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90%' 은마 두얼굴..최근 2년 매수자 72%는 무주택자
집값 요동 때마다, 정부 대책 때마다
주목받는 재건축 대장주 은마
전체 5%인 220여가구 등기부등본 떼보니
“졸지에 투기꾼이 돼버렸다.” 50대 지인의 토로다. 그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3년 전 구입해 갖고 있다.
“새로 지은 은마에 살고 싶었다. 사업이 진척되면 몇 년 내에 철거해 재건축 공사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어떻게 거주할 생각이 들었겠나. 어차피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르면 준공할 때까지 팔 지도 못한다((재건축 조합원 명의 변경 금지).”
은마가 6·17부동산대책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빨려들어갔다. 정부가 2년 이상 거주하지 않으면 조합원 새 아파트 분양 자격(입주권)을 주지 않기로 한 1호 대상이 될 수 있다(정부는 내년 이후 조합 설립을 신청하는 재건축 단지부터 적용키로 했고, 은마는 그 이전 추진위 구성 단계다).
은마가 속한 대치동 등 강남권 4개 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주택거래 허가를 받아야 사고 팔 수 있다. 2년 이상 거주 목적이어야 허가받을 수 있다. 대지(대지지분) 18㎡ 초과면 토지거래허가 대상인데 은마는 최소 48.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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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회전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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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지어진 4424가구(전용 76, 84㎡)의 은마는 강남 요지의 입지여건과 매머드급 규모 덕에 재건축 대장주로 불렸다. 집값을 주도하는 재건축 단지의 선두에 있다 보니 정부 규제의 주요 타깃이 됐다. 현재 시가 총액이 8조8000억원 정도다(가구당 20억원).
은마가 투기의 온상일까. 전체의 5%인 224가구의 등기부등본을 들여다봤다. 정부가 투기로 보는 '갭투자'와 강남 현금부자 무주택자의 새 집 마련이란 두 얼굴이 나타났다.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은마는 최근 2017~19년 3년간 668건이 거래돼 연평균 5%의 거래회전율을 나타냈다. 같은 동에 있는 일반 아파트인 래미안대치팰리스의 같은 기간 회전율이 5.4%로 은마보다 더 높다.
2017~19년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가 26만1370건으로 연평균 8만7124건이다. 이 기간 서울 아파트 재고 물량이 평균 166만가구로 1년에 20가구 중 한 가구(5.2%)가 팔렸다. 은마가 다른 아파트보다 거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집값이 요동칠 때마다 은마가 주목받는 바람에 거래가 몰린다는 착시를 준 셈이다.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은마 아파트 거래건수가 2622건이다. 같은 집이 두 차례 이상 팔린 적도 있겠지만 대략 15년 동안 전체의 절반 정도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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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보유 21%
224가구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집들의 평균 매매 회수가 2.3회다. 40년간 2.3회면 평균 10년 이상 보유했다는 말이다. 매매거래된 201가구 중 매매 시기가 2000년 이전으로 20년 넘게 보유한 집이 43가구로 21.4%다. 단지 전체로 추정하면 1000가구 가량이다. 15년 넘는 보유기간은 40%였다.
20년 전인 2000년 들어서부터 재건축을 추진했기 때문에 재건축 기대감으로 장기 보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유자 연령은 평균 58세로 나타났다. 30대는 4%다.
매수자의 주소를 확인한 결과 절반 가량(57%)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거주자다. 강남3구 매수자 5명 중 4명이 은마가 속한 강남구다. 같은 은마 단지 내에서 매수한 경우도 적지 않다. 전체 매매거래 10건 중 하나인 10%를 차지한다. 같은 단지 거주자가 재건축 진척과 가격 동향에 가장 빠르기 때문으로 업계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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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원정투자' 8%
지방에서 ‘원정 투자’한 경우는 8% 정도다. 201건 중 16건이다.
절반 정도가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눈 공동소유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224가중 122가구다. 2017년 이후 공동소유가 많다. 44가구 중 70%인 31가구다.
현 정부 들어 양도세종부세 등이 강화되면서 지분을 나누는 공동소유가 절세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증여도 눈에 띈다. 등기부등본 상 2018~19년 거래된 26건 중 23%인 6건이 증여였다. 현 정부 들어 다주택자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 증가, 양도세 중과 등으로 다주택자의 주택 수 ‘쪼개기’가 늘면서 증여가 급증했다. 2017년까지 연간 2000건 안팎 이하이던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증여 건수가 2018년 5000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도 3100여건이었다.
이번 대책이 규제의 사각지대로 꼽은 법인 매수도 보였다. 지난해 매매된 76㎡ 6건 중 1건의 매수자가 2018년 9월 설립된 비주거용 건물 개발 및 공급업으로 분류된 법인이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재건축 새 아파트 분양 자격에서 법인을 제외하기로 했다. 법인은 양도세종부세 등 세제가 강화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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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후 ‘갭투자’ 90%
매매 거래 대부분 임대보증금을 승계 받아 매입한 ‘갭투자’로 나타났다. 2017년 이후 매매거래된 44건 중 매수자가 들어가 사는 집은 5가구로 11.4%다. 주인 주소가 매수한 은마와 같은 경우다. 주인 주소가 다른 갭투자가 88.6%다. 작은 76㎡의 갭투자(91.7%)가 84㎡(85%)보다 많다. 정부가 지난 6·17대책 때 발표한 올해 강남4구(강동구 포함) 갭투자 비율 60%대보다 훨씬 높다.
전체 등기부등본 224가구에서 주인이 거주하고 있는 비율은 26.8%(60가구)다. 3000가구 정도가 세입자다. 주인이 거주하는 가구의 절반(26가구)은 2000년 이전 거래된 집이다. 지은지 시간이 지나 집이 낡아졌고 재건축이 추진되면서 갭투자 비율이 올라갔다.
소유자 거주지로 해외도 있다. 국적을 외국으로 바꾼 사례도 나온다. 재건축 분양 자격을 갖추기 위해 국내로 들어와 은마에서 2년 이상 거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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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자 거래 72%
2017년 이후 매매거래된 37건 중 무주택자 거래가 23건으로 72%였다. 내집 마련인 셈이다. 매수인 주소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주인이 다른 사람이면 무주택자로 봤다. 은마를 매수한 뒤 기존 집을 처분해 갈아타기로 추정되는 경우가 6건(19%)이었고 다른 집을 갖고 있어 2주택 이상인 사례가 3건(9%)였다. 종부세 강화 등으로 다주택자의 추가 주택 구입 메리트가 떨어졌고 고가여서 주택을 늘리기 부담스럽기도 하다.
은마는 갭투자하더라도 임대보증금이 상대적으로 적어 비용 부담이 크다. 낡은 단지여서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25~30%로 낮다. 76㎡ 시세가 19억원인데 전셋값은 5억원대다. 강남구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50% 정도다.
은마를 구입하려면 대출 한도(LTV 40%)까지 대출을 받더라도 매매가격의 60%를 현금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무주택자의 경우 본인이 거주하는 집의 전세보증금 외에 이만큼의 여윳돈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12·16대책 이후 15억원 넘는 초고가 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이 아예 금지되면서 갭투자 비용이 매맷값의 70%로 올라갔다. 지난 3월 부산에 사는 50대가 19억3300만원에 76㎡를 구입했다. 이 주택의 전세보증금을 확인할 수 없지만 평균 전세보증금(5억원)이라면 15억원가량을 현금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은마 거래가 사실상 막혔다. 재건축 분양 자격을 갖추기 위한 집주인3000가구의 대규모 입주 혼란을 막으려면 사업을 서둘러 올해 안에 조합 설립 인가 신청을 해야 한다. 조합 설립 신청에 주민 75% 동의가 필요하다. 3318가구다. 대규모 조합원 분양자격 탈락 위기에서 은마가 사업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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