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멈춤법 급물살에.. 자영업자는 "서둘러달라" 건물주는 "절반 깎으면 우리도 망해"
여당이 내놓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이른바 ‘임대료 멈춤법’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자영업자들과 임대인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급증세로 집합 제한·집합 금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계에 직면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임대료 부담을 호소하며 "법안을 조속히 시행해 달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반면 임대인들은 임대료 인하를 강제화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부와 여당이 ‘나쁜 임대인(건물주)’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여럿 있다.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고, 월세 수익이 끊기면 생활이 곤란해지는 ‘생계형 임대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 개정 자체만으로 상가 거래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지적됐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1조(차임 등의 증감청구권)에 '감염병 피해에 따른 차임(借賃·임대료) 특례'를 신설해, 코로나로 영업 제한 시, 임대인은 집합금지 업종에 임대료를 청구할 수 없고 집합제한 업종에는 2분의 1 이상 청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린다"고 했다.
◇ 고통 호소하는 자영업자 "임대료 부담 커"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임차인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오후 6시 30분 경기 고양시 행신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50) 씨는 텅 빈 가게에 혼자 앉아있었다. A 씨는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없는걸 보던 아르바이트생이 자진해 ‘한 일주일 쉴까요?’라고 말을 하길래 그래 주면 좋겠다고 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어제는 저녁에 한 그릇밖에 못 팔았고, 오늘도 한창 저녁식사 때인데 아직 손님이 하나도 없다"면서 "십수년 간 장사를 했지만 폐업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힘든 겨울은 처음"이라고 했다.
여당에서 추진 중인 공정임대료에 대해 그는 "을(乙)인 세입자들이 차마 먼저 꺼내지 못하는 임대료 인하 이야기를 정부에서 추진해준다니 굉장히 반가운 일"이라면서 "어려울 때 모두가 함께 고통분담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같은 시각 서울 성동구 왕십리 상가 1층에 있는 호프집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해에는 사계절 내내 대기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가게인데, 퇴근 시간 손님은 없고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만 있었다. 지난해 11월 이 가게를 인수한 사장 김 모(56)씨가 내야 하는 월 임대료는 450만원(부가세 제외). 코로나19 사태로 지역 상인회에서 지난 여름 ‘착한임대인 운동’을 벌이면서 월세를 100만원씩 3개월간 깎아줬지만, 최근 코로나 확산세로 매출이 감소하면서 임대료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김씨는 "오늘 손님이 한명도 없었고 저녁 9시 이후 영업이 중단되면서 지난 2~3개월보다도 매출이 더 줄었다"면서 "어떻게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얘기를 해야할지 고민인데, 임대료 멈춤법이 조속히 시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임대료 멈춤법이 되려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영업정지 명령을 내려놓고, 손실보전은 임대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회원 수가 6만8000여명으로 자영업자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온라인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의 한 회원은 "국가가 영업정지를 했으니 국가가 직접 손실보전을 해야 한다"며 "국가가 임대인 뒤에 숨어버리는 꼴이다. 평소보다 더 벌면 임대료를 더 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임대차3법 이후 아파트 전세난이 심화하고 전셋값이 오른 것처럼 또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회원은 "이 법이 통과하면 관리비가 오르거나 고위험 업종에 대해서는 세 자체를 안주려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런 법에 찬성하면 그 피해가 국민에 되돌아올 수도 있다"며 "이번 주택가격 급등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 건물주 "절반은 과도… 합작회사냐"
반면 건물주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힘들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부와 여당이 ‘나쁜 임대인’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대구 수성구에 3층짜리 상가건물을 소유한 류 모(56)씨는 "임대업자들도 은행 대출이나 전세보증금 등을 안고 갚아야 하는데 임대료까지 깎이면 이중고에 처하는 셈"이라며 "한쪽으로만 몰아붙이니 임대인은 임차인의 고통까지 다 짊어지는 꼴이 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그는 "임대료를 50% 깎도록 하면 임대인도 같이 망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면서 "건물주들도 마음은 깎아주고 싶지만 내 고통이 두 배가 되니 선뜻 나설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임대료를 절반 이하로 받아야 한다’고 규정짓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크다. 임대료 삭감 범위가 과도하다는 주장인 셈.
PC방과 미용실, 의료기관, 카페 등에 임차 중인 서울 종로구 7층짜리 상가건물 주인 권 모(69)씨는 "임대인도 세금, 건물 관리·청소 인건비 등 고정비가 있다"며 "고통을 함께 이해하고 분담하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임대료를 받지 말라, 절반 이하로 하라’라고 법으로 강제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코로나 타격을 감안해서 임차인들에게 업종별로 구분해 임대료를 20% 이상 삭감해주고 있다"면서 "임대인의 책임 분담 범위는 20% 정도가 적정 수준이라고 본다. 정부와 임대인, 임차인이 합작회사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임대료 멈춤법을 시행하면 건물 관리에 드는 인력을 감축하거나 우량 임차인만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익률이 악화하면 경비원, 청소부 등 고용 인력을 줄이거나 이들의 근무 시간을 단축해 지출을 줄일 생각부터 하게 된다’는 얘기도 나왔기 때문이다. 권 씨는 "이런 법이 상가 임대차 계약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소지가 클뿐더러, 정부가 보호하겠다는 사회적 약자에게 또 다른 피해가 갈 수 있다"고 했다.
임대료를 인하할 경우 임대인의 손실 보전이나 인센티브도 필요하다는 게 임대인들의 주장이다. 대구 수성구 건물주 류 씨는 "임대인에게도 코로나가 힘든 것은 매한가지인 만큼 정부에서 세제 혜택을 주거나 임차인에게 인하하는 임대료를 절반 정도 정부가 부담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면서 "그렇다면 호응하는 건물주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재산권 과도하게 침해… 함께 버티자는 구조 돼야"
전문가들은 임대료 멈춤법이 시행될 경우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으며, 월세 수익이 끊기면 생활이 곤란해지는 ‘생계형 임대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임대인들이 전부 부자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상당수는 임대료를 겨우 받아 생활하는 생활형 임대인"이라면서 "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 역시 일반인들의 자금을 펀드나 리츠로 받아 투자하는 것이어서 결국 그 피해가 서민들에게도 상당수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 시국에 임대료 통제를 고려할 순 있지만,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이 아닌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 등을 균형있게 주면서 함께 버텨보자는 식으로 다가가야 한다"면서 "고통을 일방에게 강요하기만 한다면 재산권을 뺏는 국가라는 불신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법이 생기는 것만으로 상가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상가 투자를 앞둔 사람들은 임대료가 낮아지면 수익률도 악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할 것"이라며 "이전처럼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상가 공급 물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법을 현장에 적용하려면 여러 보완책이 함께 필요하다"면서 "임대인에 대해서도 기준에 따라 차등을 둘 필요가 있고, 임대차 계약 변경과 임대료 원상 회복에 따른 갈등 및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황에 다시 뜨는 2만원대 뷔페… 몸집 키우는 ‘애슐리퀸즈’
- 잘 나가는 中 전기차 BYD 가격 대폭 할인… 막대한 채무 부각
- [르포] “제2의 송도라더니”… 일산 풍동 ‘더샵 브랜드 타운’ 입주 코 앞인데 흙먼지만
- 알츠하이머병 정복 한 걸음 더…문제 단백질 미리 막아
- [Why] 트럼프가 하버드 공격하는 진짜 이유
- [비즈차이나] 인형으로 시총 50兆 달성… ‘라부부’ 붐 일으킨 팝마트
- [우리 연구실 찰스]③ “외국인 과제 참여 막고, 월급은 자체 해결하라니”
- [재테크 레시피] 해외 결제·외화 송금·환테크의 모든 것… 수수료 낮추는 비법은
- [연금의 고수] 가족연금을 아세요? 63세부터 월 2만원씩 받을 수 있다
- 잡음 이는 軍 무인차 사업… 한화에어로 vs 현대로템 갈등 증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