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강조 정부 모순 "종부세·부담금은 왜 거주혜택 없나"

안장원 2020. 6. 27.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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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의 부동산노트]
무주택자 갭투자도 투기
확대되는 '2년 거주' 요건
종부세·재건축부담금 어떡하나
거주 의무 없는 '정치 투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잠실 일대. '2년 이상 거주' 목적이 아니면 현금부자도 집을 살 수 없다.

지난 6·17부동산대책은 김현미 국토부장관 주택정책의 결정판이다.

김 장관은 3년 전인 2017년 6월 23일 취임하며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고 말했다. 보호할 ‘실수요’와 시장을 어지럽히는 ‘투기’의 선을 긋고 투기와 전쟁을 시작했다. 그해 8·2대책이 겨냥한 투기가 '다주택자'였다.

지난 3년 간 규제 틈새와 사각지대 등에서 되살아나는 집값 과열과 싸우며 전선을 확대했다. 투기 범위가 보증금을 이어받아 나중에 들어가는 ‘사놓기’ 무주택자로까지 넓어졌다. 매수 시점에서 입주 시점까지 가격 상승을 기대한 투기로 보는 것이다. 무주택 여부나 보유 주택수에 상관 없이 전세를 끼고 사는 모든 '갭투자'가 투기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2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무주택자가 전세자금을 이용해 갭투자하는 비율이 통계로 43% 정도”라고 말했다.


다주택자→갭투자

그만큼 실수요 범위가 좁아졌다. 이번 대책을 통해 정리된 실수요 뉴노멀이 ‘2년 거주’다. 정부가 투기에서 제외한 ‘성역’이다.

정부는 2018년 9·13대책에서 9억원 초과 1세대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최대 80%) 혜택을 2년 이상 거주자로 제한했다. 이전에는 거주기간이 필요 없었다. 지난해 12·16대책은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의 해당지역 우선공급 자격을 1년에서 2년으로 강화했다.

정부는 이번에 재건축 조합원 분양 자격에도 2년 이상 거주 요건을 담았다. 2년 이상 살아야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싸게 보상받고 나가야 한다. 거주를 강조한 잇단 대책에서도 재건축은 그동안 무풍지대였던 셈이다.

거주 요건 방침에 따라 법인은 재건축 분양 자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법인은 사람이 아니어서 거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12·16대책에서도 건드리지 못한 현금부자를 정조준한 이번 대책이 토지거래허가제다. 아무리 강력한 대출 규제도 현금부자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토지거래허가제로 거주할 생각이 없는 현금부자를 제한할 수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주택을 사려면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2년 거주 의무로 현금부자의 갭투자를 원천차단했다.

자료: 국토부

토지거래허가제는 정부가 아껴둔 대책 ‘카드’다. 사실상 모든 부동산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장치다. 과거 노무현 정부부터 주로 신규 개발지 주변에서 토지 거래 위주로 규제하던 제도를 서울 강남 아파트 촌 한복판에 적용했다. 노무현 정부가 꺼내려다 포기한 주택거래허가제를 우회적으로 살린 것이다.


사실상 주택거래허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등 규제지역보다 훨씬 강도가 센 반면 지정이 어렵지 않다. 집값 상승률 등과 같은 정략적인 요건이 필요없다. “토지의 투기적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의 급등 또는 그러한 우려가 있는 지역” 가운데 “국토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투기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지역”이면 된다.

'2년 거주’는 양도세 비과세에서 유래했다.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요건으로 ‘2년 이상 거주’가 2000년대 초반 집값이 뛰던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등장했다. 3주택 이상 보유자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도입하면서 1주택자 비과세 요건을 강화해 1년 이상 이던 거주 요건을 2년으로 늘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년 거주 요건이 없어졌다가 2017년 8·2대책때 부활했다.

현재 가장 긴 거주 의무 기간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80% 미만인 공공주택 5년이다.

실수요 기준이 2년 거주로 깐깐해진 대신 실수요에 대해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에 부과되는 종부세다. 현재 1가구 1주택자에 고령자·장기보유 특별공제(최대 70%)가 있지만 거주에 따른 혜택이 없다. 고령자는 60세 이상이고, 장기보유는 거주 상관없이 5년 이상 보유하기만 하면 된다. 1세대 1주택 거주자 '장기거주' 특별공제를 주장할 수 있다.

‘2년 거주’ 분양 자격 규제를 받게 된 재건축에선 거주자의 재건축부담금 완화가 '당근'이 될 수 있다. 재건축부담금은 재건축 사업기간(추진위~준공) 동안 해당 지역 평균 상승률보다 높은 집값 상승(초과이익)에 부과되는 금액이다. 보유기간이나 거주기간에 상관없이 부담금이 동일하다. 거주하다 재건축한 경우나 재건축을 기대한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경우나 재건축부담금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궤도에 오른 마포구 성산시영. 재건축부담금 대상 단지로, 앞으로 거주자에 부담금 감면 혜택이 있을지 주목된다.

부담금 산정 기간 동안 거주한 조합원엔 부담금 감면 주장이 설득력을 띨 수 있다. 추진위~준공이 10년 넘으면 준공 시점에서 역산한 10년이 부담금 계산 기간이다.


거주 의무 없는 국회의윈

‘2년 거주’ 불똥이 정치권으로 튈 수는 없을까. 현행 선거법상 대통령은 5년 이상,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은 60일 이상의 거주 요건이 있지만 지역에서 뽑는 지역구 국회의원은 없다. 1994년 만들어진 공직선거법도 그렇고 공직선거법이 만들어지면서 없어진 이전 국회의원선거법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 의원들이 자신의 목에 스스로 방울을 달겠느냐는 말이 들린다.

지역 거주 의무가 없다 보니 선거 전에 주소를 옮기지 못해 자신을 찍지 못하기도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집값이 많이 오르는 서울에 집을 사두고 본인 지역구엔 전세로 사는 경우도 있다. 주택 매수와 보유 등에 따른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은 본인 지역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내는 것이어서 다른 지역 살림살이를 보태는 셈이다.

거주 없는 주택 보유가 부동산 투기라면 거주 의무가 없는 지역구 국회의원은 ‘정치 투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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