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부자'들의 城이 돼 가는 강남 [여기는 논설실]

송종현 2020. 7. 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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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세 폭탄' 맞은 강남권 단지
"내년엔 못 버틴다" 은퇴자 많아
상반기 강남 쇼핑한 지방부자들
내년까지 나오는 매물 담아갈 듯


7‧10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서 지난 주말(25일) 강남권 부동산 중개업소 세 곳을 돌아봤습니다. 매매시장의 경우 한 동안 뜨거웠던 분위기가 한 풀 꺾인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가격하락이 엿보이는 것은 아니고, 전반적으로 관망세가 짙어지는 추세였습니다. “7‧10 대책이 워낙 강력해 시장이 당분간 소강상태를 보일 것”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중론이었습니다. 다만 “22번의 대책으로 시장이 워낙 왜곡돼 일정 기간 휴지기가 지나면 또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내년에 급격히 오를 보유세에 대한 다주택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세금폭탄으로 다주택자 소유 매물을 토해내도록 하겠다’는 게 7‧10 대책의 목표였던 만큼 이번에는 정부 의도가 먹혀들지 관심이 컸기 때문입니다.
 

 직업 유무 따라 대응 엇갈릴 듯

보유세를 대폭 인상하는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올해는 이미 내야할 보유세 규모가 확정된 상황입니다. 2021년 보유세 규모가 확정되는 내년 6월1일까지는 시간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그런 만큼 세금 인상에 대비해 벌써부터 집을 내놓는 다주택자들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증여를 계획하고 있던 다주택자들은 서두르는 분위기입니다. 정부가 매각 대신 증여를 택하는 다주택자들을 겨냥해 증여 취득세를 올리기로 방침을 정한 만큼 그 전에 증여를 마무리 짓겠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3분기 증여 건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한 2분기(1만8696건)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그렇다면 증여계획이 없는 다주택자들은 어떨까요. 아직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은퇴자들의 계획이 다르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세무업계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집을 강남권에 2채만 보유해도 내년에 내야할 보유세는 1억원이 넘을 전망입니다. 현직에서 왕성하게 수입을 올리고 있는 4050 다주택자들은 내년까지도 버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보유세를 내기 위해 한 달에 수백만원을 저축하며 ‘허리띠’를 졸라맬 태세입니다.
 
문제는 직업이 없는 60대 이상 은퇴자들입니다. 이들은 월세 수입과 자식에게 증여까지 고려해 늘어난 보유세 부담에도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매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서울 반포에서 영업중인 A대표는 “노후자금이 충분히 쌓여있는 은퇴자들도 상당수가 내년에는 보유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며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 중 이들이 보유한 매물들이 하나, 둘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못 버틴 매물, 지방부자들 차지될까

이미 강남은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의 여파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어 현금부자들이 아니면 진입할 수 없는 시장이 돼 버렸습니다. 7‧10 대책의 영향으로 취득세와 보유세가 대폭 오르게 된 만큼 이런 경향은 내년 상반기까지 더욱 심화될 것이란 게 현장의 시각입니다.
 
서울 대치동에서 만난 B대표는 “매도를 검토 중인 은퇴자들은 가격을 낮출 생각이 없고, 매수 희망자들은 현금을 쌓아두고 값싼 매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수십년간 강남에 거주해 온 토박이들이 밀려나고, 진짜 부자들과 그 자녀들을 중심으로 집주인들이 물갈이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런 매물을 사갈 1순위 주체로는 지방의 현금부자들이 꼽히고 있지요.
 
지방 부자들은 올해 상반기에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기간을 피하기 위해 나온 매물들을 잡기 위해 한 차례 움직였던 바 있습니다. 지난달 강남구 아파트를 구매한 서울 이외 지역 거주자 비율이 한국감정원의 통계집계 시작 후 최대인 31.1%로 집계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한 번 더 재연될 것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예상입니다.
 

 중국 부자들도 매입 후보?

일각에서는 ‘헥시트’(홍콩 탈출)에 나서는 홍콩 자본을 포함해 중국계 자본의 강남 아파트 매입이 늘어날 것이란 반응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관측에 대해서는 아직 갸우뚱하는 중개업자들이 많습니다.
 
서초구에서 영업하는 C대표는 “최근 홍콩 부자들이 반포 아파트를 매입한 사례가 화제가 됐지만, 그런 움직임이 일선 중개업자들이 체감할 정도로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홍콩 부자들이 런던, 서울 등 홍콩보다 집값이 싼 세계적 도시들의 집값에 부담을 덜 느껴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게 홍콩 현지 금융권이나 학계 종사자들의 전언입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K팝 등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글로벌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형성된 게 매력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홍콩 매수자들이 영국 부동산 시장을 부양시키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홍콩인들이 홍콩에 비해 훨씬 싼 영국 부동산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3.3㎡당 가격이 1억을 돌파했거나, 1억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강남 집값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남에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부자들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초반 입주해 지금까지 한 자리에 살고 있는 노인들도 많지요. 하지만 이들이 수십년을 살아왔던 보금자리를 더 이상 지키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고 저축하면 강남에 입성할 수 있었던 시절은 이제 ‘전설’로 남아버리게 되는 걸까요. 그저 씁쓸할 따름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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