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기다리게한 '보금자리 잔혹사' 답습하나".. LH發 혼란에 3만가구 사전청약 우려"

최상현 기자 2021. 3. 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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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이 넉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분양이 차질 없이 진행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사건으로 토지보상 등 신도시 개발 절차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볼 때 본 분양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공수표’ 발행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10일 오후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 구성원들이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서 LH를 규탄하고 3기 신도시 공공주택지구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인천계양·하남교산·과천과천 등 3기 신도시 토지보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전부터 보상비 산정 등을 놓고 토지 소유주가 반발하면서 절차가 지연되고 있었는데, ‘LH 사태’ 이후 집단적인 토지보상 보이콧이 벌어지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2일 부동산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7월로 예정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일정은 향후 수사 상황과 관계없이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사전청약 물량은 총 2만2000가구다. 올해 ▲7~8월 인천 계양 1100가구 ▲9~10월 남양주 왕숙2 1500가구 ▲11~12월 남양주 왕숙1 2400가구, 부천 대장 2000가구 ▲11~12월 고양 창릉 1600가구 ▲11~12월 하남 교산 1100가구 등이 예정돼있다.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공전협)에 따르면, 인천 계양 지구는 문화재가 출토돼 토지 보상이 일시 중지됐다. 보상률이 약 60%로 3기 신도시 중 가장 빠른 하남 교산 지구는 LH 사태 이후 절차가 전면 중단됐고, 남양주 왕숙 1·2 지구는 아직 구체적인 보상 일정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임채관 공전협 의장은 "보상비를 합리적으로 책정하지 않을 거면 아예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고 민간 개발로 방향을 틀게 해달라는 것이 토지 소유주들의 지속적인 요구"라면서 "아직 확보하지도 못한 땅을 두고 사전청약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10년 전의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제' 보다 실패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전 청약이 본 분양으로 이어지기까지 많이 지체되면 청약 포기자가 속출하고 내 집 마련 시기를 놓치는 무주택자도 양산될 거란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총 32만채의 공공주택을 민간보다 30%까지 저렴한 분양가에 공급하는 정책이었다. 주택 수요를 조기에 진정시키기 위해 본 청약보다 1년 먼저 ‘사전예약제’를 진행했다. 사전예약 물량은 2009~201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3만7500여가구였다.

1차 사전예약(1만4295가구)은 대체로 본 청약 시기를 맞췄지만, 2차와 3차는 모집 당시 계획보다 3~5년 늦게 본 청약이 진행됐다. 하남 감일지구 B4블록의 경우 8년이나 늦어져 2018년 10월 본 청약을 겨우 진행했고, 올해 10월쯤에야 준공돼 실제로 입주할 수 있을 전망이다.

LH에 따르면 2009~2010년 사전예약 당첨자 1만3398명 가운데 실제 본 청약 계약자는 5512명(41.1%)에 불과했다. 언제 공급될지 모르는 ‘허상의 집'을 기다리며 무주택 자격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세 난민으로 떠돌며 입주를 기다린 무주택자들은 정신적·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떠안았다.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제가 실패로 끝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업대상 토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전예약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지금 3기 신도시의 상황과 닮은 꼴이다. 토지보상 과정에서 발생한 LH의 자금난과 원주민과의 보상 문제 등으로 당초 일정이 크게 지체됐고, 보상이 끝나야 가능한 본 청약은 기약 없이 늘어졌다.

다른 하나는 2013년 들어선 박근혜 정부가 ‘행복주택'과 ‘뉴스테이’로 대표되는 임대주택 정책을 펼치며, 전 정부의 주택 정책을 조기 종료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목표했던 보금자리주택 32만가구 중 실제 공급된 것은 21만가구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제가 실패했던 원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사전청약권을 ‘차질없이' 나눠주는 것 자체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실제 분양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서 "현 정부의 임기가 고작 1년 남짓 남았고, LH 사태로 신도시 사업이 ‘시계 제로’ 상황에 접어든 만큼 보금자리주택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이번 사태로 LH를 비롯한 공공의 신뢰가 실추하면서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인 2·4대책은 실현 가능성이 더 떨어졌다"면서 "3기 신도시가 최후의 주택 공급정책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급하게 사전청약을 진행하기보다는 개발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물량 늘리기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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