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불치병 굳어지는 가계부채 정부만 '돈 워리'

2013. 11. 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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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외신 "한국 가계부채 위험 수준" 잇달아 경고

가계부채 문제가 심상찮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국내 금융기관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잇따라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올해 초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가계부채가 박근혜정부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7월엔 워싱턴포스트가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이며 주택가격이 폭락할 경우 대거 파산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국회 업무 보고에서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우려할 수준"이라고 언급해 주목을 끌었다. 국내 민간연구기관도 비슷한 시각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연구소 관계자들은 "작금의 가계부채 상황은 심장마비 가능성이 높은 고혈압 환자"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괜찮다"는 인식이다. 왜 이렇게 시각이 다른 것일까.

소득 대비 가계부채 증가속도 빨라

가계부채는 말 그대로 가계가 보유한 부채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2년 12월 기준 가계부채 총액은 959조 원이며, 전년 대비 5.2% 증가했다. 반면 국민 개인의 가처분소득은 707조 원으로 4.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가계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쪽은 바로 이 점을 우려한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국회 업무 보고에서 "가계 부채가 한계 상황에 와 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보다 빠른데다 질적 측면에서도 악화하고 있다"고 한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현오석 부총리의 생각은 다르다. 현 부총리는 국회 가계부채 청문회에 출석해 "가계부채 규모나 증가 속도, 금융시스템으로 볼 때 위기상황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계부채가 가계 개인 차원을 넘어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을 위협하는 단계인가? 현 총리는 이런 관점에서 '아직 괜찮다'고 본 것이고 김 총재는 "매우 불안하다"고 보는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지금은 안정적이지만 외생 변수가 발생하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바로 그 변수다.

양적완화는 경기 후퇴를 막고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미국은 양적 완화 조치로 경기 부양 효과를 거뒀다. 미국은 리먼 사태 이후 총 3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폈지만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하면서 아예 무제한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엔저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외생 변수에 취약, 선제적 대응해야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는 자국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나라에겐 자산 거품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 5월 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자,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이 외환위기에 몰린 것은 자본 유입에 그만큼 취약한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가 축소되면 국내 가계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이자를 감당 못해 파산하는 가계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현오석 부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은 버냉키 의장 말대로 내후년이 될 것"이라며 낙관했다. 현 총리의 예측이 맞으면 '연착륙작전'이 먹히겠지만 틀릴 경우 한국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소지가 크다.

가계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 할 이유는 가계 소득보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해마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전세금 급등 금융기관의 리스크 강화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매매·전세·월세 등 주택시장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면서 가계 빚 문제가 여러 위험을 파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택매도를 통한 대출 상환이 어려운데다 소득이 줄면 빚 갚을 능력을 상실한 중산층이 급증할 수 있다"고 개진했다.

정부 당국도 가계부채 문제에 신경을 쓰기는 한다. 예를 들면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 금융연구원, 신용정보회사 등과 함께 '가계부채 미시분석 TF팀'을 구성해 가계대출자의 소득별·연령대별 상환능력을 파악하거나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 위험 정도를 측정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현오석 부총리도 가계부채 청문회에서 "가계 부채 총량 외에 타깃별로도 관리하고 있다. 정부의 전반적인 방향은 기존 어려운 계층에 있는 채무자를 지원해주는 것이며 행복기금이 그 방편에 해당한다"고 대답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가계부채 대책에는 모순이 발견된다. 이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도 살리고 가계부채도 잡겠다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춤하던 가계부채가 올초부터 늘어난 것은 주택담보대출과 연관이 깊다. 정부는 4.1부동산 대책에서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LTV 한도를 70%로 완화했고, 8.28 전월세 대책 후에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반환 대출시 대상자를 LTV 50% 내로 한 규정을 60% 이내로 완화했다. 이는 "돈은 얼마든지 빌려줄테니 집을 많이 사세요"라는 뜻과 다름없다. 또 이렇게 되면 가계부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한 선진국의 사례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근원적 해법으로 선진국의 예를 든다. 미국의 사례가 그것으로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미국 국민들은 대출 조건에 혹해 나도 나도 집을 샀다. 은행은 원래 신용등급이 낮은 자에게는 대출이자를 높게 물리거나 대출 자체를 아예 꺼린다. 그런데 미국의 은행은 저신용자에게도 낮은 금리를 제공했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고, 돈없는 저신용자들은 기회다 싶어 마구 집을 사들인 것이다. 해가 바뀌고 금리가 오르자 집값은 폭락하기 시작한다. 저신용자들은 늘어난 대출이자를 못 갚아 집을 내놓지만 팔리지도 않는다. 그러다 터진 것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다. 수년 전부터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하우스푸어'와 매우 유사한 형태다.

다른 점은 미국정부의 해법이다. 그후 미국은 모질게 가계부채를 없애나갔다. 고통스러운 부채 조정 과정이 3년 넘게 이어진 끝에 미국의 주택 경기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집값이 바닥을 치고 상승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든 말든 어떻게든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고 애쓴다. MB정권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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