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대책 1년] ②'공급폭탄' 약발 오래 못 가..줄기차게 집값 상승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정부가 지난해 8·4 대책을 통해 그간의 수요 억제 위주 정책에서 공급 정책으로 기조 전환을 꾀했으나 시장 안정 효과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량폭탄' 수준이라고 정부가 소개한 올해 2·4 대책 역시 발표 직후에는 매수심리 진정 효과가 나타나는 듯 보였으나 2∼3개월 뒤 어김없이 '약발'이 다하며 다시 집값 오름폭이 커지는 모습이 반복됐다.
8·4 대책 1년, 2·4 대책 6개월을 맞아 전문가들은 정부가 더 빨리 공급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지적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공급 정책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공급대책에도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전국 아파트값
28일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월간) 통계에 따르면 8·4 대책 발표 직전인 작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11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값은 10.88%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11개월간의 상승률이지만, 기존 연간 상승률과 비교하면 2006년(13.92%) 이후 약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가 재작년 12·16 대책에 이어 지난해 6·17 대책과 7·10 대책 등 강력한 수요 억제 대책을 잇달아 쏟아냈음에도 효과가 시원치 않자 대규모 공급대책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역시 약발이 듣지 않은 셈이다.
8·4 대책과 2·4 대책 등 공급대책의 효과만을 따로 떼어내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다. 전후로 나온 다른 대책들의 영향도 시장에 함께 반영되고 시장 안팎의 다른 변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부가 대규모 공급대책으로 시장 진화에 나섰으나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세를 꺾지 못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전국 아파트값 변동률은 작년 3월 0.79%에서 4월 0.38%, 5월 0.16%로 두 달 연속 줄었다가 6월 0.58%, 7월 0.89%로 다시 오르며 크게 출렁였다.
6·17 대책과 7·10 대책으로 시장에 강력한 규제를 가했음에도 아파트값은 오히려 반발하듯 더 오른 것이다.
8·4 대책이 발표된 8월에는 수도권에서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다소 해소되면서 상승률이 0.65%로 낮아졌고 이후 9월 0.57%, 10월 0.40%를 기록하며 집값이 안정세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오래가지 못하고 작년 11월 0.75%에서 12월 1.34%로 올랐고, 올해 1월 1.14%, 2월 1.31%로 1%대 상승률을 이어가며 불안한 모습이 계속됐다.
이에 정부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 대규모 공급 계획을 담은 2·4 대책을 추가로 내놨으나 올해 3월 1.07%, 4월 1.10%, 5월 0.98% 등 관망세가 이어졌고, 6월 1.17%로 다시 상승폭이 커졌다.
8·4 대책 이후 최근까지 아파트값은 서울보다 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이, 수도권보다는 지방이 더 큰 폭으로 뛰었다.
수도권에서 경기가 16.14%, 인천이 14.39% 상승했으며 인천을 제외한 5대 광역시는 13.05% 올랐다.
서울에서는 노원구(7.08%), 관악구(5.56%), 도봉구(5.43%) 등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외곽 지역 아파트값이 튀어 올랐고, 송파구(5.36%), 서초구(5.15%), 마포구(5.04%), 강남구(4.85%), 양천구(4.61%) 등 고가 주택이 많은 지역의 아파트값도 높은 상승률을 이어가며 가격 천장을 높였다.
경기에서는 의왕시(27.18%), 고양 덕양구(24.56%), 안산 상록구(23.69%), 남양주시(23.45%), 안양 동안구(23.09%), 안산 단원구(22.30%), 시흥시(21.54%) 등의 상승률이 20%를 넘기며 크게 올랐고, 인천은 연수구(23.33%) 등이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방에서는 부산 해운대구(25.75%), 대구 수성구(25.81%), 대전 유성구(22.51%), 세종시(21.62%) 등이 역대급 상승률을 보였다.
수요억제→공급확대 전환은 '긍정적'…공공 추진 갈등 등 숙제
전문가들은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다수의 지적에도 수요 억제책에만 골몰하던 정부가 8·4 대책과 2·4 대책을 통해 기조를 바꿔 대규모 공급 대책으로 시장에 공급 신호를 보내려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시장에 충분한 물량 공급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정책 신뢰도가 떨어지고 정책 효과가 반감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가 작년 8·4 대책에서 공공 재건축을 활성화하는 등 서울을 중심으로 신규 주택 13만2천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보고서에서 실질적인 공급량이 목표의 절반 수준인 6만2천가구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당시 건산연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건축이 리스크에 비해 인센티브가 부족하고, 공급 시기와 지역이 중산층 등 시장이 필요로 하는 물량을 적기에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공급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그때 공급대책을 마련했으면 지금쯤 입주하는 단지가 줄줄이 나오며 공급 대책의 성과를 체감하고 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8·4 대책 이후 공급 기대감에 따른 심리적 안정 효과가 일부 나타났으나 바로 며칠 전 새 임대차 법이 시행되면서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하고 매매가격을 밀어 올린 측면이 있다"며 "사실 대책을 내놔도 실제 주택 공급은 한참 뒤에 이뤄지기에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공급 정책은 꾸준히 펴야 한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수요 억제와 함께 공급 확대로 눈을 돌려 양대 축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던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8·4 대책 사업지에서의 갈등 등을 해결하고 사업 속도를 내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함 랩장은 8·4 대책에서 정부가 수도권 13만2천가구, 전국 26만가구 공급을 제시했으나 과천과 태릉골프장 개발 추진 사례에서 보듯 정부와 지자체·지역주민 간 이견으로 파열음이 나는 경우도 있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2·4 대책의 경우도 정부가 '압도적인 공급'으로 수급 심리를 회수하겠다고 했으나 과연 당시 구상대로 되고 있는지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중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계획은 거창했으나 실제 분양이 이뤄졌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고 본다"며 "한쪽으로는 공급을 늘린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임대사업자 규제를 강화하는 등 공급을 막는 모순적인 정책을 펴 물량이 나올 구멍을 더 막아놨다"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지금은 입주·분양 물량 모두 적은 상황이고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은 5년 뒤에야 입주할 물량이어서 당장 시장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대규모 신도시 계획이 담긴 2·4 대책 발표로 시장 분위기가 잡혀갈 즈음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는 사업 추진 주체인 공공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심 교수는 "정부가 너무 공공 주도로 공급을 추진하는 거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와중에 'LH 사태'가 터져 공공 주도 사업이 계속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며 분위기가 가라앉는 상황이 됐다"라며 "공공 주도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여전히 과제"라고 지적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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