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만난 세상의 빛… 두 번의 ‘유산 터널’ 지나온 삼둥이
[아이들이 바꾼 우리] 세쌍둥이 키우는 박정민·우도현 부부
“두 번 유산 끝에 세쌍둥이가 찾아왔어요. 끝내 만나지 못했던 두 아이가 이번에 함께 우리 품에 온 거 같았죠.”
박정민(38)·우도현(42)씨 부부는 작년 5월 세 아이의 부모가 됐다. 2018년 결혼해 6년 만에 삼 남매를 안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난임을 겪으며 2021년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첫 시도에 임신이 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을 했다. 이듬해 시험관 3차에 다시 임신을 했지만 16주에 사산했다.
“보통 시험관을 시작하면 ‘난임의 터널’에 들어갔다고 해요. 우리 부부는 그 터널의 끝이 보였지만 두 번이나 출구가 닫혀 버렸지요. 상심의 그늘도 더 어두워졌어요.”
부부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재작년 시험관 시술에 다시 도전했다. 시술 4차에 두 배아가 자리 잡았다. 쌍둥이였다. 그런데 검진 날 병원에서 생각지 못한 소식을 들려줬다. 자궁에 안착한 두 배아와 더불어 자연임신까지 돼 ‘삼둥이’가 됐다는 것이다. 아내 박씨는 “세쌍둥이는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많이 놀랐지만 앞서 얼굴을 보지 못했던 유산된 아이 둘을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생각했다”며 “‘삼둥이는 끝까지 지켜내자’고 남편과 다짐하며 출산까지 긴 여정을 밟아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부부는 원래 두 명의 자녀를 계획했었다. 삼 남매인 박씨는 “남편과 가족 계획을 세울 때 셋까지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임신 준비 기간이 계속 늘어나면서 현실적으로 셋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었다”며 “그래도 낳을 수만 있다면 꼭 둘은 갖고 싶었다”고 했다. 시험관 시술은 한 번만 시도해도 여성이 짊어지는 체력적 부담이 크기에, 부부는 첫 2년간은 하나의 배아만 이식했었다. 그러나 유산이 계속되면서 임신 확률을 높이려 두 배아를 이식했다. 그런데 첫 시도에 자연임신까지 겹치며 세 아이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부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세쌍둥이가 세상에 나올 35주 차를 기다리며 한 주 한 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다행히 입덧은 심하지 않았고 뱃속 삼둥이도 건강하게 잘 자랐다. 한시름 놓고 출산만을 기다리던 때에 위기가 찾아왔다. 18주 차에 접어든 어느 날 갑자기 양수가 터진 것이다. 유산 경험이 있는 데다 세 아이를 품고 있어 ‘고위험 산모’였던 박씨는 곧장 병원에 이송됐다. 출산까지는 최소 29주 차까진 버텨야 하기에 남은 11주는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다.
병원에서 보냈던 그 11주는 의정 갈등 시기였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났다. 병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때라 걱정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료진의 헌신까지 파업한 것은 아니었다. 우씨는 “그 와중에도 고위험 산모이다 보니 의사·간호사 분들이 각별히 신경을 써주셨다”며 “우리 부부가 올라선 살얼음판에 의료진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올라가 안전지대까지 함께 헤쳐간 기분이었다”고 했다. 박씨는 “서울대병원 조희영·김지회 교수님과 고위험산모실 간호사 분들이 세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지켜주신 출산의 주역”이라고 했다.
그렇게 첫째 딸 아린, 둘째 아들 아준, 셋째 아들 아진이 태어났다. 셋이다 보니 부부는 친정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썼다. 우씨는 “아이 셋을 한꺼번에 돌보는 상황이 흔하진 않지만, 시험관으로 다둥이를 낳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돌봄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가 많다”면서 “우리처럼 부모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부부들은 다자녀를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벌써 남편의 복직 후 육아가 걱정이다. 대기를 걸어 놓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 그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출산하자마자 대기를 걸어 놓지 않으면 입소가 어렵다 보니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는 가정 보육을 해야 한다”며 “그런데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을 다니면서 다른 한 명이 자녀 여러 명을 온전히 돌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부부는 ‘진짜 저출산 대책’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많다고 설명했다. 우씨는 “우리 같은 다자녀 가정뿐만 아니라 출산 가정 모두가 돌봄 걱정을 하지 않도록 출산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진짜 저출산 대책’이란 생각이 든다”며 “다자녀 부모의 경우 어린이집 입소 전까지는 정부의 돌봄 서비스를 소득 제한 없이 지원받을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출산은 장려하면서 다자녀 혜택에 소득 조건을 붙이다 보니 실제 혜택을 누리는 부모들이 많지 않고, 저출산 대책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요즘은 어려운 일이므로 출산 가정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허들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돌을 한 달 앞둔 아이들이 외출이 잦아지며 ‘주차’도 부부의 큰 고민거리가 됐다. 혼자 걸어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은 유모차를 타야 한다. ‘삼둥이 유모차’는 일반 유모차보다 훨씬 부피가 크다. 아이 셋을 먹일 이유식과 물, 기저귀와 물티슈·턱받이 같은 꼭 필요한 육아 소품만 챙겨도 한 짐이다.
일본의 경우 2006년 오사카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가 임산부, 유아 동반 보호자, 고령자 등 이용 허가증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배려 주차 구역’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 주차구역 외엔 이동 약자를 위한 제도가 부족한 상황이다. 부부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불편함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면서 “이런 ‘디테일’이 발전할수록 우리 사회가 아이를 많이 낳는 사회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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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합니다. 위원회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한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분들은 위원회(betterfuture@korea.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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