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빚더미 40대 자영업자, 한국경제 가장 약한 고리
◆ B급국가 바이러스 ⑩ / 한국을 위기로 몰아가는 5大 리스크 ◆
◆ 저소득 자영업자 갈수록 급증
40대 초반인 이 모씨는 얼마 전 M피자 프랜차이즈 가게를 접었다. 가게를 운영하려면 계속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2008년 은행 대출 2억원을 포함해 모두 5억원을 들여 가게를 차렸다. 초기에는 월 매출이 6000만원에 달하는 등 수입이 짭짤했다. 덕분에 4년 만에 차입금을 거의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잘나가던 사업이 2013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본사가 '3년 재계약' 명목하에 6년차인 이씨 가게의 리뉴얼(가맹점 재단장)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재계약을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1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설상가상으로 고정비 성격의 임대료와 인건비도 계속 상승했다. 반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출은 줄어들었다. 올해 초 매출은 월 평균 3000만원으로 6년 새 '반 토막'이 났다. 그 사이 빚은 수억원으로 늘었다.
이씨 같은 40대 자영업자가 한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가계부채 고위험 집단을 가리키는 한계가구와 부실위험가구는 54만가구에 달한다. 직업별로 가장 많은 것이 자영업자(34.2%)였다. 연령대별로는 40대(38.5%)가 가장 위험성이 컸다.
◆ 구직난·주거비 상승 직격탄
20대는 최악의 구직난과 비정규직 인생으로, 30대는 치솟는 주거비 부담에 쓸 돈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가계의 월 평균 소비는 294만8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같았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소비는 0.9% 줄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소득에 대한 소비의 비율)은 70.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9월 기준 9.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청년실업률, 20대 신규 채용의 64%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비율로 인해 청년층은 소비를 위한 최소한의 여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금 폭등으로 인한 주거비 부담도 돈을 써야 할 20~30대의 소비를 억누르는 주요 요인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지형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이미 생애주기상 소비 비중이 가장 높은 40대 인구가 2011년 정점을 찍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9~64세)는 올해 3704만명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여력을 높이고 늘어난 소비여력이 저축이 아닌 소비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며 "미래 불확실성으로 냉각된 소비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은 지난 8월 20개월에 걸친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마치고 반짝 반등했지만 지난달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좀처럼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수출 감소율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3.9%)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해왔던 주력 수출산업의 부진이다. 석유화학 산업을 예로 들면 지난 30여 년간 '수출 효자' 품목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젠 그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화학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4%나 감소했다. 올해도 9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석유화학은 조선·해운·철강 등과 함께 정부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5대 취약업종' 중 하나로 추락했다. 국내 업체들은 세계 최대 석유화학 수입국인 중국을 바탕으로 성장했는데 중국 경기가 꺾이면서 수요가 줄고, 중국 업체의 자체 생산이 늘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한때 수익성 개선 요인이었던 저유가도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박정동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는 "대기업을 비롯해 한국 사회 모두가 기초기술 투자보다는 '빨리빨리' 외형성장을 이루는 데만 환호하면서 알맹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투자에 인색한 대기업
기업은 사내에 수조 원의 곳간을 쌓고, 가계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고 소비하는 나라. 'B급 국가 바이러스'로 뒤틀린 한국 경제의 자화상이다. 기업들이 성장잠재력에 직결되는 유·무형자산 투자를 줄이는 가운데 국내 10대 그룹은 수백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쌓고 있다. 글로벌 차원의 저성장 국면을 맞아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설명이다.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는 사내유보금은 실종된 기업가정신을 방증하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10대 그룹 상장사의 사내유보금은 사상 최대인 550조원으로 지난해 말 546조4000억원 대비 3조6000억원 늘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투자를 전년 동기 대비 28%나 줄였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 상반기 30대 그룹 267개 계열사의 유·무형자산 투자액은 총 28조613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조2535억원 줄었다. 특히 설비투자와 직결된 유형자산 투자액이 30% 이상 큰 폭 감소했다.
◆ 돈만 마구 푸는 정부
소비와 투자가 부진하자 정부는 정부 지출을 통해 이를 보완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 4년 중 3년은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됐다. 내년 정부예산은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는 '슈퍼 예산'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경기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 대응에서 정부의 재정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재정 조기집행→재정절벽 우려→추경편성→조기집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굳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지출이 그만큼의 효과를 내는가다. 정부의 심층평가 결과 올해 25개 부처·196개 일자리 사업에 쏟아부은 15조8000억원의 비효율이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이 소비보다는 저축에 나서면서 정부가 돈을 풀면 그 돈이 다른 경제 주체의 소득이 돼 소비와 소득이 연쇄적으로 늘어난다는 '승수효과'도 예전같지 않다.
[특별취재팀 = 조시영 기자 / 고재만 기자 / 전정홍 기자 / 정의현 기자 / 이승윤 기자 / 나현준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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