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노동’에 멍드는 공직···하루 2시간 넘게 불필요한 문서·회의에 허비

주영재 기자 2025. 4. 2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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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화재 대비 민방위 훈련이 시작되자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공무원은 공직사회의 효율성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 ‘가짜노동’이라고 인식했다. 하루에 두 시간 넘게 불필요하고 형식적인 문서 작업과 회의로 낭비하고 있다고 조사됐다.

조세현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24일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리는 ‘정부혁신미래전략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5년 공무원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번 인식조사는 지난 3일~9일 사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진행됐다. 국가직·지방직 공무원 7만3796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직 내 비효율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여주기식·형식주의 등 가짜노동’(22.06%)이 꼽혔다. ‘민원이나 외부기관 요구에 대한 과도한 대응’(20.59%), ‘보고·결재·회의 등 의사결정 과정의 비효율’(16.11%), 조직·인사 관리의 비효율(11.28%) 등이 그 다음 순으로 나타났다.

“불필요한 문서·회의, 의사결정 과정의 비효율성 불러와”

1점(전혀 아니다)에서 7점(매우 그렇다)까지 점수화한 설문을 보면, 불필요한 문서와 보고서 작성(4.56), 실질적 문제해결보다 절차와 형식을 중시하는 문화(4.36), 비생산적인 회의(4.32), 비효율적인 보고·결재·회의 등(4.31) 등이 의사결정 과정의 비효율성을 낳는다고 인식됐다.

실제 응답자들은 하루 평균 1.27시간(76.2분)을 불필요한 문서작업에, 0.93시간(55.8분)을 불필요하거나 형식적인 회의에 소모한다고 답했다. 2시간 이상 낭비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각각 31.16%, 18.26%에 달했다.

한 응답자는 “일반 사기업에서는 하지 않는 과도한 보고 문화가 공무원 조직 사회 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상 한 줄이면 끝날 보고서를 항상 1장 이상, 매년 같은 내용으로 ‘복사해 붙여넣기’ 제작해 비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상급자마다 원하는 양식이 다르고 상급자 보고용으로 문서를 지나치게 꾸미고, 복잡한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왜곡하는 사례가 많다. 실무실력보다 보고서가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 되기에 기술직이 행정직화 진행 중이다”는 응답도 있었다.

상급자의 지시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커서, 업무의 신속성,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직성이 심하다는 지적과 함께 “현장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지체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실질적 문제해결보다 보고나 결재 등 절차를 우선하는 비효율성을 지적한 것이다.

중복·비효율적 업무평가, 전시성 행사도 ‘가짜노동’ 발생 원인

실무자의 창의적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는 이유로는 실패 시 책임소재 부담(32.33%),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26.26%)가 대표적으로 꼽혔다.

가짜노동과 관련해서는 중복적·비효율적 업무평가(4.62점), 보여주기식 전시성 행사(4.59점), 실효성 낮은 홍보(4.43점) 등이 비효율을 유발한다고 인식했다. 한 응답자는 “언론에서 비판받을 만한 대외 이슈가 터질 때마다 고위급의 보여주기식 대책회의 개최를 반복하는데, 관련 기관, 기업체 대표에게 연락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답했다.

규칙·절차의 과도한 준수로 인한 비효율도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응답자들은 업무 수행 시 법령·규정 준수(28.1%), 상급자 지시(18.48%), 기존 관행(14.45%)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반면 실질적 문제해결(27.89%)이나 조직 목표 달성(11.08%)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조직·인사 관리에서는 인사운영 혁신 필요성(4.82점), 합리적 보직경로 관리 미흡(4.69점), 순환보직의 비효율(4.66점), 조직의 유연성 부족(4.44점) 등이 지적됐다. 분업화와 칸막이로 인한 비효율도 문제로 나타났다. 비효율성 개선을 위해 ‘인공지능AI·디지털 기술 활용이 필요하다’는데 61.88%가 동의했으나, 실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응답은 18.18%에 불과했다.

조세현 실장은 “문서작성에 기반한 보고보다 소통과 토론에 기반한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회의를 위한 회의가 아닌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 토론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면서 “직무 난이도에 따른 성과평가와 적정한 보상 체계로 효능감을 높이고, 인재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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