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끝자락 ‘소풍’에 ‘황제’가 흐르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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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풍'에서 절친한 친구이자 사돈지간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은 생애 마지막일지 모르는 소풍을 떠난다.
다만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2악장은 흔히 생각하는 '황제'의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은심과 금순, 두 친구의 뒷모습에서 흐르는 '황제'는 이들의 마지막 여정을 위로하는 느낌을 준다.
사실 베토벤의 '황제' 2악장은 영화에 자주 쓰이는 단골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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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협주곡 ‘황제’ 2악장
80代 여정 담은 ‘소풍’에 등장
차분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
관객에 담담히 위로 건네는 듯
‘추락의 해부’ 속 스페인 연주곡
주인공 혼란스러운 내면 표현
‘오펜하이머’ 초반 ‘봄의 제전’
불협화음이 핵분열 과정 닮아
영화 ‘소풍’에서 절친한 친구이자 사돈지간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은 생애 마지막일지 모르는 소풍을 떠난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자식은 마음 같지 않은 두 단짝은 손을 맞잡고 함께 고향 남해의 자연 풍광을 둘러본다. 바다는 파랗고,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따스하게 빛난다. 생의 끝자락에서 흐르는 음악이 마음 문을 두드린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이다.
80대 노인들의 소풍에 무슨 ‘황제’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베토벤의 5번 ‘황제’는 그 별칭만큼이나 웅장하고 거대하며 위풍당당한 곡이다. 다만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2악장은 흔히 생각하는 ‘황제’의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차분하고 서정적이다.
1악장의 화려한 질주 후 2악장에서 오케스트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고 기도하는 듯 느리게 연주하고, 여기에 피아노의 맑고 투명한 터치가 어우러진다. 숭고하고 명상적인 선율은 차분히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담담히 위로를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은심과 금순, 두 친구의 뒷모습에서 흐르는 ‘황제’는 이들의 마지막 여정을 위로하는 느낌을 준다. 음악 덕분에 두 배우가 보여주는 노년의 숭고한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사실 베토벤의 ‘황제’ 2악장은 영화에 자주 쓰이는 단골 손님이다.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바튼 아카데미’(21일 개봉)에서도 ‘황제’ 2악장이 효과적으로 쓰인다. 주인공인 폴 허넘(폴 지아매티) 선생의 등장 신에서다. 허넘 선생은 완고한 고집불통으로 주변 모두 그를 싫어하며 세상에 혼자뿐인 외톨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허넘 선생이 책상에서 혼자 씨름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황제’ 2악장을 들려주며 위로를 건넨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에서도 ‘황제’ 2악장은 위로의 역할을 한다.
영화 ‘추락의 해부’(연출 쥐스틴 트리에)를 본 관객이라면 “아들이 ‘뚱땅뚱땅’거리며 치는 곡이 뭐지?”란 궁금증이 들기 마련일 것이다. 이 곡은 스페인 작곡가 알베니스의 스페인 모음곡 중 ‘Asturis’(스페인 지역 명칭 중 하나)이다. 알베니스의 스페인 모음곡은 스페인 각 지방을 눈으로 보는 듯한 강렬한 시각적 표현이 특징인 곡이다. 특히 ‘Asturis’ 도입부의 충돌하는 듯 반복적인 멜로디는 극의 긴장감을 팽팽히 조이는 동시에 혼란스러운 다니엘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시각 장애를 가진 다니엘이 시각적 표현이 특징인 곡을 연주한다는 설정은 영화 전체의 복선이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클래식 음악은 극 전체를 관통하기도 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후보작인 ‘오펜하이머’(연출 크리스토퍼 놀런)에 쓰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대표적이다.
영화 초반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듣는 ‘봄의 제전’은 시작부터 불협화음이 강렬하게 들리는 작품이다. 불협화음이란 기존의 화성 체계가 무너지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봄의 제전’의 불협화음은 영화의 주제인 핵분열 과정과 닮아있다. 이후 오펜하이머가 겪게 되는 가정, 동료, 그리고 시대와의 충돌을 암시하기도 한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브래들리 쿠퍼)과 그의 아내 펠리시아(캐리 멀리건)의 관계를 조망한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클래식 음악 잔치다. ‘캉디드’ 등 번스타인이 작곡한 음악과 그가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등 다수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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