점에 새 임대차법에 따른 갱신에 성공했지만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30여년 만에 임대차 계약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그는 이미 해당 아파트에 4년을 거주한 상태다. 전세에서 반전세로 전환하는 등 2년에 한번씩 임대료를 올려주며 은평구에서는 같은 집에 7년 동안 살기도 했다.

민간임대시장에서는 이미 임대료 부담만 할 수 있다면 2년 이상 계속거주가 흔했다. 실제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주거안정연구센터장이 2019년 주거실태조사의 평균거주기간 항목을 민간 전월세만 따로 분석한 결과, 민간 전월세 평균 거주기간은 3.7년으로 사실상 한번의 갱신이 이뤄지는 체제였다. 전세난이 심각한 서울의 경우 전세는 4.1년으로 법이 보장한 기간보다 길다. 보증부 월세 3.7년, 월세가 3.6년으로 월세 역시 1회 정도는 갱신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임대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임대시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지만, 새 임대차법은 갱신권을 1회만 보장하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되면 임대료 상한(5%)을 적용받는 임대료 규제도 1회만 가능하다. 계속거주 기간이 크게 연장되지도 않았는데, 갱신하고 2년 뒤면 급등한 전세가격으로 신규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는 “부동산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은 자가-전세-월세 점유의 차별을 해소하는 데서 온다”며 “전월세 거주 기간을 자가 수준으로 늘려서 집주인 정도의 주거 안정을 임차인도 누릴 수 있도록 임대료 규제를 받는 계속거주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기준 자가주택의 평균 거주 기간은 11.7년으로 전세 4년, 보증부 월세 4.2년, 월세 4.2년의 2배가 넘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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