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시대' 쭈욱~ 결론은?
전세로 살까, 내 집 마련을 할까.
최근 몇년간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매매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매매가격의 추가 하락이 염려돼 내 집을 장만할 형편이 되는데도 집 살 시기를 일부러 늦추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매매가격은 상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세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에 맞춰 전세가격을 더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은 이들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서울은 전셋값이 75주 연속 상승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올라가는 전세보증금을 계속 더 내면서 전세로 살아야 할지, 올해는 내집 마련을 고려해야 할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전세가격 상승세가 둔화 될 수는 있지만 수요공급상 전세가격의 하락을 전망하는 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택 매매가격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전세가격이 계속 상승한다면 전세가율이 100%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높게 전세가격이 형성되기는 힘든 만큼 임대시장의 주류는 월세로 바뀔 것이다. 아직 전세가율이 그 수준까지 오르지는 않았지만, 2010년 21%였던 월세 비중은 3년 만인 지난해 말 40%로 급증했다.
◆저금리 기조가 바꾼 '월세시대'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집주인들은 은행의 이자수익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 소형주택의 상당수는 이미 월세가 대세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높아짐에 따라 중대형아파트에서도 월세 거래가 더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서초·반포동과 같은 강남권 요지의 중대형아파트들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월세 거래가 종종 이뤄지고 있다.
한국과 같은 전세제도가 없는 미국의 경우 주택가격이 금융위기 이후 상당히 하락했음에도 임대료는 꾸준히 상승했다.
주택 매매가격은 투자수요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중자금의 흐름에 따라 큰 폭으로 오르거나 내리는 기복이 나타나지만 실거주 수요에 기반을 둔 임대료는 큰 기복 없이 상승세를 지속하는 것이다.
한국은 전국 주택의 매매가격 장기지수가 90년대 초반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 수년간 하락하는 동안에도 전세가격 장기지수는 상승세를 지속했다.
필자는 예전에 상당히 저렴한 양로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노인이 된 후 국가가 제공해주는 양로원에서 거주하기를 희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생각해봤다.
당신은 지금 일반주택에 임대로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이 들어가면서 임대료가 저렴한 대신 생활환경, 교통, 주거시설 등이 뒤떨어지는 곳으로 옮겨서 거주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문화적 혜택을 계속 누리며 살 것인지에 대해 미리 고민해보길 바란다.
◆주거비 상승…노후대비 '빨간불'
도쿄, 홍콩, 뉴욕, 런던 등 인구밀도가 높은 주요 대도시에서는 서울시내 아파트의 월임대료보다 훨씬 비싼 임대료가 형성돼 있다. 필자 아들의 친구가 미국의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뉴욕 월가에서 일하는데, 맨해튼에서 친구와 둘이 자취를 하고 있다. 이들은 월급의 상당부분을 월세로 내야할 정도로 주거비 지출이 많다.
LA 근처에서 3명의 가족이 함께 거주하고 있는 지인도 매달 지불하는 아파트 월세가 월급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지방과 시골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은 상관없으나 일자리가 모여 있는 시내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이라면 외국 대도시의 사례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다.
지금도 월세를 지불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월세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그 부담이 미래에는 더욱 커질 것이 우려된다. 어차피 경제성장은 인플레이션을 수반하는 과정이다.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장기적으로도 전혀 오르지 않으려면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디플레이션으로 가야 한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과정의 고통이 있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가 점유비율은 53%에 불과하며 임차로 주거하는 비율이 44.5%, 무상이 2.5%를 차지했다. 많은 국민들이 자가 주택 없이 살면서 평균수명은 길어지는 시대에 미래 주거비 상승으로 인한 노후의 경제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요 국가별 자가 점유 비율은 ▲영국(07년) 71.0% ▲미국(11년) 66.4% ▲일본(08년) 61.2% ▲프랑스(04년) 54.1% 등으로 한국보다 높다. 통계청은 2035년까지 지속적으로 가구 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06~2010년에 연평균 29만가구씩 늘어나던 것이 2013년 이후에는 연평균 24만~25만가구씩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신규 주택이 매년 공급되고 있지만 가구 수의 증가도 꾸준하기 때문에 자가 점유비율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50%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월세전환율은 6.5~7.0% 수준이다. 이를 전세가율(전국 평균 60%, 서울 평균 55%)을 이용해 주택가격 대비 임대료율로 환산하면 전국 기준 3.90~4.20%, 서울 기준 3.58~3.85%가 된다. 즉 주택가격이 24~28년치 임대료와 맞먹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1990~2013년 1분기까지 주택가격 대비 임대료는 평균 4.5%로, 주택가격이 대략 22년치 임대료와 맞먹는다. 우리나라의 주택가격 대비 임대료율이 OECD 27개 국가들 중 25번째로 낮은 국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미래에 임대료가 크게 낮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월세살이 세입자가 대비해야 할 것들
아파트의 월세 흐름이 확산되면 부담을 느낄 가정도 많아질 것이다. 물론 현재 전세를 내놓은 임차인들이 월세로 전환할 경우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데, 보증금 전부를 당장 현금으로 내줄 만큼 현금성 자산을 갖지 못한 임차인도 많다.
따라서 보증금의 일부만 월세로 전환한 반전세가 확산되면서 점차 월세의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가격이 올라가든 월세로 전환되든, 세입자라면 미래의 주거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즉 ▲돈을 모아가면서 높아지는 전세보증금을 계속 조달할 것인지 ▲더 싸면서 더 낮은 수준의 주택으로 옮겨갈 것인지 ▲소모성으로 사라지는 월세를 매달 지불할 것인지 ▲현금성 자산의 수준에 맞는 주택을 대출 없이 구입해 자가주택을 마련할 것인지 ▲원하는 주택의 가격에 비해 현금이 부족하다면 적당 수준의 대출을 받아 구입한 뒤 원리금을 갚아 나갈 것인지 등을 잘 선택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발표한 '인플레이션 보고서'는 세입자와 자가주택 보유자의 주거비용 차이를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평균 주택가격은 2억5420만원이었는데 대출 없이 자가주택을 구입해 거주한다면 같은 금액을 정기예금에 넣어서 얻어지는 한해 이자 710만원을 기회비용으로 낸 것이 된다. 여기에 재산세, 취득세(평균거주기간 9년으로 나눠 계산), 수리비 등을 더한 760만원이 연평균 거주비용에 해당한다.
반면 전세 세입자의 평균 전셋값 1억5290만원의 정기예금 이자는 430만원이다. 둘 사이 차이는 330만원이다.
이처럼 한은에서는 주택의 시세차익을 감안하지 않을 때 세입자의 주거비용이 연 330만원 더 저렴한 것으로 분석하고 이는 전세 수요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2억5420만원짜리 주택이 연간 330만원 오른다면 자가주택에서 사는 것과 전세로 사는 것의 비용 차이가 없어지게 되며 전셋값 인상에 대한 미래의 걱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주택가격이 연간 330만원 이상 오른다면 보유비용을 제하고도 실질 순자산이 증가하는 효과까지 발생한다. 또한 번거롭게 이사 다닐 필요도 없다.
만약 전세가격이 올랐을 때 보증금을 추가로 내면서 재계약할 것인지, 기존 전세가격과 같은 주택을 찾아서 이사할 것인지를 비교한 결과 보증금을 더 지불하면서 현재 사는 곳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이 낫다고 한은 보고서는 결론내렸다.
전셋값 인상액(전국 아파트 기준 2011년 12월~2013년 12월 평균) 2157만원을 대출받아 지불한다면 세입자가 추가 부담하는 이자는 181만원이다. 이는 포장이사비(100만원), 중개수수료(64만원) 등 이사비용 164만원과 비교해볼 때 큰 손해가 아니므로 차라리 전세 재계약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래 살던 집의 전세가격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전셋값이 상승하는 것이므로, 기존 전셋값과 똑같은 집을 찾아서 옮긴다면 주거환경이나 주거면적 등의 측면에서 삶의 질이 퇴보하게 되는 것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
) 제3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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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재테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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