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 원하는데 서울 주택 공급은 '임대'..또 엇박자
수요 반영 못한 공급위한 공급
전문가 "재건축 규제 풀어야"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이 “공급 물량 확대”를 당부하기 전까지 정부는 공급물량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에 부정적이었다. 공급량은 충분하다고 자신해서다. 문 대통령이 공급 지시에 앞서 “정부가 상당한 물량의 공급을 했지만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한 이유다. 77만 가구가 근거다. 지금까지 정부가 확보했다는 수도권 일대 공공택지의 아파트 물량이다.
77만 가구를 살펴보면 2018년 9월에 발표한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계획이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는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등 3기 신도시 5곳을 포함해 수도권 일대 86곳에 3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여기에 지난 5월에 추가로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서울 8만 가구), 주거복지로드맵 등에 따른 물량 등을 포함하면 이번 정부 들어 43만2000가구의 공급 계획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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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1만가구 공급, 대다수가 임대주택
나머지는 2기 신도시 남은 물량 및 LH와 SH 그리고 지자체별로 기존에 추진하고 있던 물량이다. 그러나 77만 가구의 정확한 내역은 오리무중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마저 “집계 중”이다. 국토부 측은 “현 정부 들어 새로 발표한 곳이 아니라, 기존에 추진했지만 준공이 안 된 수도권 공공택지 270여곳까지 포함한 것"이라며 "지방공사 등을 통해 사업별 진척 상황을 취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에서 언급한 77만 가구라는 공급 물량의 현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셈이다.
그나마 공급 물량으로 확정할 수 있는 곳도 수요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 물량 11만 가구가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 집값이 폭등한 배경에는 직주근접, 교육 등을 이유로 서울에 살기를 원하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하지만 유휴부지 및 자투리땅을 개발해 공급하겠다는 물량의 상당수는 행복주택, 즉 임대 물량이다. 지구계획 지정 등 관련 절차가 초기 단계여서 임대 비중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사업의 성격 자체가 임대 위주다.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실수요자와 공급 물량이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신혼부부 특화형 공공주택인 신혼희망타운에서 나오는 분양 물량도 있지만, 청약 자격 조건이 제한적이다. 지난 5월 미니 신도시급인 용산 정비창 재개발 계획(8000가구)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절반가량이 임대 주택으로 공급될 전망이다.
서울의 경우 사업 진척 상황도 더디다. 유휴부지를 활용하는 것 외에 사유지에 각종 인센티브를 줘서 공급물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토지주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추진하지 않으면 정부가 내세운 주택 공급 목표량을 채울 수 없는 구조다. 최근 박원순 시장이 “역세권 부지를 직접 매입해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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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 확대 지시에 가점제 실수요자들 발동동
생애 최초 특별공급 물량을 확대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도 여론이 들끓고 있다. 기존에 가점제로 일반 분양을 기다리던 실수요자들은 되려 청약 기회를 박탈당할까 봐 우려하고 있다. 국토부가 공공분양되는 중소형 주택의 경우 일반공급 없이 전량을 특별공급으로 분양할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생애 최초 특별공급의 경우 올해 3인 가구 기준 563만원 이하(세전)의 소득이 있어야 신청할 수 있다.
박 모(37) 씨는 12년간 무주택자로 청약통장을 꼬박 부으며, 그나마 분양가가 낮은 공공 분양을 통해 집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경기도 과천 지식정보타운의 민간 분양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박씨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공공분양택지에서 20%밖에 안 되는 일반 분양 물량마저 사라질까 봐 두렵다”며 “월 소득만 높은 맞벌이 흙수저들은 평생 무주택자로 살란 말이냐. 손대면 또 역차별받는 사람이 생기니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발굴해서라도 공급하라”고 대통령이 지시에 국토부는 추가 공급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 일대에 미니 신도시급 추가 공급이 거론되고 있지만, 3기 신도시도 첫 삽을 뜨지 않은 상황이다.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집값을 자극한다는 우려도 크다. 서울의 경우 박원순 시장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지 않겠다”고 못 박은 상태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 도시연구실장은 “최근 5년간 준공된 아파트 중 재개발ㆍ재건축을 통해 나온 물량이 73%에 달한다”며 “그린벨트를 풀지 않는 한 재개발ㆍ재건축을 통해 공급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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