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사는 내가 투기꾼이냐?" 6·17 잔금대출 논란

이택현 기자 2020. 7. 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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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를 써서라도 입주할 겁니다. 계약금 날리면 갈 곳이 없어서 쪽방이라도 알아봐야 해요”

6·17부동산대책 이후 규제지역으로 추가 지정된 지역 주민들이 갑자기 강화된 대출규제에 대한 어려움을 계속 호소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해바라기 광장에서 열린 ‘6·17부동산대책 규제 소급적용 철회 촉구 집회’에는 인천과 수원, 시흥, 평택 등 수도권 전역에서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인터넷 카페와 단체카톡방을 중심으로 공동행동에 나선 이들은 실시간 검색어 등록 운동 등 인터넷 공간에서의 저항 끝에 이날 거리로 나섰다.

수원 광교에 사는 신모씨도 남편과 함께 집회장소를 찾았다. 신씨는 국민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동안 돈을 모아 내년 2월 입주하는 수원역 푸르지오 자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하지만 정부 6·17 대책으로 수원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격상되면서 잔금 마련이 어려워진 바람에 사채까지 고려하고 있다. 신씨는 “국민임대주택에서 살려면 소득이 맞벌이 기준으로 415만원 이하여야 하는데 입주 반년 남기고 1억원을 더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라며 “결국 계약금 수천만원을 날릴 수도 있다는 얘긴데 몇 년에 걸쳐 모은 돈이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6·17부동산대책이 사실상 수도권 전역을 규제지역에 편입하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기준으로 자금 계획을 세웠던 사람들이 졸지에 훨씬 많은 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그동안 아파트 수분양자는 규제를 소급 적용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만 자금대출 규제를 소급적용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규제지역 신규 지정에 따른 중도금대출 등 집단대출에 대한 LTV 적용 기준은 그동안 일관되게 운영됐고 6·17 대책에서도 기존과 같은 기준으로 적용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도 규제지역이 추가될 때마다 같은 어려움에 처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규제지역이 조정대상지역 혹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거나 조정대상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격상되는 등 추가 규제 대상이 유례없이 늘어나면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어느 때보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얼마나 많은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30대 프리랜서 강모씨는 가족들과 함께 집회 현장을 찾았다. 무주택자인 강씨는 다음 달 입주 예정인 인천 송도 랜드마크시티 센트럴 더샵 분양권을 샀다. 프리미엄까지 포함해 수천만원을 지불한 상태이지만 이 지역이 비규제지역에서 단숨에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자금부담이 급격히 커지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금융권에서 얼마까지 대출할 수 있는지 확답을 주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강씨는 “금융위에 전화하면 100번해야 한번 통화되는데 연락되면 은행에서 물어보라고 하고, 은행에 전화하면 아직 지침을 못 받았다고 한다”며 “정부에서 지침을 정해줘야 하는데 다들 발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조건과 상황이 다른 수도권 전역을 한순간에 규제하다 보니 신혼부부나 임대주택 거주자, 무주택자 등 정부가 보호하겠다고 나선 주거약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한 사례도 많았다. 재산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함께 내 집 마련을 꿈꿨던 이들일수록 이번 대책으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한 참가자는 “투기세력 잡겠다면서 정치인들은 다 강남에 살고 서민들을 투기세력으로 모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30대 남성은 1년6개월 후 입주하기로 한 인천 영종도 아파트가 조정대상지역에 묶이면서 소급 규제 철회를 주장하다가 집회를 주도하게 됐다. 그는 “6·17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 묶으면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투기꾼이 돼버렸다”며 “인생을 건 문제(내 집 마련)를 이렇게 처리하는 정부를 누가 신뢰하겠나. 부동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고 말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정부가 대출조건 소급 적용을 철회하지 않는 한 집회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곧 공식 운영진을 출범하고 1인 시위도 병행하기로 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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