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연구원 수장들의 고언 ②] "침 놔야 하는 곳에 몽둥이 들이대선 안된다"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이젠 정부 대책도 지극히 마이크로하게 가져가야 한다. 침을 놓아야 하는 곳에 몽둥이 대면 망한다.”
이규방<사진> 전 국토연구원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20일 헤럴드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주택시장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소신껏 이야기했다. 비유를 군데군데 사용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이 사람 저 사람 홍수에 떠내려가는 꼴”, “융단폭격식 대책”이라고 일갈했다. 2002년 12월~2005년 4월까지 10대 국토연구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코람코자산신탁 고문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이 전 원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정부가 부동산 시장 과열 잡겠다고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투기과열지구도 언급된다.
▶투기과열지구는 회의적으로 본다. 그건 큰 대책인데, 지금 시장에는 큰 대책보다는 정밀한 외과수술식 대책이 어울린다. 문제되는 부위만 찾아서 진정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그널이 발생한다면 다른 지역의 잠재적인 문제들도 스스로 가라앉을 수 있다. 이미 최근 강남에서 시장이 주춤하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나. 어나운스먼트 이펙트(announcement effectㆍ공표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투기수요자들에겐 이런 게 민감하다.
-외과수술식 대책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가장 중요한 건 줄 사람에겐 주면서 투기 여지를 없앨 수 있게 대출심사기능을 마이크로하게 가져가야 한다. 침을 놓아야 하는 곳에 몽둥이를 대면 안된다. 침을 놓으려면 상당한 일손이 필요하다.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대책을 해야 한다는 거다. 예컨대 집단대출이나 보금자리론 등의 대출심사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투기꾼 의심이 들면 대출 끊어야 한다.
우리나라 투기수요는 머리가 좋다. 특정상품에 집중적이고 세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나라님이 말씀하시니 알아듣겠지’ 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주택시장이 양극화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
▶전국적인 주택 부족은 해결됐기에 이젠 지역별 차별화가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주택정책은 전국단위가 필요 없다. 지방정부가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방정부는 자기네 시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지금은 서울시만 그렇게 하고 있다. 최소한 수도권 지자체들은 그런 역량 가져야 한다. 중앙정부는 저소득층 정책, 임대주택 정책 등을 하고 지방 흔들지 말아야 한다. 가격동향에 따른 대응은 지자체가 해야 하면 된다. 미국, 캐나다는 이미 지방정부가 하고 있다. ‘주택정책의 분권화’다.
-정부는 가계부채도 잡고 싶어 한다. 주택담보대출, 집단대출 옥죄고 있는데.
▶보금자리론의 총량이 찼다고 해서 대출 대상을 축소하는 건 무식한 처사다. 과연 투기 목적이 있는 사람들을 진작에 골라냈느냐. 아니다. 우리 금융기관의 심사분석기능이 형편없다. 중앙정부의 수치만 가지고 판단하니까 진짜 필요한 사람은 피해를 본다. 그러니까 보금자리론 축소하면 이사람 저사람 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꼴이 되는 거다. 개별 심사기능을 제대로 해서 투기꾼 걸러낼 생각을 해야 한다. 집단대출도 과거엔 무조건 오케이였다가 이제와서 갑자기 끊으면 어떡하나. 그거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심사 확실히 해서 투기꾼만 걸러내면 될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기가 힘드니까 안했던 거다.
-2~3년 뒤에 공급과잉 폭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급 많다는 건) 건설사들도 다 아는데 왜 밀어냈을까. 정부가 미분양 대책을 만들어줄 것 아니겠느냐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젠 정부가 책임지면 안 된다. 공급자가 시장 상황을 면밀히 보고 책임지고 공급하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미분양이 넘치더라도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안 된다. 시장의 급격한 충격만 막으면 된다. 감기 환자가 폐렴으로 넘어가는 것만 막으면 되는 것이다. 주택소비 촉진한다고 부채 한도를 높여주거나 하면 다 망한다. 이래도 저래도 (미분양이) 안 팔린다면 그 만큼 아파트가 안 좋다는 뜻 아니겠냐. 그걸로 주택업체 망하면 어쩔 수 없다.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한다면.
▶C학점을 주겠다. 뉴스테이는 잘 했다고 본다. 다만 변화된 환경을 인식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정책의 세심함이 부족하다. 정부가 하나를 내놓으면 시장이 따라줄 것으로 알고 있다. 대책을 만드려면 변화된 환경을 잘 파악해고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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